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적폐, 관료-토호자본 고리를 끊는다

청양 강정리 싸움 이끈 이상선 <충남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상임공동대표>

by 정명진

‘적폐’. ‘오랫동안 쌓여 온 폐단’들 뜻하는 단어다. 촛불혁명 이후 ‘적폐청산’이 화두다. 최근 정치, 사법, 경제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적폐’를 걷어내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지역에도 ‘오랫동안 쌓여 온 폐단’이 있다. 주범은 ‘지방 행정권력’과 ‘토호(토착화된 지배 세력) 자본’이다. 두 세력이 결탁해 오래전부터 지역 공동체를 망가뜨렸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이들의 횡포는 여전하다. 충남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이상선 상임공동대표는 강정리 싸움은 지역적폐를 드러내고 주민공동체를 복원하는 운동이라고 말했다. 그는 강정리 석면·폐기물 공동대책위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국정농단과 같은 적폐세력은 청와대 등 권력의 핵심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30년 가까이 지역 권력감시 운동을 해온 사람의 입장에서 지역사회를 농단하는 세력들이 구조화되고 되고 있다는 것을 절절히 느낍니다. 강정리는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석면광산에 들어선 폐기물 처리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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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 강정리 싸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충남 곳곳의 석면광산 개발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시작됐다. 해방 이후 정부가 운영하던 석면광산이 하나둘씩 민간 사업자에게 넘어갔다. 그중 하나가 청양군 강정리 석면광산이다. 석면은 1급 발암물질이다. 주민들은 수십 년간 석면 관련 질환을 겪으며 고통받았다.


2001년 그 석면광산에 폐기물 중간처리업 시설이 들어섰다. 사문석을 캐서 현대제철 당진공장에 납품하다가 2011년 석면이 함유되어 있는 사실이 밝혀져 납품이 중지됐다. 2009년부터 석면 생산 및 사용이 금지된 상태였다. 더 이상 석면광산에서 채굴이 불가능했지만 청양군은 석면광산 일대를 계속 개발할 수 있도록 2011년 12월 ‘산지일시사용’을 연장했다. 2013년 강정리 석면광산에 일반폐기물 매립사업을 하겠다는 신청서가 청양군에 제출됐다. 석면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이상선 충남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상임대표는 “업체가 탐욕스럽게 다른 사업을 더 하려고 한 것”이라며 “그 단계에서 주민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시민단체를 찾아와서 도와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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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시민사회 및 전국의 석면 및 환경 관련 단체들이 결합한 ‘강정리 석면폐기물 공동대책위’와 주민대책위는 행정권력과 토호자본을 대상으로 싸움을 시작했다. 2013년 9월 2일 청양군청 앞에서 강정리 폐기물매립장을 반대하는 첫 집회를 열었다. 요구 사항은 △신규 폐기물 매립사업 신청 폐기 △현행 폐기물 중간처리업체 허가 취소 △석면광산복구사업 등 3가지였다. 주민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강정리 일대를 복원하기 위한 일이다. 이후 집회와 기자회견, 1인 시위가 잇따랐다. 2014년 8월에는 충남도청-청양군청-강정리까지 ‘희망행동’ 인간띠잇기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주민감사청구, 직무이행명령 요청, 충남도 특별위원회 구성,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특정감사 등 법적, 제도적 수단을 총동원했다.


주민-시민단체-전문가 똘똘 뭉쳐 ‘승소’


반발이 거세지자 청양군은 강정리 석면광산 일대의 산지개발허가를 종결하고 일반폐기물 매립사업 신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업체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주민들과 시민단체의 눈에는 청양군이 행정소송에서 이기려고 하는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지자체가 패소할 것을 예상하고 행정소송까지 가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반발을 감안해 사업 신청을 불허했으나 행정소송에서 졌으니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일종의 명분 쌓기다.


“(지자체가) 져 주는 겁니다. 업체가 행정소송을 제기했을 때 청양군이 제대로 변론하지 않으면 결국 패소할 거라고 봤죠. 그래서 주민들이 추천하는 변호사를 소송대리인으로 받으라고 청양군에 요구했습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청양군의 군정 자문변호사가 맡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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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과 시민단체가 추천한 환경 관련 전문 변호사가 청양군 측의 변론을 맡았다. 행정소송 과정에서 특별위원회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공동대책위의 요청에 따라 2014년 10월 충남도에 법률, 석면, 환경 전문가로 구성된 ‘청양 강정리 석면·폐기물 특별위원회’가 설치됐다.


“소송 과정에서 일반폐기물 매립사업장을 신청한 사업부지의 석면함유량이 핵심 쟁점이었어요. 업체 측은 석면함유량이 1% 미만이기 때문에 사업장을 설치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죠. 충남도나 청양군도 동조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때 특별위원회는 충남도를 통해 사업장 부지 석면함유량이 1% 기준이 인허가를 낼 수 있는 결정적인 요인인지 환경부에 공식 질의합니다. 1%는 토양 정화를 위한 경제성의 기준일 뿐이지 석면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위험하다는 유권해석이 나왔어요. 이것이 재판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그렇게 1심에서 승소하게 됩니다. 그때 대전지방법원에서 주민들과 함께 만세를 불렀죠.”


업체는 2심에서도 패소하고 대법원 상고를 철회했다. 싸움의 발단이 된 ‘일반폐기물 매립사업’을 막아냈다. 그렇게 강정리는 다시 평화를 되찾는 것 같았다.


석면광산 복구 “업체 편드는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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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문제는 석면광산 복원과 2001년 허가된 폐기물 중간처리업 시설이다. 대책위와 특별위원회는 업체가 법을 지키지 않고 산지를 복구한 정황을 찾아냈다. 충남도와 청양군이 업체의 위법행위를 처벌하고 석면광산을 제대로 복구하도록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하지만 행정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산지복구에 순환골재를 사용했다고 했습니다. 산림청에 질의한 결과 ‘순환골재로 산지를 복구하면 안 된다’는 회신이 왔습니다. 순환골재는 폐기물입니다. 이번에는 청양군에서 ‘순환골재’가 아니라 ‘순환토사’였다는 겁니다. (산림청의 회신을 받았음에도) 뒤늦게 청양군이 법제처에 재차 질의한 사실이 발각됐어요. 법제처가 산림청과 다른 유권해석을 내릴 소지가 있었습니다. 특별위원회가 대법원 판례까지 찾아서 ‘순환토사’도 폐기물이라는 것을 입증할 자료를 법제처에 제출했죠. 결국 법제처에서도 산림청의 해석이 온당하다는 답이 왔습니다.”


대책위와 특별위원회가 업체의 위법행위를 밝혀내면, 청양군은 업체의 행위가 위법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이런 모습은 계속 반복된다. 특별위원회는 산지복구 관련 위법행위 등 4건에 대해 청양군이 지도점검, 영업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충남도에 ‘직무이행명령’을 권고했다. 청양군이 업체에 대한 지도감독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있으니, 사무를 위임한 충남도가 강제로 직무이행을 명령하는 것이다. 충남도는 마지못해 특별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하고 직무이행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청양군은 따르지 않았다.


“몇 개월에 거쳐 기자회견도 하고 도지사 면담까지 해서 우여곡절 끝에 7월에 정무부지사로부터 직무이행명령을 내리겠다는 답변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직무이행명령을 내려도 청양군이 받지 않으면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이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청양군은 기다렸다는 듯이 직무이행명령이 부당하다며 대법원에 제소를 했습니다.”


묻지마식 매입 “행정이 주민 이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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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군은 업체의 사업부지를 충남도와 공동으로 매입해 그 자리에 태양광발전시설을 설치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내놨다. 이에 대해 공동대책위는 ‘묻지마식’ 매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산지복구에 사용된 순환토사, 즉 폐기물을 걷어내고 깨끗한 토양으로 다시 복구해야 하는데 업체에 책임을 묻지 않고 서둘러 논란을 봉합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미 산지복구가 70% 정도 진행된 상황에서 재시공을 하면 업체가 타격을 받겠죠. 업체가 필사적으로 저항하니까 행정이 강행하지 못하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들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고, 업체도 부담을 덜 수 있는 것이 매입 방안입니다. 부당하게 폐기물로 복구한 업체 소유의 땅을 혈세로 매입해서 덮으려고 하는 겁니다.”


똘똘 뭉쳐 싸우던 주민들도 이 같은 매입 방안에 대해 찬반으로 갈라지는 분위기다. 이 과정에서 행정이 주민들을 회유해 이간질하고 있다고 이 대표는 주장했다.


“갑자기 전면에 나선 사람이 신임 이장입니다. 중장비를 가지고 폐기물업체에서 일을 받아하던 사람입니다. 새마을지도자를 거쳐야 이장을 할 수 있는데, 새마을지도자 과정을 거치도록 해서 경력을 만든 다음 이장으로 앉히고 묻지마식 매입 추진의 전면에 세운 겁니다. ‘반대하면 태양광발전에서 나오는 보상이나 배당을 주지 않겠다. 겨울철 마을회관에서 공동식사도 못하게 하겠다.’고 하면서 집집마다 방문해 찬성 서명을 받았다는 겁니다.”


특별위원회 활동도 충남도가 연장하지 않아 2017년 10월 종료됐다.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민관이 참여해 숙의과정을 거쳐 결정하는 ‘공론화위원회’를 충남도에 제안했다. 문재인 정부가 신고리 5·6호기 원전 공사 재개 여부를 놓고 진행했던 공론화위원회와 비슷한 방식이다. 충남도는 ‘강정리문제 해결위원회’라는 이름의 기구를 만들었지만 특별위와 공동대책위는 ‘묻지마식 매입’을 추진하기 위한 형식적인 위원회라며 참여하지 않았다. ‘묻지마식 매입’을 주도하는 주민들이 포진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지역적폐 드러내 공동체 복원하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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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해당 부지를 매입해서 태양광발전을 하겠다는 급조된 아이디어를 가지고 주민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있습니다. 정말 몇 년 동안 백 명이 넘는 주민들이 똘똘 뭉쳐 여기까지 왔는데……. 주민들 몇몇을 포섭해서 자기네들 논거를 위해 앞장세우는 것은 정말…….”


이 대표는 긴 탄식을 내뱉었다. 그는 “국정농단과 같은 적폐는 청와대 같은 권력 핵심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관료집단과 토호자본을 두고 ‘지역적폐’라고 규정했다. 이어 “30년 가까이 지역권력감시 운동을 해온 사람으로서 지역사회를 농단하는 세력이 구조화되고 있는 것을 절절히 느낀다.”고 말했다. 지역의 선배 활동가로서 그가 강정리 싸움에 천착하는 이유를 물었다.


“사업 추진으로 갈등이 생기면 대부분 초기부터 마을 주민 찬반으로 갈라집니다. 어떤 사업을 하려면 여론 주도층을 포섭하다가 초기에 갈등을 야기합니다. 그러면서 마을공동체가 황폐화되죠. 강정리는 초기부터 주민들이 똘똘 뭉쳐 왔습니다. 지역 시민운동을 하면서 지역의 적폐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본 운동이 있었을까요? 그를 기반으로 마을공동체 운동이 성공한 사례가 있을까요? 없었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권리를 찾고 마을공동체를 지켜내야 합니다. 관료자치, 토호자치로 변질된 지방자치가 제대로 된 주민자치로 선순환하는 구조로 가야 합니다.”


이상선 대표와 인터뷰를 마치고 며칠 뒤 강정리 관련 보도가 잇따랐다. 충남도가 폐기물 중간처리업체 이전에 공적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내용이다. 예산을 투입해 사업장 부지를 매입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폐기물’로 규정된 ‘순환토사’도 걷어내지 않고 현 상태에서 양질의 토사를 덮는다고 한다. 오염된 흙을 좋은 흙으로 덮는다고 산이 복원되는 것은 아니다. 지역적폐가 드러나지 않도록 공적자금으로 논란을 덮는다고 해서 지역공동체가 복원되는 것은 아니다. 힘든 싸움이다.


“묻지마 매입방안이 온당치 않다고 생각하는 주민들이 꽤 있습니다. 공동대책위와 특별위원회 몇 분들과 함께 이 문제를 계속 대응할 겁니다. 필요하다면 법적 책임도 물을 겁니다. 끝내 마을공동체를 지키는 운동으로 만들어 주민운동의 새로운 역사를 쓸 겁니다. 끊임없이 몸을 던져 싸울 겁니다.”


| 주요 일지


2001년 3월 석면광산에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업 허가

2011년 1월 석면함유 입증으로 당진제철소 납품 중지(미납품 잔여물량 9,000톤)

2011년 4월 석면안전관리법 제정

2011년 12월 석면채취목적의 산지일시사용 연장허가 (‘잔여 사문석 채취’ 명분)

2013년 8월 일반폐기물 매립사업 신청/ 주민-시민사회 연대

12월 산지개발허가 종결/ 주민감사청구

2014년 3월 충남도지사에 직무이행명령 요청

8월 강정리 희망행동 인간띠잇기

10월 국가인권위 진정서 제출 / 강정리 석면•폐기물 문제 해결 특별위원회 구성

2015년 8월 행정소송 1심 승소

2016년 1월 산림청 질의(산지복구 관련)

3월 법제처 질의

4월 행정소송 2심 승소

5월 업체, 행정소송 대법원 상고 철회

2017년 7월 산지복원 위법행위 등 직무이행명령

청양군, 직무이행명령 불복 대법원 제소

10월 충남도 강정리 특위 해체

11월 충남도 강정리문제해결위 구성

12월 충남도, 사업장 부지 이전 지원


* 이 글은 충남공익활동지원센터가 발간한 '2016 충남 시민사회 연간보고서'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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