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을 돕는 일, 버티는 힘은 그거야

<충남 사회적기업> 당진돌봄사회서비스센터 송영팔 대표와 박은자 총괄이사

by 정명진

“요즘 사실 힘들어요. 윤리경영으로 소비자와 직원들은 행복해진다는데, 그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왜 행복하지 않을까요? 내 삶이 피폐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사회적기업이든, 일반기업이든 누군가 그들의 기업 스토리를 물으면 좋은 점만 부각하여 말하기 십상이다. (주)당진돌봄사회서비스센터 송영팔 대표를 인터뷰하러 온 자리였는데, 박은자 총괄이사가 자리에 앉자마자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노인요양 등 돌봄서비스를 제공해온 이 사회적기업은 2015년 지점으로 당진쌀밥도시락을 설립했다. 박은자 씨는 당진쌀밥도시락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맡고 있다.


“제가 딱 힘들 때 찾아오셔 가지구.”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았다. 힘들 때는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붙잡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은자 씨는 대표를 앞에 두고 힘든 이야기를 가감 없이 꺼냈다. 일단 솔직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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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새벽 4시에 나왔어요. 결식우려 아동 70명에게 아침마다 배달하거든요. 도시락을 만들어서 아침 7시 20분까지 집집마다 방문해야 하죠. 아침밥 끝나면 주문 온 점심 도시락도 해주고 그러면 퇴근하는 시간이 오후 3시~4시 이래요. 집에 가서 씻고 앉아 있으면 졸다가 자고. 잠자는 시간 빼고는 여유롭게 생활할 시간이 없어요. 옷도 구경하고 싶고 쇼핑도 여유롭게 하고 싶은데. 내가 뭐 하고 있는 건가. 결론은 경영능력이 없어서 몸으로만 밀어붙이는 것 같아요.”


직원들도 은자 씨가 무리한다는 걸 안다. 이날도 함께 새벽에 나와 도시락을 만드는 직원들은 “우리들끼리 다 할 테니 늦게 나오라”고 했다. 이런 배려를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없다. 혹시 실수가 생길까 불안한 마음이다. 은자 씨는 “내가 잘못하는 걸 아는데 과감하게 내려놓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몸이 힘들 때보다 불안한 마음이 더 힘들 때가 있다. 창업 초기 경영자들의 불안은 창업하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잘 할 수 있을까?’ ‘내가 부족해서 회사가 잘 굴러가지 않는 것은 아닐까?’ 전문경영인이 아닌 이상 어쩔 수 없다. 특히 가치와 수익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사회적기업가에게는 더욱 큰 부담감이 있다. 돌봄서비스 분야에서 10년간 실무를 맡아온 은자 씨 역시 그런 마음이었다. 생소한 도시락업체를 운영한 지 이제 2년이 지났다.


“요양보호사 선생님들과 돌봄서비스를 할 때는 나름 재미있었어요. 그분들은 어르신들 입장에서 받아들이고 감내하기도 하고. 어르신들 돌보는 일이 보람도 있잖아요. 공적인 사업이니까. 그런데 도시락 사업은 완전 시장 경쟁에 뛰어든 거예요. 그래도 새벽에 결식우려 아동을 위해 도시락을 만들면 ‘우리가 해준 아침밥을 먹고 학교에 간다’라는 마음이 들어요. 제가 딸이 둘인데 아침밥도 못해줄 때가 많았어요. 딸들에게 못해준 거 이 아이들에게 해주면서 스스로 위안을 얻는 것 같아요. 그럴 때는 ‘힘내서 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침 도시락을 하는 건 마음이 편해요. 사회공헌이지 수익이 아니니까. 그런데 점심 도시락은 경쟁사회에서 이겨내야 하니까. 맛이 떨어지면 어쩌나, 불친절하게 대해서 주문이 줄어들면 어쩌나. 경영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송 대표는 은자 씨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평소에도 불평과 고민을 털어놓고 들어주는 모양이다. 스승이 제자를 바라보는 눈빛이다. 그럴 만도 하다. 은자 씨 인생은 송 대표를 빼고 설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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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인연은 1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은자 씨가 38살 때 이야기다. 혼자 딸 둘을 키우던 은자 씨는 당진지역자활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그때 송 대표를 만났다. IMF 여파로 8년간 유지해온 장사를 접었다. 마땅하게 할 게 없어서 식당일도 해봤다. 아이들이 어려서 회사에 취직도 못하고 파트타임으로 일했다.


“그때는 힘들어 죽으려고도 했어요.”


어려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꺼냈다. 이미 다 지난 일이다. 10년 전 그날 은자 씨는 자활센터에 그냥 상담만 받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송 대표와 상담하던 날 너무 많이 울어서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은자 씨는 말했다.


“고생하셨네요. 여기 와서 일 하시고 살아갈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도와줄 테니까 해봅시다.”


그날 송 대표가 해준 말 중에 이 정도의 기억만 남아있다.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니까 어려웠던 삶이 더 서러웠다. 당시만 해도 지역자활센터에 자활근로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간병인, 재활용, 청소업이 고작이었다. 대부분 50대 이상 취약계층이 대부분이었다. 은자 씨가 자활센터 문을 두드릴 무렵 정규 교육도 받고 비교적 젊은 30~40대 자활근로 주민이 몇 명 더 있었다. 송 대표는 그들이 잘할 수 있는 일을 만들고 싶었다.


“당진에 열아홉 군데 노인대학, 삼백 개의 경로당이 있어요. 이 분들을 직업훈련시켜서 노인시설에서 레크리에이션, 댄스, 수화 강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은빛 보라미 사업단’을 만들었습니다.”


‘취약계층이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나’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송 대표는 누구나 사람의 능력은 백지 한 장 차이라고 생각했다. 시청을 오가며 공무원들을 설득해 사업을 만들었다. 1년간 전문강사를 붙여 교육시켰다. 은빛 보라미 사업단 자활근로 주민들은 취약계층으로 자활센터에 왔지만, 경로당이나 노인대학 등에 가면 선생님 소리를 들었다. 은자 씨는 그렇게 자존감을 키워갔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자활센터 사무실을 올 때마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들이 팀장 역할을 하는 모습을 눈여겨봤다. 송 대표에게 어떻게 하면 저런 일을 할 수 있는지 물었다. 공부해서 사회복지사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때부터 낮에는 경로당에서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일하고 밤에는 사회복지 공부했다. 2년 동안 야간대학을 다닌 끝에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다. 그 이후 자신과 같은 자활근로 주민을 돕는 사회복지사가 되어 사업단을 이끌었다. 당진 지역에서 자활근로 주민이 사회복지사가 된 것은 은자 씨가 처음이다. 은자 씨가 부러웠던 다른 자활근로 주민들도 공부를 시작해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사람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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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당진돌봄사회서비스센터가 자활센터에서 독립한 것도 은자 씨와 인연이 깊다. 정부 정책에 따라 은자 씨가 맡은 사업단 소속 자활근로 주민 약 30명 정도가 공동체로 창업하던가 취업해서 자활센터를 떠나야 했다. 사업단이 공동체 창업으로 자립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대표님과 상담하는 데 사업단을 가지고 나갈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거예요. 저는 어떻게 가지고 나가냐. 자신이 없다고 했죠.”


“박 이사를 지켜보니까 통솔력도 있고, 사회복지의 마음도 있더라고요. 자활의 핵심은 어려운 분이 자기 힘으로 자립하는 겁니다. 그래서 박은자 사회복지사에게 권유한 거죠”


그렇게 2008년 8월 당진돌봄사회서비스센터를 공동체로 창업했다. 혼자 힘들겠다는 생각에 당시 자활센터장이었던 송 대표가 비상근으로 돌봄센터장을 함께 맡아 은자 씨 뒤를 도왔다. 2014년 자활센터를 정년퇴직한 송 대표는 돌봄센터 일에 전념하면서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고 당진쌀밥도시락 지점까지 설립했다.


“당진쌀밥도시락도 수익사업으로 시작한 건 아닙니다. 사회복지를 하다 보면 사각지대가 많습니다. 혼자 힘들게 살고 있지만 집이나 약간의 땅이 있다고 국가의 도움을 못 받는 경우도 있죠. 그분들을 돕기 위해 도시락 사업을 시작한 겁니다. 당진쌀밥도시락의 미션도 ‘음식복지관으로 세상을 열자’입니다.”


당진쌀밥도시락에는 9명이 근무하고 있다. 기업체 점심 도시락 배달 등 수익 사업과 함께 다양한 사회공헌사업을 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아침마다 편부모나 조손가정 및 사각지대 70명의 아이들에게 아침밥을 가정까지 직접 배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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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토요일에는 지역사회 내 기업 또는 개인 후원자를 발굴해 65명 아동들에게 점심밥을 제공하고 있다. 당진쌀밥도시락이 점심밥을 만들면 지역자원봉사자들이 배달한다. 엄마, 아빠가 운전하고 아이들이 함께 차를 타고 다니면서 친구들, 동생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준다.


본사인 당진돌봄사회서비스센터는 창업 10년 차에 접어들면서 이미 자리를 잡았다. 어르신들의 집을 방문하는 요양서비스 등을 제공하며 요양보호사 48명과 사회복지사 5명이 근무하고 있다. 지역에 있는 기업들에게 특수차량을 기부받아 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게 이동서비스도 제공한다. 이제는 송 대표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직원들끼리 협업을 통해 운영된다. 민주적인 의사결정 방식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 송 대표의 생각이다. 당진쌀밥도시락도 그렇게 운영하고 싶은데 쉽지 않다고 은자 씨는 말했다.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은 대표님이 무책임하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해요. 대표가 결정을 내려줘야지 내버려 둔다고. 이제는 그런 문화가 몸에 베였죠. 중요한 것만 대표님께 물어보고 대부분 본인들이 결정하고 보고하죠. 돌봄센터는 그런 문화를 만들었는데, 당진쌀밥도시락은 업종이 다르고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많이 부족하죠.”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갑자기 송 대표의 인생 이야기가 궁금했다. 알고 보니 45세 늦은 나이에 대학에서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직장 다니면서 술도 많이 먹고 힘들었죠. 젊었을 때 춤도 잘 추고. 늦은 나이에 정신 차리고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2003년에 고향 당진으로 내려왔죠. 처음에는 알콜중독쉼터를 만들려고 내려왔는데…….”


‘술을 많이 먹고’, ‘알콜중독쉼터’라는 말이 걸렸다. 두 말 사이에 뭔가 있는 듯했다. 사회복지를 시작한 계기를 다시 물었다.


“친구들하고 술도 많이 먹고, 알콜 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습니다. 술 마시다가 친구가 죽는 사고도 있었고…….”


아! 질문을 잘못 던졌다. 은자 씨만큼이나 아픔이 담긴 인생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가 시작되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화제를 틀었다. 현재 68세 사회복지사로서 노년의 꿈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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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생뜨호프홀랑(Santropol Roulant)’ 이라는 사회적기업이 있어요. 연간 35만 명의 취약계층의 노인들에게 급식을 제공하는데 청년들이 인턴십으로 배달합니다. 세대통합을 이루는 겁니다. 당진에는 노인이 3만 명에 육박해요. 그중에 90대 이상이 890명. 당진에는 청년들이 없지만 40~50대 중장년층 여성들이 뭔가 하고 싶어 해요. 그분들이 자전거나 자가용으로 어르신들에게 먹거리를 배달하면 중장년층 여성 일자리가 생겨나고, 노년층과 세대통합 효과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진을 떠난 출향인과 기업인들에게 기부를 받아 안전한 먹거리를 만들고 중장년층 여성들이 지역의 어르신들의 먹거리를 챙기는 겁니다.”


노년층을 비롯한 취약계층의 먹거리와 건강을 지역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책임지는 ‘지역복지플랫폼’을 만드는 꿈을 꾸고 있었다. 이제는 은자 씨가 송 대표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미래의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예감. 송 대표가 뿌린 씨앗을 은자 씨가 거둬야 할지도 모른다.


“5년 뒤에는 내가 어떻게 되어 있을까. 대표님이 공부하라고 말하는 의미를 충분히 알고 있어요. 그동안 일에 매몰돼 멀리 못 봤어요. 앞만 보고 왔죠.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여기 계신 직원들을 위해서 이 직장이 필요한 건데.”


인터뷰가 끝날 무렵 은자 씨의 얼굴은 한층 밝아졌다. 지역자활센터 문을 두드릴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얼마나 행복해졌는지 스스로 깨닫는 것 같았다. 어찌 보면 자활근로 주민으로 시작해 사회적기업의 총괄이사를 맡고 있는 은자 씨 한 사람의 인생이 이 기업의 윤리경영 지표다. 당진돌봄사회서비스센터도, 당진쌀밥도시락도 가난한 사람들의 자립을 위해 만들어진 것 아니었나. 한참 걱정을 털어놓는 은자 씨에게 송 대표가 말했다.


“버티는 힘은 그거야. 힘들다가도 며칠 뒤에 풀리잖아. 내가 하는 일이 나만 위해 하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분들이 취업하고 우리가 만든 음식을 어려운 아이들이 먹고. 그러면서 나도 발전하는 거야. 초심만 잃지 말자.”


* 이 글은 (사)충남시민재단이 발간한 ‘2017 충남 사회적경제 윤리경영 사례집’에도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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