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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명진 Jun 21. 2022

힘을 뺀다는 것

사십춘기에 얻은 것들(1)

 “힘을 빼고 강의하셔서 편했어요. 그 말을 꼭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수업을 마친 날, 중년의 한 여성이 살며시 다가와 말을 건넸다. 매주 글쓰기 강의할 때마다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떠는 느낌처럼 편안했는데, 수강생 분들도 비슷한 느낌이었나 보다. 사람의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 안간힘을 쓰고 있으면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간 상태에서 글을 쓰면, 그 글을 읽는 사람도 힘들다. 강사가 긴장하면 수강생도 덩달아 긴장된다.

 

‘몸에 힘을 뺀다. 움켜쥐고 있는 것을 놓아준다.’ 요즘 마음속으로 외는 주문을 타인으로부터 듣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매 순간 몸과 마음에 힘이 들어가 있는지 수시로 살핀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하면 아프거나 다치기도 한다.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알아차리는 것이 상책이다.


요즘 잠을 자도 몸이 편하지 않은데, 꿈을 꾸면서도 힘이 잔뜩 들어가나 보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 못 드는 날이 계속되자 아내는 잠드는 비결을 가르쳐 주었다.


“머리에 힘을 빼봐. 평상시 머리에 힘이 들어가 있는 걸 모르는 경우가 많아. 머리에 힘을 빼야겠다고 마음먹으면 머리에 쏠려 있던 힘이 스르르 풀려나가는 게 느껴져.”


아내의 가르침을 따라 요즘 잠이 오지 않는 날에는 머리에 힘이 들어가 있는지부터 살핀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열일’하는 머리를 달랜다. ‘머리야, 이제는 좀 쉬어도 괜찮아.’ 머리에서 빠져나온 힘이 목덜미를 타고 온 몸으로 퍼지는 모습을 상상한다. 움켜쥐고 있던 손아귀에서 풀려난 의식이 서서히 흐려지면 꿈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렇다고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평생 살아오면서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수십 년간 몸에 밴 습관을 고치기는 쉽지 않다. 아내는 내 머리가 큰 이유도 평상시에 머리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라고 놀린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몸에 힘을 빼면 마법처럼 최적의 방안을 찾을 때가 있다. 가끔씩 힘을 어떻게 빼야 할지 모를 때는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살핀다. 욕심이 생기면 몸은 잔뜩 긴장하게 마련이다.


“한 문장에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하면 글이 꼬여요. 욕심을 줄이면 문장이 깔끔해집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을 내는 순간 몸에 힘이 들어가고, 그때부터 글쓰기의 고통이 시작됩니다.”


글쓰기 수업에서 항상 강조하는 말이지만 스스로에게 적용하지는 못한다. 써야 할 글이 있으면 몸에 힘이 들어가 시작도 못하고 있다가 마감을 넘기기 일쑤다. 마감이 닥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글에 힘을 뺀다. 마감시간까지 쓸 수 있는 만큼만 쓴다.  


요즘 대학원을 다니며 매 수업시간마다 과제로 한 편의 글을 쓰는데, 초반에는 한 문장도 쓰지 못하고 시간만 보낸다. 마음을 자세히 살펴보면 ‘잘 쓰고 싶다’는 욕심, ‘나는 이 정도는 쓰는 사람이야’라며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 교수님에게 칭찬을 받고 싶은 인정 욕구가 깔려 있다.


과제 제출 마감이 다가와서야 욕심을 알아차리고 내려놓는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글이 잘 써진다. 마감까지 힘을 잔뜩 들여 쓴 글은 수업시간에 지적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칭찬받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쓴 글에 대해서는 의외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때가 많다.


가끔 부작용도 있다. 요즘 힘을 뺀다는 핑계로 업무를 대하는 태도가 느슨해졌다. 그러다 보니 업무가 밀려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몸을 최적의 상태로 유지할 만큼만 일해야 하는데 욕심을 부려서 업무가 과도해진 것이니, 그것도 내 책임이다. 온몸에 힘을 빼고,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나를 맡긴다. 나를 내맡기는 삶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집중한다는 점에서 능동적이다.


움켜쥐고 있던 부정적인 에너지가 풀려나가는 순간, 자연에 퍼져 있는 최적의 에너지가 흘러들어온다. 이 우주를 지배한다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인간은 그 순간 자연의 일부로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 메인이미지 출처 : Photo by Victoria Tronin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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