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하언니 Aug 15. 2021

겔다의 노래

다시 쓰는 안데르센 명작



카이와 함께 모든 행복과 많은 불행을 함께 겪어왔던 겔다는 사라진 친구의 흔적을 찾고 있었어. 


그날도 겔다는 카이를 찾아다녔는데, 검은 물결을 따라 빨간색 신발 한 켤레가 둥둥 떠내려 오는 거야. 한눈에 봐도 카이의 신발이었어. 서둘러 배를 타로 신발을 뒤쫓았지. 마치 카이가 자신을 부르는 것 같았거든. 그렇게 정신없이 신발을 따라가며 노를 젓다 보니 어느새 밤이 깊었고, 겔다는 저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어. 한참 후 무언가 쿡쿡 찌르는 느낌에 정신을 차렸지. 훈장이 수십 개 달린 빳빳한 제복을 입은 노인이 막대기로 겔다를 깨웠던 거야.


“여자아이 주제에 혼자 돌아다니다니. 정신이 나갔구나.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부모님은 무지개 나라에 계세요. 저는 사라진 친구를 찾으러 가는 길이고요.”

“세상은 위험으로 가득한 곳이야. 내 말을 잘 듣겠다고 약속하면, 우리 집으로 데려가 나처럼 훌륭한 어른으로 키워주마.” 

“아니요. 저는 훌륭해지고 싶지 않아요. 혹시 제 친구 카이를 보셨나요?”

“음. 검은 눈동자에 붉은 단발머리 아이를 말하는 게냐?.” 


겔다는 노인의 말을 듣자 가슴에 돌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어. 떨리고 불안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지. 


“그 아이를 찾는 게 너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구나.” 


음울한 표정의 노인을 뒤로하고 겔다는 노를 저었어. 가는 길에 왕벌 떼도 만나고 물뱀도 만났지만 그때마다 겔다는 배를 뒤집어서 배 아래에 숨어 왕벌을 피하고, 물뱀은 노로 휙-휙 쫓으며 앞으로 나아갔단다. 얼마나 갔을까, 노인이 일러준 황금으로 물든 버드 나뭇가지가 보이자 겔다는 기다란 잎줄기를 붙잡고 땅으로 올라갔어. 들판 위에는 커다란 성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와 겔다의 주위를 빙빙 돌았어. 겔다는 할머니에게 배운 동물의 언어로 까마귀에게 카이의 행방을 물어보았지.   


“동물의 말을 알다니 정말 대단하구나. 어쩌면 카이를 찾을 수도 있어. 이 성에 사는 꽃의 공주는 세상 구석구석을 다녀서 아마 알고 있을 거야. 하지만 먼저 꽃의 공주를 꿈속에서 데리고 나와야 해. 공주를 꿈에서 빠져나오게 할 수 있겠니?”

“공주가 꿈속에 갇혔다는 게 무슨 말이야?”

“꽃을 사랑한 공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찾아다녔어. 세상 구석구석 안 가본 곳이 없었지.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마음에 드는 꽃을 찾을 수가 없었어. 그러던 어느 날, 꿈의 들판에는 세상에 없는 온갖 진귀한 꽃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공주가 잠에 빠졌는데 깨어나질 못하고 있어. 너는 이곳까지 왔으니 아마 꿈의 들판에서 공주를 찾을 수 있을 거야.”


공주는 온통 진주로 장식된 침대에서 죽은 듯이 잠을 자고 있었어. 겔다는 공주를 보자 무지개 나라로 간 부모님이 생각났어.  


“내가 공주를 찾아볼게”

“자, 이건 장미로 만든 차야. 이걸 마시면 깊은 잠에 빠져. 하지만 기억해 꿈이라는 것을 알아야 꿈에서 깰 수 있어.”

겔다는 까마귀가 준 차를 마시고 잠이 들었어. 어디선가 나는 달콤한 냄새에 겔다는 천천히 눈을 떴지. 그곳은 정말 환상적인 곳이었어. 난생처음 보는 무지개색 꽃들이 사방에 피었고 구름이 물결처럼 노래했지. 가만히 있어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분이 들어서 더 이상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 백합으로 치장한 저택 뜰에서 공주가 머리를 빗고 있었어. 그곳은 아무런 걱정과 불안이 없는 곳이라 마치 두 사람은 알고 있었던 것처럼 서로 반갑게 인사했지.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해가 질 때까지 꽃들을 감상했고, 밤이 되자 꽃잎으로 속을 채운 이불을 덮고 잠이 들었어. 이튿날 아침 겔다와 공주는 정원에서 사계절에 피는 온갖 꽃들의 향기에 둘러싸인 채 차를 마시고 있는데, 공주의 찻잔에 들장미가 그려져 있는 거야. 겔다는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 


“여긴 왜 들장미가 없나요?”


겔다의 물음에 공주는 들장미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 것처럼 되물었어. 


“들장미라니?”

“언제 어디서든 피어나는 그 생명의 꽃들이요. 어디서나 볼 수 있는데 여기는 왜 없나요?” 


겔다는 꽃밭을 뛰어다니며 장미를 찾았지만 한송이도 찾을 수 없었지. 그녀는 맨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어. 그러자 들판이 갈라지기 시작했고 솟아오르는 장미 덩굴이 두 사람을 삼켜버렸어. 두 사람은 아득한 빛 속으로 떨어졌지.  


공주가 잠에서 깨자 성 안의 창문이 활짝 열리고 환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어. 겔다는 눈을 뜨자마자 카이 생각이 나서 공주에게 카이를 본 적이 있냐고 물었어. 공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거울을 가져와 겔다에 보여주었지. 영문도 모른 채 거울을 본 겔다는 깜짝 놀랐어. 붉은 단발머리에 검은 눈동자의 카이가 자신을 보고 있었던 거야. 겔다는 울음을 터뜨렸어. 


“무엇을 찾고 있었니?”

“모두 사라졌고 저 역시 사라질 텐데, 살아있는 이유를 찾고 싶었어요.”

“시간은 지나가지만 때론 머물기도 한단다. 지금 네 마음에는 고통과 슬픔의 시간이 머물러 있어.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우리가 모르는 사이 그 시간 은 조용히 바람처럼 빠져나가지.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지만, 네가 들장미를 기억해 낸 것처럼 반드시 그렇게 된단다.”


겔다는 다시 거울을 보았어. 그리고 카이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유심히 바라보며 눈을 깜빡여 보았지. 겔다가 눈꺼풀을 깜빡일 때마다 거울에 금이 가더니 쨍 그란 소리를 내며 여러 조각으로 깨지고 말았어. 겔다는 깨진 거울 조각을 하나를 조심스럽게 손에 쥐었어. 손 끝에서 한 방울의 피가 흘러내렸는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겔다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깨달았어. 


“집으로 데려다줄까?”

공주의 물음에 겔다가 고개를 저었어. 


“아니요. 이제 막 여행을 시작했는 걸요.”


 겔다는 육중한 성문을 열고 나가서 강가로 돌아갔지. 그녀가 타고 온 배는 거기 그대로 있었어. 겔다는 일렁이는 푸른 물결을 따라 천천히 노를 저으며 노래를 불렀어. 



시계는 도착을 모르고, 우리의 이야기도 물거품처럼 사라지겠지만,
나는 멈추지 않겠네.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