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금산군 ‘들락날락’ 연세
시골에서 새로운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청년들이 있다. 각박한 도시보다 여유로운 시골살이가 체질에 맞는 친구들이다. 시골 하면 농사를 떠올리지만, 모든 시골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먹고살지는 않는다. 시골에서도 얼마든지 다양한 방식의 자립을 꿈꿀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지 않다. 한 명의 청년이 연고도 없는 시골에서 자립하기란 쉽지 않다.
“어릴 때부터 시골에 살았고, 계속 시골에 살고 싶었어요. 도시는 나랑 맞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거든요. 금산간디학교를 졸업하고 대전으로 갔어요. 거기는 청년들을 지원하는 활동이 많거든요. 대전에서 3년 정도 청년 관련 활동을 하다가 다시 살고 싶은 시골을 찾고 있었어요. 그런데 연고도 없이, 할 일도 없이 시골로 가기는 쉽지 않더라고요.”
연세(별칭, 26)가 금산간디학교를 졸업할 때만도 지역에 청년들을 받아들일만한 토양이 없었다. 대안교육을 받고 새로운 삶을 꿈꾸던 스무 살 청년들도 결국 지역을 떠났다. 다른 청년들과 똑같이 도시로 가서 대학입시를 준비하거나, 아르바이트하거나, 군대에 갔다. 활동가의 삶을 선택해도 시민단체는 도시에 더 많았다. 청년 활동을 하고 싶었던 연세가 금산을 떠나 대전으로 간 것도 비슷한 이유다. 연세는 금산으로 다시 돌아와 ‘금산군 청소년·청년 네트워크 들락날락’을 함께 준비했다.
“들락날락은 2015년에 생겼어요. 처음에 저랑 금산간디학교 박성현 선생님, 청년 자립공동체 ‘별에별꼴’에 보파라는 친구까지 3명이 모였어요. 간디학교 학생들의 스무 살 이후의 삶을 책임지지 못하는 시스템에 대해 박 샘은 문제점을 느끼고 있었어요. 대안교육을 받고 지역에서 실현할 장을 제공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죠.”
청년 시골살이의 숙제, ‘주거’, ‘배움’, ‘네트워킹’
‘지역에서 청년이 자립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를 두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청년들을 만나 이야기 듣고 조사했다. ‘청년이 왜 지역에 살 수 없나’라는 질문에 세 가지 열쇳말을 찾았다. 주거, 배움, 네트워킹이다.
“시골에 살고 싶어도 집이 없어서 못 살고, 학습기회가 적어 성장 지점을 못 찾고, 친구가 없어서 시골로 오지 못하는 거예요. 이 세 가지 문제 해결을 활동 목표로 삼았어요.”
배움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2016년에 청년자립학교 ‘아랑곳’을 만들었다. ‘아랑곳’은 일에 나서서 관심을 갖거나 참견하는 것을 뜻한다. ‘사람과 지구에 아랑곳하기’가 모토다. 2016년에 문화예술, 소셜커뮤니티, 청년창업 등 세 가지 분과로 나눠 학습을 이어갔다. 2017년, 아랑곳이 금산군 지역사회 청년학교로 지정되면서 배움을 더욱 넓혔다. 몸치유 이야기, 퍼머컬처 디자인코스, 생활기술학과, 소통의 글쓰기 등의 강좌가 열렸다. 활동 중심으로 배우는 청년커뮤니티도 더욱 다양해졌다. 페니미즘 독서토론을 하는 ‘알고 떠들기’, 버스킹 하는 청년들의 ‘밴드 통통통’, 공예예술을 하는 ‘예술하다’, ‘내가 대장간’, ‘숲에서 활쏘기’, ‘금산 전환마을 축제 기획’ 등 6개 청년 커뮤니티가 활동했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커리큘럼을 기획해서 수강생을 모집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이 원하는 수업과 프로젝트를 직접 짜고 진행하는 방식이에요. 3명 이상 모여 배우고 싶고, 하고 싶은 활동을 제안해주면 홍보하고, 수강생과 강사를 찾아서 연결하고, 재료비와 강사비를 지원하죠.”
관심사가 비슷한 청년들끼리 무리를 지어 배우고 활동하면서 친구, ‘네트워크’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금산 지역에 인맥이 없는 들락날락 청년들은 스스로를 ‘인맥부족’이라 칭하고 자신만의 부족문화를 만들었다. 금산간디학교 박성현 선생님이 부족장이다. 2018년 연초 모임에 모인 들락날락 식구들은 18명으로 늘었다.
“경쟁과 비교, 이런 것들이 심해서 도시에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타인의 시선에 맞추게 돼요. 그게 힘들어요. 도시에 있으면 소비에 치중하게 되죠. 남들과 비교하면서 옷 사 입고, 스트레스 풀려고 소비를 위한 소비를 하고, 돈이 없으니 알바해서 소비하고.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시골로 오는 것 같아요.”
금산간디학교 졸업생뿐만 아니라 시골살이를 지향하는 청년들이 전국에서 모이고 있다. 다른 지역과 다르게 금산은 농사를 짓지 않아도, 가족이나 연고가 없어도 시골살이를 꿈꿀 수 있는 곳이라 가볍게 들락날락한다. 금산 토박이 친구 5명도 수업이나 네트워킹 파티를 열면 직접 찾아온다.
“처음에는 금산간디학교 졸업생 중심으로 시작했지만 일정한 틀을 두지는 않았어요. 지역에 살고 싶은 20대 문제는 졸업생뿐만 아니라 한국 청년의 전반적인 문제거든요. 이제는 졸업생이 아닌 친구들도 많아요. 금산에서 창업하고, 애도 낳고 살면서 정착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름처럼 들락날락하면서 청년들에게 안전한 센터가 됐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주거문제도 조만간 해결될 예정이다. 충남도의 정책사업으로 18명을 수용할 수 있는 셰어하우스 입주가 2018년 4월 중순에 시작된다. 2015년 들락날락을 처음 기획할 때 세웠던 세 가지 목표가 어느 정도 윤곽을 잡아간다. 토양은 갖췄다. 이제부터 시골살이는 실전이다. 진정한 자립을 위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먹고사는 문제, 청년 문화 만들며 해결
“아무래도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어려워요. 정당한 임금을 주지 않는 청년 착취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청년은 돈 많이 안 줘도 쓸 수 있는 인력으로 보는 시선이 있죠. 거기서 청년들이 많이 소모돼요. 들락날락에서 제가 하는 일도 직업으로 인정받고 싶어요. 그래야 나중에 누군가 대신해도 계속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들락날락 청년들은 하고 싶은 일을 지역 내에서 창업으로 연결한다. 아랑곳의 청년창업분과를 통해 창업을 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장 내 카페인 ‘조사장커피’, 빵집인 ‘안녕하식빵’, 게스트하우스 ‘연하다여관’이 문을 열었다. 금산군 농촌중심지활성화 사업의 ‘청년몰 조성사업’과 맞물려 활기를 얻었다.
“창업을 통해 우리만의 청년 문화를 만들어가요. 청년들이 모여서 술 한 잔 하고 싶은데 그런 곳이 마땅치 않으니까, 우리가 가고 싶은 술집을 만들자고 해서 한 친구가 맥줏집 창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림, 만화, 음악, 뜨개질 등 문화예술에 관심 있는 친구 4명이 준비하는 편집샵도 4월 중에 오픈할 예정이에요.”
들락날락 청년들은 지역 원주민 문화에 무작정 맞추기보다 자신만의 청년 문화를 만들어가는 방식을 택했다. 원주민이냐, 외부인이냐를 떠나 세대 간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도 시장 분들과는 친해졌죠. 하지만 그분들 눈에도 저희가 예뻐 보이지만은 않을 거예요. 인맥부족이라고 깃털 달고 얼굴에 잔뜩 그려서 놀고 있으니까.(웃음) 어른들이 술 마시러 오라 그러면 싫다고 그러고……. 저희가 보기에는 사실 지역 토착 문화 중에 후진 부분이 많아요. 젠더 감수성도 없고. 그런 것을 타파해서 새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사실 농촌지역에서 20대 청년들이 자기 문화를 지키기는 어렵다. 시골은 어른들 눈치가 무서운 곳이다. 사실 청년이 없으니 청년문화 자체가 없다.
“금산에는 대학교가 없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금산에 남아 있으면 찌질하고 비주류로 보는 문화가 있어요. 금산 (토박이) 친구들이랑 섞이고 싶어 노력했는데 남아 있는 청년 자체가 없고 인식도 그래요. 저희끼리 재밌고 잘되는 모습 보여주면 금산 친구들도 남지 않을까요?”
“떠나더라도 자립할 힘 길러가길”
지역 교육기관으로서 금산간디학교, 시골생활 거점 ‘별에별꼴’, 읍내 활동 거점 ‘들락날락’까지 지역에 3개의 청년센터가 있으면 지역에서 청년들이 다양한 자립을 꿈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쉽게도 청년공동체 ‘별에별꼴’은 공간 문제로 문을 닫았다. 연세 씨는 “처음 상상할 때는 그림이 좋았는데, 친정집이 없어진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들락날락이 생긴 지 3년이 지나면서 지역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제 금산간디학교 졸업생은 확실히 지역에 많이 남아요. ‘졸업하면 들락날락이라는 비빌 언덕이 있다.’ 이런 안심을 주는 것 같아요. 제가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단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금산이라는 지역 안에서 뭐라도 해볼 가능성이 있는 거죠. 저 선배가 창업해서 살고 있고 활동하는 모습을 직접 보니까 재학생들도 자극을 많이 받아요.”
청년정책에 관심이 없던 금산군도 많이 변했다. 충남도와 함께 다양한 청년사업을 지원한다. 금산간디학교 교사들과 청년들이 끊임없이 군청 문을 두드린 결과다. 하지만 아직 청년들 눈에는 지자체가 변해야 할 점이 남아 있다.
“금산군청에 청년정책팀이라도 생겼으면 좋겠어요. 아직도 청년정책은 인구정책팀에서 담당해요. 지역에 인구를 늘이는 방법으로 청년을 보는 시선이 있어요. 결혼이나 출산이 아닌, 청년들이 지역에 몰려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하는 것 자체를 지역의 성과로 받아들여지게 되면 제가 하는 일도 직업으로 인정받지 않을까요?”
도시에 있을 때 연세(별칭, 26)가 살고 싶었던 ‘시골 드림 플레이스’는 강원도였다. 연세는 이제 “금산에 중독됐다”며 “아는 사람들, 좋은 사람들, 지향하는 가치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 자체가 엄청 중독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게만 계속 잘 됐으면 좋겠어요. 지역에 와서 상처 받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힘이 생기고 그 에너지에 따라 이동했으면 좋겠어요. 친구들이 금산을 떠나 어디를 가더라도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길러서 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