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국 선생 조형물 건립추진위 이용길 위원장
한 권의 책이 역사를 바꿨다.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은 역사 속에 숨어 있던 친일파를 세상 위로 끄집어냈다. 존경받던 시인과 소설가들의 친일행적이 처음으로 드러났다. 이 책이 과거 역사만 바로 잡은 것은 아니다. 1960~70년대 많은 대학생들이 ‘친일문학론’을 읽고 민족의 근현대사를 깨우쳤다. 그 대학생들이 80년대 이후 민주화를 이끌었다. 1966년 출간된 이 책은 그 청년들을 통해 미래의 역사를 쓰게 했다. 이 글은 임종국 선생에 대한 글이라기보다 이 책을 읽고 역사 속에 인생을 던진 한 청년의 이야기다. 40년이 지나 노년에 접어든 그 청년은 친일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임종국 선생님이 친일파를 청산해야 한다고 외친 것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 시기에도 유효합니다. 전국뿐만 아니라 지역적으로 말입니다. 임 선생님 조형물 건립 과정에서 친일의 토대는 여전히 굳건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인생을 바꾼 책 ‘친일문학론’
스무 살 때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을 처음 접했다. 충격이었다. 고등학교 때 작품을 읽고 감동했던 이광수, 최남선과 같은 작가들의 친일행적에 분노가 일었다. 처음에는 이 책이 사실인지 믿기지 않았다. 진실을 알고 싶어 친구들과 선배들과 토론하고 공부했다. 그렇게 독립운동사, 전후 현대사를 다시 배웠다. 70년대 서슬 퍼런 유신독재 시기였다.
임종국 선생 조형물건립 추진위원회 이용길 위원장은 “그렇게 학생운동을 접하고 평생 운동을 하며 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운동에 이어 노동, 지역, 진보정치까지 30년 넘게 사회운동가로 살아왔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이용길 위원장은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을 들고 있었다.
“이 책이 나의 사고, 인생관을 전면적으로 바꿨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역사적으로 충격을 준 책이니까. 그때부터 인연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1980년, 임종국 선생은 연구저술활동에 몰두하기 위해 서울생활을 접고 천안으로 거처를 옮겼다. 야산을 개간해 밤나무를 심고 그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 옆에 조그만 집을 짓고 친일문제에 대한 집필을 이어갔다.
“그 집을 요산재라고 불렀어요. 친일 연구를 위해 조선총독부 관보, 황성신문 같은 일제 강점기 자료들로 가득 들어차 있었었습니다. 러닝셔츠 입고 초췌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꼭 ‘마지막 독립군’이 살아 있다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누구도 하지 않는 아니, 하지 못하는 식민지 해방투쟁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마지막 독립군. 목숨 바쳐하셨으니까……. 외로운 늑대 같았습니다. 박정희의 친일 행적까지 까발리니까 사람들이 가까이 대하기 부담스러운 거죠.”
임종국 선생은 1994년까지 완간을 목표로 10권 분량의 친일파 총서를 저술하다 1989년 세상을 떠났다. 임 선생의 유업은 민족문제연구소로 이어져 2009년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됐다. 이용길 위원장은 자신의 본업이었던 노동운동에 전념했다. 총파업을 이끌다 해고된 그는 천안으로 돌아와 천안민주단체협의회 초대의장을 맡았다. 협의회 차원에서 천안에 모신 임 선생의 묘지에서 추모제를 하자고 제안했다. 1998년, 9주기 때 시작된 추모제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진보정당 운동에 전념했다. 20여 년 이 흘러 2016년 임종국 선생 조형물 건립위 추진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노동당 대표를 마무리하면서 이제는 정말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가 하는 일을 도와주며 활동은 잠시 쉬고 있었죠. 그런데 ‘또 이분이 나에게 과제를 주시는구나. 이 일은 내가 감당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안 사람도 아닌데’... 불편한 시선들
임종국 선생 조형물 건립운동은 천안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2016년 7월부터 모금 활동을 벌여 4개월 만에 3,626명이 참가해 1억 2000여만 원의 설립기금이 모였다. 지역 학생들도 십시일반 모금운동에 동참했다. 특히 조호진 시인이 진행한 스토리펀딩, ‘역사 독립군 임종국’ 프로젝트는 당초 목표액인 1,000만 원을 훌쩍 넘는 7,400만 원이 모금됐다.
“그때 당시 박근혜 정부가 국정교과서로 난리를 피우고, 위안부 합의로 헛짓거리 하던 시기였습니다. 임종국 선생님의 정신이 필요한 시기였죠. 임종국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동참해줘 감동을 느꼈습니다.”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지만 조형물 건립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천안시가 공공용지에 임 선생의 조형물을 세우는데 난색을 표했다. 공공용지에 세우고 싶으면 조례를 만든 후 심의를 받으라고 했다.
“말은 그래요. ‘고향이 천안인 사람도 아니고, 임종국 선생에 대해 천안 시민들이 얼마나 아느냐, 공공용지에 세우는 것은 어렵다.’며 요산재 근처에 땅을 사서 세우라는 겁니다.”
‘천안 사람도 아니지 않으냐.’는 말은 1998년 지역에서 임 선생 추모제를 시작할 때도 들었다. 그런 반응은 2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는 친일에 뿌리를 둔 사회구조가 지역에 더욱 강하게 토착화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여전히 친일에서 남북 분단으로 이어지는 구조에 기댄 세력들이 정치, 경제, 사회 속에서 구체적인 힘을 가지고 있어요. 지역이 더욱 그렇습니다. 임종국 선생님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것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 있어요. 추모제 제안할 당시 한 기관의 원장에게 임종국 선생님을 잘 모셔달라고 부탁했더니, ‘돌아가신 분을 왜 부각하려고 하나’ 그러는 겁니다. 노골적으로는 아니지만 참 불편해하는 점이 있어요.”
정치인들 역시 지역의 보수적인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안희정 지사에게 임종국 선생 조형물건립 추진위원회 고문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는데 ‘아직은 때가 아니다’며 거절했다.”고 전했다. 이어 구본영 천안시장과 안희정 도지사에 대해 “임종국 선생이 재선에서 불편하다고 인식하는 것이 민주당 일부 그룹의 정치의식”이라고 꼬집었다.
임종국 선생의 유업이었던 친일인명사전이 편찬될 때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당시 국회는 친일인명사전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해 결국 시민들의 모금으로 편찬됐다. 이용길 위원장은 “친일문제에 대해서는 국가적으로 공식 인정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건립추진위는 법적인 책임을 지겠다며 공공용지인 천안 문화공원에 임종국 선생 조형물 설치를 강행했다. 조형물 제막식은 2016년 11월 13일 임종국 선생 27주기에 맞춰 진행됐다. 조형물 철거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천안시는 뒤늦게 조례를 제정하고 ‘이미 설치된 조형물에 대해서는 건립 인허가를 받은 것으로 본다.’는 부칙을 붙였다.
“조형물 제막식을 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생전에도 탄압받고 고초를 겪으시더니 돌아가시고 나서도 그러시는 구나. 이게 현실이다.”
천안 신부동 문화공원에 자리 잡은 임종국 선생 조형물은 평화의 소녀상, 6월 민주항쟁 30주년 기념비와 함께 삼각 구도를 하고 있다. 이용길 위원장은 이 공원을 ‘민족·민주·평화 공원’으로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공원에 가보면 3각 구도로 조형물이 놓여 있어요. 각각 민족, 민주, 평화를 상징하죠. 마당바위라고 있어요. 지역이나 국가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이 마당바위에서 모여 논의하죠. 민족·민주·평화 공원은 우리 지역의 마당바위가 되어야 합니다. 현안이 있을 때마다 여기 모여서 결의하자는 겁니다.”
“지역 근현대사 재정립하는 계기 삼아야”
정신적 스승이었던 임 선생은 사후에도 그의 인생에 계속 과제를 던졌다. 돌이켜 보면 스무 살 때 ‘친일문학론’을 접한 이후 계속된 인연이었다. 민족문제연구소 발족, 추모제, 조형물 건립으로 이어졌다. 조형물을 건립하면서 지역 근현대사를 재정립하는 문제가 절실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타계했을 때 임 선생의 나이보다 이제 더 많은 인생을 살았다. 60대 중반에 접어든 운동가는 또 다른 과제를 받아 안았다.
“임종국 선생님이 남긴 유업 중에 친일청산, 민족정기 회복 문제는 민족문제연구소로 이어져 충실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다음 과제가 임종국이라는 인물의 정신입니다. 임종국 정신으로 지역 역사를 다시 써야 합니다. 우리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 이동영 선생님 같은 분은 김구 선생의 실질적 대부인데 남북 사회 양쪽에서 잊혔습니다. 이러한 지역의 잘못된 역사와 문화를 바로 잡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천안 시내에서 옛 동지들을 만나 술 한 잔 기울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끔 그는 ‘민족·민주·평화 공원’에 있는 임종국 선생 조형물을 찾아가 말을 건다.
“선생님, 또 저에게 과제를 주시고 이 길로 가라고 가르쳐주시는군요. 고맙습니다.”
| 주요일지
2016년 7월 9일 임종국 선생 조형물 건립 추진위원회 발족
8월 ~ 10월 스토리펀딩 진행
11월 13일 ‘임종국 선생 27주기 추모식 및 조형물 제막식’
2017년 2월 1일 천안시 ‘공공조형물의 건립 및 관리 조례’ 제정
* 이 글은 충남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간한 '2016 충남 시민사회 연간보고서'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