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검은 토끼의 해의 엽서 만들기
금리가 너무 올랐어, 그런데 내년에 더 오를 거래. 지금 퇴사했다간 어디도 갈 수가 없을 거야. 이러다 전쟁 나는 거 아냐? 요즘 진짜 별 이상한 일들이 다 일어난다. 아휴. 내년엔 더 힘들겠어.
순서는 달라도 대충 이런 식으로 귀결되어 잔을 부딪힌다. 겨우 깨지지 않을 소리를 내며 다시 멀어졌다. 누구는 덜 마시고, 누구는 다 털어내어 자기 자리에 내려놨다. 각자 자신의 잔만큼 버티고 있나 보다.
집에 돌아오고 나면 현관에 불이 들어오고 어두운 쪽으로 향하는 복도를 발로 바닥을 쓸어가며 걷는다. 소파에 앉아 TV로 유튜브를 켰다. <우리가 지금 사야 하는 것>, <이렇게 해야 부자 됩니다>, <당신이 가난한 이유>, <OO 혐오 사건>, <OO가 죽은 이유> 등 온갖 정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우거진 정보의 숲을 헤쳐 나와 피아노를 24시간 틀어주는 영상을 틀었다. 그대로 눈을 감고 누워 선율만을 받아들였다. 세상에 너무 많은 불안이 쏟아진다. 심지어 더 어두운 미래를 우리는 확신한다. 아아, 피곤하다.
그 뒤로 한동안 피아노 곡들을 들었다. 어릴 때 양손으로 치는 걸 못해 '학교종이 땡땡땡'를 이후로 진도를 나갈 수 없었던 나였지만 어떤 슬픔, 이야기, 좌절, 극복이 담긴 가사가 사라진 곡을 듣는 게 좋았다. 마치 씻김굿이었다. 친구한테 이 얘길 했더니 자기도 요즘 가사 없는 노래를 듣는다, 아니면 아무것도 재생 안 하고 이어폰만 끼고 다닌단다. 많은 걸 괜히 듣고 살아서 불안을 겪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느샌가 정보를 피하고 있었다.
최근 많은 젊음이 온갖 방법으로 사그라졌다. 그게 또 정보로 정제되어 퍼져나갔다. 나 또한 나만큼의 애도를 표하였으나 더 볼 수가 없었다. 애도는 털어버리는 술과 달랐다. "힘들면 꺾어 마셔"같은 건 없다. 있는 대로 쏟고, 떠나간 대로 부어졌다. 듣고 보는 것에 지쳐갔다.
나는 이게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보들을 피해 가사 없는 노래를 듣게 된 친구처럼, 더 나아가 아예 아무것도 듣지 않고 외부와의 간극을 벌리는 사람처럼. 많은 사람들이 회복은커녕 정신적인 침체가 이어진다고 느꼈다. 안타깝다.
그래서 나는 내년에 올 새해를 희망하여 새 엽서를 준비하였다. 2023년 계묘년, 검은 토끼의 해를 위한 엽서를 만들었다. 비록 내년이 더 힘든 미래일 거라고 확신하지만, 비록 다겁한 존재이며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나아갈 힘이 있는 토끼와 같기를.
불안한 미래는 배경에 무수히 방향을 알 수 없는 선묘화로 만들어냈다. 하나하나 모두 찍어내었으며 순수하게 검은색보다 붉은색을 더한 것이 주제에 더 적합하게 느꼈다. 그리고 그런 어둠을 도약하며 나아가는 검은 토끼를 그렸다.
새해 엽서를 준비하기엔 너무나 이른 시간임을 안다. 하지만 우리가 겪는 고통에, 혐오보다 협치를, 분노보다 대화를, 싸움보다 서로를 그러안는 관용이 있기를 여전히 바란다. 그런 마음으로 만들어 봤다. 비록 엽서일 뿐이지만 말이다.
작품 링크 : https://www.instagram.com/p/Ck0uSqxr4W_/
개인 마플샵에서도 구매 가능하게 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