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 (주)홍성주거복지센터 박소진 대표
한 중년 남성이 폐지를 가득 실은 리어카를 멈추더니 (주)홍성주거복지센터 사무실 문을 연다. 정수기에서 시원한 물 한잔 뽑아 마시고는 짧게 인사하고 이내 나간다. 목마른 계절이다.
“폐지 줍는 분들도 여기를 자기 집 드나들 듯해요. 전혀 눈치를 안주거든요. 날이 추워지면 따뜻한 커피 한 잔 타서 마시고 가시기도 해요.”
회계를 담당하는 나이 지긋한 여성 직원이 별 일 아니라는 듯 말한다. 이곳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곳이다. 폐지를 줍던 중년 남성도 언젠가 이 곳의 직원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저도 처음에는 말도 못했슈. 지금이랑 비교할 수도 없어유. 뭐라 그래야 허나. 그때는 하루 살기에 급급했쥬. 지금은 앞날을 그려볼 수 있다랄까. 이제는 미래가 눈에 보여유.”
충청도 사투리에 어눌한 말투지만 삶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박원석 총괄부장은 (주)홍성주거복지센터의 원년 멤버다. 10년 여 년 전 마흔을 갓 넘은 박원석 씨는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홍성지역자활센터 집수리 사업단에서 일했다. (주)홍성주거복지센터를 함께 창업하고 일하면서 ‘차상위계층’으로 살림살이가 차츰 나아졌다. 이제 국가의 지원을 받는 ‘취약계층’이라는 꼬리표를 뗐다.
“박 부장은 우리 회사에서 기술이 제일 좋아요. 수제자죠. 집수리, 건축 관련 자격증도 몇 개 있습니다. 이제는 중급 기술자 경지에 올라 있어요. 어디 가도 대우받을 사람입니다.”
박소진 (주)홍성주거복지센터 대표는 박 부장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기초생활수급자들만으로 ‘자활기업’을 운영하기 힘들자 2008년부터 박 대표가 결합했다. (주)홍성주거복지센터는 자활기업으로서 생계를 꾸리기 힘든 기초수급자에게 건축 관련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곳이다. 주로 정부에서 지원하는 저소득층 주거개선 사업을 맡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집을 고치며 가난을 벗어난다. 집을 고치러 가면 자신과 같은 처지라 못질이라도 한번 더해주고, 부탁하지 않아도 양변기도 손봐준다. 누군가의 도움이 될 때 자존감도 커진다. 박 부장 같은 선배 직원들은 새로 일하러 온 기초수급자들의 처지를 잘 안다.
“박 부장은 현장에서 리드를 잘해요. 성격이 너무 좋아서 나쁜 소리를 못해요. 지적하기보다 잘 보듬어 줍니다. 수급자분들 일이 서툴러도 타이르죠. 저 같으면 충격 요법을 줄 텐데. 그래서 저랑 같이 일 나가는 것보다 박 부장이랑 현장 가는 걸 좋아하나 봐요.(웃음) 일 말고도 애로사항도 잘 들어주고, 나보다 노사문제 해결을 잘 하는 것 같아요.”
박 부장처럼 ‘홍성주거복지센터’에 계속 일하는 초창기 멤버도 있지만, 이곳에서 기술을 배워 ‘조립식 주택 전문가’, ‘설비 전문가’로 성장해 사회로 진출한 이들도 있다.
박 대표는 이 회사와 인연을 맺은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3년쯤 지난 이야긴데요. 사무실 앞에 노숙자 한 분이 계시는 거예요. 젊은 시절 관광버스도 하고 자식도 있고 화려했는데, 지금은 혼자서 떠돌고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더군요. 열정이 좋아서 채용했습니다. 힘들게 살고 있는데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닌 겁니다. 읍사무소에 가서 제가 보증 서서 기초수급을 받을 수 있게 해줬습니다. 6개월 정도 일했어요. 그런데 자꾸 아프다는 겁니다. 병원에 갔더니 결핵이더군요. 말기에 가까울 정도로 병세가 심했는데 그냥 참고 살았더라고요.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갔대요. 그나마 수급자가 되어서 의료혜택을 받았어요. 그분은 저를 볼 때마다 ‘나 때문에 살았다’고 해요. 아프지만 않았으면 같이 일했을 텐데, 아쉽죠.”
박 대표는 “자활기업은 사람 중심으로 경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익보다 가난한 사람의 자립을 위해 설립된 회사다. 개인사업을 하면서 편하게 살 수도 있었다. 직원들도 박 대표에게 “월급도 많지 않은데 왜 자활기업해서 골머리를 썪냐?”고 묻는다. 박 대표는 가난한 사람들의 집을 고쳐주는 일이 은근히 매력 있다고 말했다.
“열심히 집을 고쳐주고 나면 상당이 보람이 있더군요. 만족해하는 할머니의 표정이 참 좋았습니다. 돈도 중요하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나더라고요. 내 재능을 이런 데다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그렇다고 자활기업을 운영하는데 어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일이 서툰 기초수급자들과 일하는 게 쉽지 많은 않다. 인생에 바닥까지 떨어져 본 사람들이다. 힘든 노동을 통해 돈을 벌어본 지도 오래된 사람도 많다.
“처음 왔을 때 일주일을 버티면 그분은 계속해요. 그런데 그게 어려워요. 그동안 일하지 않아도 기초 급여가 나왔으니까. 수급자를 탈피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저도 힘들죠. 그래도 일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기술을 가르쳐요. 일반적으로 한두 번 알려주면 배울 수 있는 일도, 이 분들에게는 다섯 번 여섯 번 반복해서 알려줘야 합니다. 그걸 감내하고 가는 거죠. 제가 생각하는 윤리경영, 사람중심의 경영이 그런 거라 생각해요. 어려워도 이 사람과 같이 가는 것.”
업무능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기초생활수급자와 함께 하는 일이라 일반 건축업계 회사에 비해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다. 주요 사업인 저소득층 주거개선 사업도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농촌 지역의 인구가 줄어들면서 고쳐서 계속 살려고 하는 집도 갈수록 없어지고 있다. 회사 경영사정이 힘들어도 믿고 따라와 주는 직원들이 고마울 뿐이다.
“어려울 때는 퇴직금도 지급 못할 경우도 있고, 상여금도 50만 원 줄 걸 30만 원밖에 못 줄 때도 있어요. 그런데 ‘고맙다.’ ‘됐다.’고 그래요. 모든 걸 오픈하고 투명하게 하니까 오해가 없어요. 대부분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건 돈 때문이죠. 예전에는 여러 재료도 마음대로 쓰던 걸 아껴 쓸 줄도 아는 것 같아요. ‘이제는 내 직장이다. 내 회사다.’라는 마음이 생긴 거겠죠.”
설립 때부터 경영사정을 직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직원들도 회사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커졌다. 대표 급여를 비롯해 모든 경영정보에 대해 직원들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구조다.
“요즘도 많이 어렵죠. 그런데 여유가 생겼어요. 돈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 겪어보고 나니까 모든 과정이 편해진 거죠. 위기 대처법이 생기는 것 같아요. 사회적 기업으로 지원되던 인건비가 1년 동안 나오지 않을 때도 버텼는데요. 뭐.”
홍성주거복지센터는 2011년 충남도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시작해, 2014년 고용노동부 인증 사회적기업이 됐다. 하지만 인건비 지원도 올해가 마지막이다. 내년부터는 자립해야 한다. 그래도 2016년 흑자를 기록해 그동안 쌓인 적자도 매웠다.
직원들의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박 대표는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2015년 12월 홍성주거복지센터 중심으로 충남지역의 주거복지센터들이 뭉쳐 사회적협동조합을 출범하면서 사업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특히 수자원공사의 댐 주변 복지시설 개선사업, 현대아산재단의 저소득층 에너지 효율 개선사업 등 대기업의 사회공헌사업을 수주하면서 매출액 늘어났다.
국가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서 사는 분들도 돕는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도 법적 기준이 맞지 않아 정부의 지원을 못 받는 경우도 있다. 도움이 시급한 상황인데도 제도적으로 지원해줄 방법이 없을 때, 홍성군청 복지담당 공무원들은 박 대표를 찾는다.
“기초생활수급자도 아닌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이 있으면 저한테 도와달라고 그래요. 할머니 혼자 사시는데 그 집이 하도 추우니까, 바람막이도 하고 지붕도 고쳐주고 하는 거죠. 그것 때문에 직원들에게 제가 욕먹기도 해요.(웃음) 그렇다고 요청이 오는데 안 도와줄 수도 없고... 한 번은 홍성소방서에서 요청이 왔어요. 노부부가 만성질환의 아들을 보살피며 살던 집에 불이 났다는 겁니다. 소방서에서 지원할 수 있는 금액으로 집을 고치기에 부족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자재비 부담하면서 직원들이 함께 도왔죠.”
전통시장 내에 자활사업단이 운영하는 녹색가게 공사도 무상으로 지원했다. 박 대표는 “우리가 선배 자활사업단이니까 후배가 시작한다는데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목공예 교실을 열어 재능기부하기도 한다. 사업장이 위치한 홍성군에서만 사회공헌사업을 하는 건 아니다. 지난해에는 태안군에 사는 어려운 분의 집수리를 도왔다.
“태안군청 공무원이 ‘왜 홍성에서 여기까지 와서 돕냐?’고 묻더군요. 보기에 안쓰러워서 하게 됐다고 말했죠. 사실 우리가 힘들 때 태안에서 공사를 맡아 돈을 벌었어요. 그러니 태안에 사시는 분들을 위해 공헌하는 게 맞죠.”
박 대표의 한쪽 손가락이 유난히 짧았다. 목공일을 하다가 손가락 몇 마디를 잃었다. 요즘 충남.세종 주거복지센터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직을 맡게 되면서 현장보다 회의에 참석할 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박 대표는 “못 주머니 차고 지붕 올라가는 현장직이 적성에 맞다”고 말했다. 오십대 중반을 넘어선 그에게 꿈을 물었다.
“꿈이 있다면 공방을 차리는 겁니다. 제가 여기 오기 전부터 목공, 가구제작 같은 일을 했거든요. 다리는 불편해도 앉아서 목공이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분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연초 비수기나 장마철에 우리 직원들도 이 공방에서 함께 작업하고 학생들에게 체험학습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공간만 마련된다면 금방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중심이라는 그는 기초생활수급자뿐만 아니라 장애인들과 함께 일하는 직장도 그려가고 있었다. 왜 이런 일을 계속하냐고 물었더니 “예전에는 몰랐던 보람감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단순히 돈만 버는 보람감보다, 누구를 도울 수 있다는 보람감이 삶의 자존감을 높인다. 기초생활수급자 직원들뿐만 아니다 박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 이 글은 (사)충남시민재단이 발간한 ‘2017 충남 사회적경제 윤리경영 사례집’에도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