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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눗방울 Sep 07. 2021

장래희망이 뭐예요?

별 것 없는 서른 한 살   


이 나이쯤 되면 우리 모두 자기마다의 이유로 퍽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줄 알았다. 안정된 남자친구, 안정된 결혼, 안정된 커리어, 안정된 통장. 적어도 내가 생각한 삼십 대의 삶은 이보다는 조금 더 성숙하며 노련한 그런 느낌의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맞이한 삼십 대는 어딘가 모르게 삐그덕대고 뚝딱거렸다.


주위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뭔가 잘못됐다 느끼는 게 나 뿐만은 아닌 듯 했다. 지금까지 심심할 정도로 무탈하고 씩씩하게 살아오던 나는 올해 갑자기 요상한 병에 걸려 정신과에 갔다. 동갑내기 D는 파혼을 하고 퇴사를 했다. C는 그토록 꿈꾸던 회사에 들어갔지만 오히려 그 후 인생의 새로운 불행을 맛봤다. 회사의 모든 어려움에 적응하고 7년차 직장인으로 살아남은 H는 이젠 아무런 감정 없이 로봇처럼 회사를 왔다갔다 할 수 있다 하지만서도 매일 밤마다 술을 마셨다.


삼심 대 직장인의 삶이란 인공위성 같은 것이어서 우리는 초점 없는 눈으로 매일 같은 궤도를 빙빙 맴돈다. 다만 30년 넘게 작동한 본체는 더는 이전과 같은 생기가 없어 자꾸만 잔고장이 난다. 언제까지 이 궤도를 돌 수 있을까, 돌아야 할까, 어느 순간 추락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자꾸만 불안하고 초조하다.


저마다의 이유로 안정됐을 것이라 믿었던 우리는 저마다의 이유로 닳아가거나 휘청거린다. 분명 모난 곳이 깎이면서 둥글어지는 것이라 배웠는데, 가끔은 더 이상 깎일 곳 조차 남지 않게 둥글어져 버린 내 모습이 더 아릴 때가 있다. 이전이라면 응당 나를 아프게 했을 것들이 더 이상 나에게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할 때, 아 나는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더 이상 아파하지 않는 못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구나 하고 중얼거려보게 된다.


인생은 분명 행복한 것이라 배웠는데, 어쩐지 모르게 나의 삶은 가끔 달콤 쌉싸름하며 자주 허탈하고 삐걱댄다. 이토록 철없는 삼십 대, 우리는 계속 자라 어딘가 하나씩 작은 구멍이 난 어른이 되겠지. 그렇게 또 별 것 없는 어른이 되어 있겠지, 하고 생각한다.



장래희망이 뭐예요?


어릴 땐 선생님이 학기 초 마다 종이를 하나씩 나눠주며 본인이 원하는 장래희망을 하나씩 적어오라고 했다. 꿈이 많던 어린이었던 나는 그 때마다 다른 직업을 적어서 냈다. 유연성 하나 없는 뻣뻣한 몸에도 당차게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고 자기소개를 하던 나는 점점 머리가 커 갈수록 멋져 보이는 직업, 예를 들면 외교관이나 국제 변호사 같은 무거운 직업들을 적어냈다. 사실 저 때 장래희망을 적어내면서도 내가 적는 이 직업이 뭘 하는 건지는 전혀 몰랐다. 발레리나는 그저 무용옷이 예뻐 보여서 적어냈을 뿐이고 외교관이나 국제 변호사는 뭘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뽀대난다는 이유로 골랐을 뿐이다. 선생님들도 외교관이나 국제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하면 '어머 우리나라를 대표하거나 억울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훌륭한 어른이 되고 싶은거구나!'하면서 짝짝 박수를 쳤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에게 '진짜 직업의 세계'를 알려준 어른은 평생에 딱 두 명 있었다. 한 번은 한참 내 꿈이 '외교관'이 되었을 때였는데, 어린 내가 외교관이 되고 싶다고 하는 걸 기특하게 여긴 부모님은 어떤 유명한 인물한테 나를 데려갔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라 그 사람이 정확히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쩌다 그런 사람이 나같은 애송이 초등학생을 만나주게 되었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진로탐색 특강이나 뭐 그런 류의 행사이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도 많은 활동을 했겠지만 나에게 남아있는 건 그 사람의 방에서 단 둘이 진로상담을 했던 기억 뿐이다. 나에게 '너는 장래희망이 뭐니?'라고 묻길래 '외교관입니다!'하고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당연히 '오, 대견하구만!'하고 칭찬을 받을 줄 알았는데 되려 돌아온 건 왠지 따져 묻는 것 같은 질문이었다. '너 외교관이 무엇을 하는지는 알고 하고싶다고 하는거니?' 나는 또 자랑스럽게 '외교관이란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외교를 하는 직업으로서~ 블라블라' 하며 배운 그대로를 읊었다. 그 사람은 내 대답을 듣고 피식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외교관은 말이야~ 다른 나라가 우리나라 욕하는 기사를 쓰면 그 나라에 달려가서 <아니 우리 나라 왜 욕합니까! 욕하는 기사 내리세요!> 하는 역할을 하는 거다. 오늘 일본이 우리나라 욕을 하면 일본에 가서 따지고 내일 프랑스가 우리나라 욕을 하면 프랑스에 가서 따지는 그런 건데, 정말로 그런 일을 하고 싶나?'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생각했다. 난 정말 다른 나라에 가서 우리나라 욕하지 말라고 따지는 일을 하고 싶나? 아니, 애초에 외교관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들었는데 왜 저런 하찮은 역할을 하게 된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재차 '정말 이런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묻길래 시무룩해진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 사람은 그럼 너는 좀 더 생각해보고 오라면서 나를 방에서 내보냈고, 이후 부모님이 쫒아와 어떤 대화를 나눴냐고 물어보는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저 아저씨의 말을 듣는 순간 내 외교관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서 자박자박 깨져버렸다.


두 번째 어른은 조금 더 커서 만난 한 외국계 기업의 인사담당자였다. 이 분은 좀 신기한 경로로 나와 만나지게 되었다. 해당 기업의 인턴십 서류 전형에서 대차게 떨어졌던 내가 부끄러움도 모르고 '나를 떨어뜨린 건 좋지만, 내가 뭐가 문제인지 피드백을 받고 싶다'며 바로 이메일을 보냈고, 뻔뻔한 나의 태도를 신기하게 본 인사팀장이 나를 회사로 초대했던 것이다. 그분은 전반적인 커리어 조언을 해주면서도 가장 중요한 건 '회사에서 내가 어떤 구질구질한 일도 하게 될 수 있음'을 인지하는 거라고 했다. 본인의 친구를 예로 들자면, 엄청난 포부를 가지고 농협에 입사했는데 정작 하는 것이라곤 제철과일을 깎는 일이었다는 거다. 여름이면 복숭아, 가을이면 사과와 배를 사각사각 깎으며 '내가 이러려고 회사왔나'라며 한탄을 하곤 하는데, 이게 모든 직장인의 숙명이라는 거였다. 내가 회사에 가서 사과를 깎게 될 수도 있음을 처음부터 인정하고 들어가면 실망하고 힘들어 할 일도 적을 거라 했다.


그 어떤 멋져보이는 직업도 뒷면은 너덜너덜하다는 걸 알려줬다는 데서 가장 현실적인 진로 조언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외교관에 대해 이야기한 아저씨는 '뭐 어린애한테 저렇게까지 말했을까?' 싶으면서도 가끔은 '그 아저씨 참 통찰력 있었네'하고 피식 웃어보게 된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서로에게 장래희망을 묻지 않는다. 그저 서울 아파트 값과 주식과 코인을 이야기하며 언제 로또에 당첨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토론한다. 무주택자는 유주택자가 되는 것, 유주택자는 더 좋은 급지의 유주택자가 되는 것이 꿈인 세상이다. 가끔 내 인생 어디로 가는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만서도 결국 꿈은 어느 날 눈떠보니 부자가 되어 놀고먹게 되는 것. 이제 내 옆엔 내 나이만큼이나 나이들어 버린 장래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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