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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명진 Oct 03. 2020

마을공동체 활동, 코로나 시대에 살아남기

2020년 제5회 충남 마을만들기 대화마당 특별좌담회 

사람들은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거리를 둔다. 한 장소에 많은 사람이 모이지도 못한다. 전 세계적으로 언택트, 비대면을 강조하는 분위기다. 서로 직접 얼굴을 마주 보는 것을 기피하는 사회로 변하고 있다.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에 비하면 농촌 마을은 그래도 코로나 시대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마을 안에서 길을 걷다가 이웃을 만났을 때 마스크를 쓰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구 밀도도 낮고 외부와의 접촉과 이동이 상대적으로 적어 코로나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곳이 농촌 마을이다. 하지만 농촌공동체 활동은 코로나를 겪으며 제약이 많아졌다. 유일하게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마을 내 거점 공간인 마을회관은 굳게 잠긴 지 오래다. 마을 회의, 주민 교육도 적극적으로 진행하기 어렵다. 마을과 마을이 만나 공동체 활동을 공유하거나 행사를 하는 것도 제한된다.


충남연구원 충남마을만들기지원센터(센터장 구자인)는 ‘비대면 온라인’ 활동이 전면적으로 확산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위축되고 있는 마을공동체 활동의 대안을 찾기 위해 특별좌담회를 가졌다. 제5회 충남 마을만들기 대화마당의 일환이었고, 지난 9월 25일 오후 2시 충남마을만들기지원센터 사무실에서 ‘포스트 코로나와 디지털뉴딜, 농촌마을재생’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이날 행사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발제자와 토론자만 현장에 참여했으며 온라인으로 생중계됐다.


포스트(Post) 코로나? 위드(With) 코로나!


이날 발제를 맡은 이재흥 디지털사회혁신네트워크 총괄디렉터는 “위드 코로나, 농촌마을공동체와 디지털기술”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코로나 시대 이후를 기대하는 ‘포스트 코로나’가 아니라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위드 코로나’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는 우리 사회의 기본값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조금만 참으면 지나갈 테니 코로나 이후를 준비하자는 마인드에서 벗어나 코로나와 어떻게 동거할 거냐는 생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포스트 코로나는 없습니다. 코로나는 이제 일상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재택근무가 활발해진 것 같지만, 그 이전부터 일상은 ‘비대면 온라인’ 방식으로 퍼지고 있었다. 직장이 아닌 집이나 휴양지 등 어느 곳에서든 온라인으로 접속해 일을 하는 리모트워크(Remote Work, 원격 근무), 디지털노마드(Digital nomad, 디지털 유목민)는 코로나가 아니어도 보편화되고 있었다는 것이 이재흥 디렉터의 설명이다.


이재흥 디렉터는 “이제 ‘일’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 외곽이나 농촌으로 가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며 “농촌이라는 곳이 도시민을 위한 농산물 생산기지이자 목가적인 삶의 이미지, 도시 사람들이 잠시 머물다가 체험하거나 소비하고 떠나는 곳이 아니라, 도시민들이 일터를 송두리째 농촌으로 옮기는 양상이 여러 곳에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위드 코로나 시대에 도시를 떠나는 ‘디지털 유목민’을 농촌이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사회혁신, 그리고 공동체를 위한 ‘시민기술’


일상이 디지털화되면서 한편으로 일부 기업과 정부가 기술과 정보를 독점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디지털 사회혁신’이 주목받고 있다. 2014년 유럽연합이 정의한 바에 따르면, 디지털 사회혁신은 “전 지구적 문제나 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의 참여를 모으는 데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농촌 문제를 해결하고 주민참여를 촉진하기 위해서도 디지털 사회혁신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재흥 디렉터의 설명에 따르면, 유럽 연합에서 주목한 디지털 사회혁신은 우리나라의 서울시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여러 지자체에서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으며 중앙정부(행안부) 차원에서 중요한 의제로 삼고 있다. 디지털 사회혁신에 활용되는 기술을 ‘시민 기술’, ‘포용기술’이라 부른다.


“디지털 사회혁신에 사용되는 기술은 첨단기술과 다른 양상입니다. 첨단기술은 고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기술에 집중하는데, 디지털 사회혁신이 진행되면서 특정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 특정 사회 내에서 복리 증진을 목표로 만든 기술이 출현합니다.”


이를 ‘시민기술’이라 부른다. 최근 들어 장애인, 어린아이, 노인 등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기술, 즉 ‘포용적 기술’이 등장하고 있는데, 시민기술과 사실상 동의어 개념이라는 것이 이재흥 디렉터의 설명이다.


농촌공동체 활동의 ‘비대면 온라인’ 전환의 걸림돌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민 기술, 포용적 기술을 활용해서 농촌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까? 농촌 현실을 반영한 디지털 사회혁신은 어떻게 가능할까? 주민참여를 촉진하는 방법론으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날 주덕 천안시마을공동체지원센터장의 사회로 진행된 종합토론에서 참석자들은 이 문제를 놓고 머리를 맞댔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을 따라잡기에 농촌의 디지털 환경은 인프라 자체가 열악하다. 기술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장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데, 디지털 전문가는 농촌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농촌은 디지털 기술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토론자로 참여한 황준환 청양군마을만들기협의회장은 “체험휴양마을을 대상으로 디지털 활용 교육을 했는데 13명 중에 11명이 페이스북조차 이용하지 않았다”며 “아무리 좋은 사업이라도 활용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남 영상미디어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길익균 한국걷는길연합 사무국장도 “마을 할머니들은 복잡해진 TV 리모콘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며칠간 TV를 못 보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스마트폰이나 다른 스마트기기를 사용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 내에서 대면 활동을 할 수 있는 일반 주민들과 마을 외부를 오가며 활동해야 하는 마을리더 등으로 대상자를 세분화해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구자인 센터장은 “일반 주민들에게는 마을로 찾아가는 교육을 일상화하고,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 교육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며, 이와 별개로 “읍내나 다른 지역을 오가는 마을리더들을 위해 비대면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흥 디렉터는 “농촌은 디지털 기술 활용 능력이 높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오픈 소스를 활용한 새로운 시민기술을 새롭게 개발하는 것보다는 익숙한 범용 기술부터 잘 쓰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앱을 개발하기보다 기존의 테크기업이 제공하는 밴드나 카카오톡, 페이스북, 줌 등을 활용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말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진행된 ‘정보화마을 사업’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재흥 디렉터는 “당시에 정보화마을 지정하고 인프라를 구축했지만, 그 공간을 지어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고민을 깊이 하지 않고 만들어져서 대부분 방치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IT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유지, 보수까지 고려해야 한다”며 “전담하는 인력이 계속 투자되어야 하는데 그런 고민 없이 하드웨어만 크게 구축하면 유지·보수도 안되고 전담인력이 없으니 고장 나고 방치된다”고 말했다.


농촌 마을회관의 디지털 거점공간 구축


이날 종합토론에서 마을 안에서 유일한 공적 공간인 마을회관을 활용한 디지털 거점공간 구축의 가능성과 방향도 논의됐다. 구자인 센터장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디지털뉴딜 혹은 지역뉴딜에 농촌의 ICT(정보통신기술) 인프라 구축 구상을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이장님이 해외에 나가 있더라도 스마트폰으로 마을방송을 할 수 있고, 집집마다 스피커 유선망이 구축되어 있습니다. 이런 기술을 마을회관과 잘 결합하면 소통은 훨씬 더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을회관 주변에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와이파이 망을 깔고, 마을회관에 이미 설치된 스마트TV를 활용해 마을 분들이 마을회관에 앉아서 외부와 쌍방향 소통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인프라가 구축되면 마을 이장 등 마을 리더들이 회의를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외부를 오가는 일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구 센터장은 “문제는 누가 관리하고 운영할 것이냐인데 이런 기술이 도입될수록 이장님 부담이 커진다”며 “젊은 청년들에게 이런 역할을 주고 마을로 들어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재흥 디렉터는 “농촌에 필요한 것은 거대한 디지털 공간이 아니다”라며 비대면 온라인 소통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책상 하나 크기의 작은 부스를 제안했다.


온라인 소통을 최적화하기 위해서는 잡음을 최소화하는 방음시설과 마이크 장비, 얼굴 표정 등 비언어적 소통을 위한 조명 시설, 상대방의 눈을 보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눈높이에 맞춘 별도의 카메라 장비 등이 갖춰져야 한다. 그는 “1인 독서실처럼 화상회의를 할 수 있는 부스를 제공하는 것이 최근 공유오피스 업계의 화두”라며 “농촌에서도 화상회의 전용 부스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구자인 센터장은 이날 좌담회를 마무리하며 “도시에 있는 전문가들은 농촌 내부 사정을 잘 모르고, 우리는 내부 사정을 알아도 과학기술 지식이 부족하다”며 “앞으로 마을미디어사업단과 같은 전문조직을 충남에 조직하고 좋은 선진사례를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충남마을만들기지원센터는 10월 중에 시군 센터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농촌에서 비대면 온라인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기술적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직무연수를 진행할 계획이다. 6차 대화마당은 오는 10월 30일 보령시에서 “주민과 함께하는 마을경관 개선 방안”을 주제로 비대면 온라인 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메인이미지 출처 : Photo by Markus Winkl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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