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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눗방울 Dec 21. 2021

서울의 먹고사니즘

출퇴근의 고달픔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회사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편도로 한 시간 반이 걸린다. 출퇴근 시간 인파를 견디며 버스에서 지하철로, 또 지하철에서 버스로 두 번을 환승해야 도착할 수 있으니 꽤나 버거운 통근길이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면 7호선 전철역 앞에 세워주는데, 제법 많은 사람들이 환승을 하기 위해 버스에서 다 같이 우르르 내린다. 


종종걸음으로 전철역 입구에 들어서면 1명이 간신히 올라탈 수 있는 좁은 폭의 에스컬레이터가 기다리고 있다. 특이하게도 이쪽 출구에는 계단이 없어 사람들이 일렬로 주욱 줄을 서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철 역으로 들어가는데, 출근시간이다 보니 다들 발걸음이 바쁘다.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는 순간부터 앞사람들이 내닫듯이 뛰어 내려가는 발걸음 소리가 쿵쿵 쿵쿵 가슴을 울리고, 탁탁 탁탁 소리를 내며 급히 뒤에서 쫓아 내려오는 발소리도 귀를 때린다. 출근길 환승역 에스컬레이터라는 공간엔 무언의 규칙이 자리 잡고 있어서 앞사람의 속도에 발맞추어 빠르게 역사로 내려가 주는 게 예의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는 듯하다. 어느 날 갑자기 출근길의 여유를 즐기고 싶은 생각이 들거나, 그날따라 발목이 조금 시큰거리더라도 탁탁 탁탁 소리에 맞춰 다리를 움직이는 걸 멈춰서는 안 된다. 모두가 일렬로 서서 같은 곳을 향해 달려가는 출근길 에스컬레이터에 낙오자를 위한 중간 출구란 없다. 그렇다고 나 혼자 속도를 맞추지 않고 가만히 서 있자니 굉장한 민폐 덩어리로 낙인찍힐 것 같은 기분이다. 에스컬레이터가 끝날 때까지 앞사람과 뒷사람의 속도에 맞춰 걸어가는 것이 정답인 공간. 나의 속도가 다른 사람들의 속도에 맞추어 정해지는 공간. 출근길 환승역의 모습이다. 


아침마다 7호선 역사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서울에서의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 앞서가는 사람의 뒤통수만 바라보면서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남들과 같은 속도로 살아온 것이 아닐까? 앞서가는 사람도, 뒤따라 가는 사람도 마음이 바쁘기만 한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는 대신 나의 속도에 맞춰갈 수 있는 널찍한 계단이 어디엔가 있지 않았을까?


얼마 전에 제주도로 휴가를 다녀왔는데, 한적한 제주의 길거리를 보며 서울은 작은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제주도에서는 지도를 잘못 봐서 길을 잠시 헤매도, 운전 중 길을 잘못 들어 조금 돌아가도 큰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헤매고 돌아간 곳마다 그 나름대로의 작은 재미와 행운이 있었다. 


만약 서울에서 길을 헤맸다면? 서울에서 운전 중 길을 잘못 들었다면? 혹시나 러시아워였다면 꽉 막힌 도로에서 몇십 분이나 빵빵거리는 경적소리를 들으며 약속시간에 늦어 분통을 터뜨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다 못해 서울에서는 지하철의 어느 칸 어느 사람 앞에 서느냐 정도의 작은 선택까지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거나, 드라마에 빠져 있는 사람 앞은 피하고 전철 문이 열릴 때 출구를 흘깃거리며 역 이름을 확인하는 사람 앞에 서야 조금이라도 앉아가기가 쉽다. 이 모든 것들은 한 시간 반 통근을 힘들어하는 나에게 서울 토박이인 남편이 알려준 팁이다. 이 팁을 잊고 앉아서 게임을 하는 사람 앞에 섰다가 출퇴근길 내내 무거운 노트북을 들고 서서 온 탓에 진이 쭉 빠져 버린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서울은 실수에 따른 책임이 너무나 커서 작은 실수도 용인되지 않는다. 


스무 살 때 서울에 올라와 대학생활을 시작했을 땐, 나에게 서울은 크고 거대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하나의 별 같았다. 내가 살던 지방과는 다르게 밤마다 번쩍거리는 네온사인이 켜지고 청춘을 감당하지 못한 20대들의 환호성이 들리던 홍대와 신촌에서는 공기에서조차 젊음의 냄새가 났고, 여의도와 강남에서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걸음을 옮기는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활력의 냄새가 났다. 서울에서 터를 잡고 제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다. 그런데 막상 내가 서울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어른이 되자, 서울은 빛나는 만큼 고독한 곳이었다. 아름다운 서울의 야경은 밤늦게까지 퇴근하지 못하고 일과 씨름하는 직장인들의 눈물이었고, 업무지구의 점심시간에 느껴지던 활기는 어떻게든 햇빛을 보며 비타민 D를 합성해보려는 사람들의 아우성이었다. 


점점 서울에서 '실수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은 부자들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직주근접이 되는 값비싼 아파트에 사는 진짜 부자들이나, 길을 잘못 들어 인파 속을 헤매고 두 시간 가까이 서서 출근하더라도 멀쩡할 수 있는 체력 부자들이나, 시간이 넘쳐서 하루 중 일부를 낭비해도 별다른 부담이 생기지 않는 시간 부자들. 먹고사니즘의 고단함 속에서 이런 건 다 마음에 달린 일이니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조언은 너무나 이상적일 뿐이다. 우리 집은 서울 중심부에서 먼 대신에 끝내주는 조망을 가지고 있는데, 출퇴근 인파에 잔뜩 지쳐서 집에 돌아온 날에는 창 밖의 뷰고 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어휴, 이놈의 산골짜기 집구석!' 하며 짜증이 잔뜩 치밀어 오른다. 서울에서 여유를 가지고 살려면 돈이 많거나, 체력이 끝내주거나, 시간이 많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가까이에 있는 사소하지만 감동적인 것들을 돌아보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버스 창 밖의 노랗고 빨간 꽃이나 단풍들, 매일 지하철로 지나가는 한강의 반짝이는 풍경들을 애써 고개를 들어 눈에 담는 사람보다 휴대폰에 머리를 박고 있거나 멍하니 앞사람만을 응시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먹고사니즘에 지쳐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어떻게든 여유를 손에 쥐어보려고 힘든 몸을 이끌고 운동을 하고, 이사를 가보려 돈을 모으고, 몸값을 높여 시간당 내는 수익의 효율을 높여보려 공부를 한다. 서울의 먹고사니즘에서 탈출해보기 위해서. 조금 더 주변의 사소한 것들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 지나가는 계절과 한강의 반짝이는 윤슬을 더 자주 눈에 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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