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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지로움 Sep 15. 2021

왜 부유는 없는 거죠? 모유수유의 굴레

내가 낳았으니 남편이 뭐라도해야 하지않겠어?

'으에엥!! 으에에에엥!!'

세상이 떠나갈 듯, 숨이 넘어갈 듯 아기가 운다. 시도 때도 없다. 아기가 우는 이유는 3가지다. 졸려서, 배고파서, 기저귀 봐달라고. 정말 딱 3가지이다.


처음 태어난 신생아 시절에는 세 가지 상황의 울음소리가 구분되지 않았다. 태어난 지 한 달 즈음부터 아기의 울음소리가 다양하게 변화하면서 요구하는 바를 바로 캐치할 수 있어졌다. 배가 고플 때는 조금 날카로운 소리로 으에엥!!(배고파!)한다. 또 기저귀가 젖었을 땐 으에이에 잉!! 하면서 짜증 섞인 소리가 나고, 졸릴 땐 우에엥~우엥하면서 조금 쳐지고 보채는 울음소리이다. 이렇게 글로 적어봤자 아무도 이해 못하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하루에 수십 번도 먹을 준비를 하고 있는 아기를 달래기 위해 필요한 건 스피드이다. 모유던 분유던 빨리 아기 입에 물려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달걀만 한 아기의 위장이 비었다는 경보음이 점차 커지며 아기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를지 모른다. (실제로 배고파서 화내는 아기를 안고 있으면 불이 난 것처럼 뜨끈하다.)


모유라는 건 참으로 신기하게도 아기가 배고픈 시간에 맞춰 채워지는 초고도의 딥러닝 시스템이다. 마지막 수유로부터 시간이 경과할수록 다시 가슴이 딱딱해지면서 부풀어 오르고 아기를 배불리 먹이기 위한 준비를 한다. 아기를 맞이할 준비를 마친 가슴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미쳐 생각지 못한 시스템의 오류로 인해 모유가 가슴 밖으로 흘러나오는 대 참사를 맞이할 수 있다. 흘러나오지 못해 고여있는 모유는 엄마에게 통증을 선사하기도 한다.


아기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엄마의 가슴을 무는 시간, 간격, 먹은 모유의 양등은 엄마라는 데이터 창고에 저장된다. 정교한 시스템의 계산을 통해 다음 수유시간과 필요한 양이 산출된다. 그렇게 엄마와 아기는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억울함이 시작된다.

'왜.. 왜... 도대체 왜! 엄마한테서만 모유가 나오는 거야?! 애는 내가 낳았으니 먹이는 건 남편 네가 먹여도 되지 않겠어?!'


부유라는 건 왜 없는 걸까? 출산을 마친 엄마의 몸은 정말 만신창이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고 회복이 빠른 엄마들도 있다.) 뼈마디들이 늘어나서 산후풍이 올 수 있으니 핸드폰도 들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들 한다. 최대한 안정을 취해야 하고, 몸을 보호하기 위해 각종 영양식을 챙겨 먹는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엄마의 몸은 스스로를 회복하기보단 모유를 만들어내며 최고의 영양분을 아기에게 전달하기 바쁘다. 게다가 작고 소중한 나의 아기는 오래 안고 있기엔 솔직히 무겁다. 임신 전엔 5kg짜리 아령도 겨우 들던 내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4kg 가까이 나가는 아기를 안고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수유를 위한 자세는 또 얼마나 어깨와 목이 아픈지, 제대로 된 자세를 잘 찾아내기까지의 시간 동안 거북목이 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모든 게 미화된 사진, 영상에서 봤던 모유수유의 장면은 굉장히 아름다운 것이었다. 아기를 사랑스럽게 내려다보는 엄마와 쌔근쌔근 잠에 들듯 말 듯 젖을 빠는 아기를 담은 그 클래식하고도 아름다운 장면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만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처음 마주한 모유수유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 느껴보는 생살이 뚫리는 고통을 참으며 배가 고파 흥분한 아기와 싸움까지 해야 하는 줄은 몰랐다. 출산 후 약 1~2주 동안은 유선이 뚫리는 기간이다. 아기가 젖을 물때마다 엄청난 진공상태의 압력이 가해지고 가슴에 작은 구멍들이 뚫려 모유가 밖으로 나오게 된다. 젖 먹던 힘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진짜로 엄청난 힘이 가슴에 가해진다. 그리고 아기는 전속력 질주를 한 것처럼 땀을 흘리고 힘들어하며 모유를 먹는다. 이런 과정이 몇 주 지나가면 이 전보다는 수월한 모유수유 시간이 찾아온다. 그럼에도 난 모유수유가 너무 힘들었다.


모유수유가 힘들어지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나의 경우 체력적인 한계와 자존감의 문제가 가장 큰 이유였다. 모유수유를 하면 엄마의 출산 후 회복이 빠르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기가 젖을 빨 때 생성되는 호르몬 옥시토신은 자궁을 수축하게 만들어 출산 후 자궁에 남아있는 피(오로)를 빨리 빠지게 도와준다. 또한 수축된 자궁은 임신 전의 크기인 달걀만 한 사이즈로 작아지며 골반 안쪽의 제자리로 돌아간다. 이 과정이 빠르게 진행되어야 엄마 몸의 순환이 원활해지며 회복이 빨라진다. 그래서 나와 아기를 동시에 위함으로 최대한 모유수유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마주한 모유수유는 그렇게 쉽지 않았다. 몸이 타들어가는 듯한 갈증을 계속해서 느꼈다.(모유를 만드는 데에 수분이 상당량 필요하다) 하루 3~4L의 물을 마시면서도 갈증은 줄어들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어야 할 정도로 식은땀을 흘리는 환자였다. 체내에 수분이 많이 부족했는지 변비에도 시달리기 시작했다. 미역국을 하루에 3번씩 꼬박꼬박 먹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모유수유를 하고 난 뒤에는 심각한 현기증에 시달려야 했다. 다양한 이유가 있었을 테지만 내 몸은 모유를 만들기에는 과부하가 걸려있음이 확실했다. 누군가는 현기증이 좀 날 수도 있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내가 현기증에 유독 민감했던 이유가 있긴 하다. 밤낮으로 일하며 성취하는 재미에 빠져있던 20대 시절이 있었다. 몸을 혹사시키며 일에 몰두하던 시간이 축적되니 몸이 많이 망가졌었다. 몸이 많이 약해진 나는 자주 쓰러지고 응급실에 실려가곤 했는데, 그 기억이 오버랩되면서 공포감으로 다가왔다. 내 몸을 스스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상황이 다시 찾아온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패닉이었다. 다리가 풀릴 것 같은 현기증을 몇 차례 느끼고는 그 공포감에 며칠 동안 수유를 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렇게 점점 나의 몸속 민감한 수유 시스템은 아기를 위한 모유를 생산하는 것을 멈춰가고 있었고 모유양이 현저하게 줄어갔다.


모유수유 얘기하는데 자존감이 왜 나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나도 그런 감정이 들 줄은 몰랐다. 정말이다. 나는 자존감이 꽤나 높은 사람이다. 자기애도 높다. 모유수유의 시작은 이렇다. 병원, 조리원의 직원분들의 손이 허락 없이 날아들어 내 가슴에 안착한다. '엄마, 젖이 많이 찼네요.', '곧 젖몸살이 오겠어요'등등의 멘트와 함께 내 가슴을 주무른다. 정말 당황스러운 경험이다. 물론 무례한 태도는 아니지만 이렇게나 내 가슴이 만인의 것, 그러니까 정말 thing이 되는 경험은 굳이 해야 하나 싶을 정도이다. 그렇게 모유수유가 시작되면 나의 가슴은 여성성의 상징이 아니라 아기의 식사 도구로 전락한다. 굳이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순간이 너무도 많이 찾아온다. 나는 이런 경험이 너무 힘들었다. 자기애가 높은 탓이었을까? 흘러나온 모유가 옷을 적셔 갈아입어야 하는 순간들, 집에 오신 손님이 거실에 있는데 안방에 들어가 젖을 물려야 하는 상황, 수유를 도와주고자 하는 손길과 눈길들을 감당해내기가 힘들었다. 모두가 내 모유량에 관심을 보일 때, 나는 조금 불편했고 그 모든 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 무렵 흘러넘치던 젖량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런 이유를 들어 나는 수유를 중단하고 싶다고 여러 차례 어필하며 마침내 수유를 끊었다.


수유를 끊은 나는 행복했는지, 자존감이 회복되었는지, 마음이 편해졌는지 궁금할지도 모르니 나의 마음을 적어 보자면 대답은 이렇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쩐지 서운한 마음이 한편에 들었다. 사실 어느 정도 모유수유가 익숙해진 무렵부터는 젖을 먹는 아기의 모습이 정말 예뻤다. 아빠들은 절대로 모를 그 예쁜 순간들을 독식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지 못한다니 아쉬워졌다. 내가 겪은 신체적인 힘듦, 정신적인 힘듦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피크를 넘기지 못하고 포기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신체적인 힘듦은 넘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수유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은 뒤에 다시 모유량을 늘리기 위해 노력해보기도 했지만 한번 줄어든 뒤에는 쉽게 늘릴 수 없는 게 모유량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겨우 간식 정도의 양을 몇 번 더 먹이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수유를 끊을 수 있었다. 완전하게 모유수유를 그만 둔지 약 2주 가지난 지금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마찬가지이다. 맛있는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고, 남편과 맥주도 한잔 마실 수 있지만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헛헛함 같은 것이 자리 잡았다. 이럴 땐 나도 내 마음이 참 어렵다. 둘째가 태어난다면 그땐 꼭 마음을 다잡고 충실하게 모유수유하겠다며 다짐하면서도 지금 내 앞에 있는 아기에게 미안한 감정이 드는 건 정말 쉽게 떨쳐내기 힘들었다. 엄마란 왜 이렇게 죄책감의 동물인지 모르겠다.



그럼,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왜 엄마는 임신 중에도 죄책감, 출산 후에도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다. 임신과 출산은 내가 했으니, 부유 정도는 남편이 좀 먹였으면 좋겠다. 그래야 좀 억울함이 풀릴 것 같다.  



미래를 책임지는 과학자님들! 부유는 언제쯤 나올 수 있나요? 부유 수유가 가능한 그날이 오긴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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