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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주인이다...

대청동 괴이 - 동티 난 일본집(3)

by Hazelle

나 사실 공식적인 천재야.

그래서 뭐,

그다지 덕보고 산 건 없는 것 같아.

그래,

심청전 한 권으로 그냥 한글을 다 깨친 거(두 살 때)

말이 엄청 빨랐다는 거랑 기억력이 무지 좋다는 거(것도 이제 늙어서 많이 퇴색했지만)

그 정도야.


아 약간의 덕을 봤다면,

학교 때 암기과목을 남들처럼 공들여한 적은 없고 그냥 아주 쉽게 다 만점을 받았다는 거 정도가 있겠네.


이 뜬금없는 자랑을 왜 하냐면

그 어린 시절의 기억을 어떻게 이렇게 다 하느냐 물을 수도 있으니 아무리 찾아도 이유는 그냥 내 지능이 높아서 그런 거 같다는 생각이야.


난 심지어 한 살 때 엄마 아빠랑 진해에서 살던 셋집 수돗가도 그대로 생각나.


그걸 그렸을 때 엄마가 놀라 자빠졌어.

그 일본집 이야기를 하기 전, 작게 소름 끼치는 이야기 한 번 할게.


이 이야기는 한 적 없는 것 같아.


우리 엄마 아빠는 진해 옆 웅천이라는 시골에서 교사를 하다가 만났고, 나를 가졌고, 셋집에서 낳아서 키웠어.


그리고 그 집 앞에는 주인집이 있었고 마당과 수돗가는 공용이었는데 그 주인집 아줌마가 무당이었어...


처음부터 무당은 아니었는데

엄마 아빠가 이사 와서 살기 시작한 다음에 신을 받았대.

신병이 너무 심해서 버티다 버티다 받았다는데 그 아줌마가 버티던 시기에 어느 날 백일 된 내가 자지러지게 울어서 외할머니랑 엄마가 들여다보는데 두 사람이 보는 앞에서 왼쪽 뺨이 마구 붉어지더니 가라앉고 나자 이 점이 생긴 거야.


이런 이야기를 누가 믿어주겠어?

하지만 분명한 건 난 아주 어렸을 때 (백일 전) 사진 보면 흑백이라도 얼굴에 점 없었어.

태어났을 땐 분명 없었던 점이 생긴 거야.

살면서 몇 번 엄마가 그런 소리를 하는 걸 들었어.

이게 다 그 귀신 들린 여자 집에 살아서 그런 거라고...


엄마 아빠가 나를 안 키웠다고 원망하면서 평생 살았지만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한 적 있어.


그 집에서 너무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으니까 나를 외갓집에 보냈었나…


저번 이야기에 식모들 이야기했잖아?

내가 별나서(돌도 안 된 애가 별나봤자 얼마나 별나겠어) 그들이 관둔 게 아니라 그 집에서 하도 사고를 겪어서 그만둔 거였어.

하나는 부엌칼에 팔목이 그였고(정말 다치기 힘든 부위 아냐? 것도 오른손을)

또 하나는 수돗가에서 겨울도 아닌데 무단히 미끄러져 발목이 나갔어.

그리고 맨 마지막은 유괴를 하려던 식모까지...

그 식모가 소름 끼쳤던 건 알고 보니 서른두 살이었대.

시골이고 고생을 많이 해서 열일곱이 이리 노안인가 보다 했대 엄마는...


나의 어린 시절은 정신 사납고 좀 고단했던 거 같아.

항상 서러웠던 건 나는 엄마 아빠가 아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키워준다는 거였거든.

특히 그 외삼촌네를 가면 더 심하게 느꼈어.

아무도 나는 혼내지 않아.

외숙모에게 우리 엄마는 시누이니까.

그리고 나이차이도 나고.(우리 외숙모는 열아홉에 우리 외삼촌과 결혼했고 둘은 열 살 차이가 나)


우리 외삼촌네는 동네에서 소문난 부자라 매일 가면 항상 고기반찬에 사촌들은 늘 예쁜 인형과 일본 고급 아동복을 입고 있었어.


나도 외할머니가 갖고 싶은 건 다 사줬지만...

부모가 사준 게 아니라 그런지 늘 서러웠어.

할머니가 나에게 사주는 옷이나 장난감은 국제시장에서 고르는 것들이었는데 그 어린 나이에 허영심과 질투심이 가득했던 나는 사촌들이 가진 것보다 싸구려라고 짜증을 냈었어.


그런데 내가 좀 똑똑하다 했잖아?

내 사촌들은 넷 다 그냥 보통이었어.

우리 외삼촌은 수재인 자기에게서 평범한 아이들이 나온 게 늘 못마땅한 사람이었어.

그런데 여동생의 딸인 내가 눈에 띄게 똑똑한 거야.

외삼촌은 대놓고 나를 너무 예뻐했어.

그래서 외삼촌이 일본에 출장 갔다 오면서 가져오는 선물 중 내 것이 가장 좋은 것이 되기 시작했지.

사촌들은 그런 내가 너무너무 싫었을 거야.

나 보다 세 살 많은 사촌 언니가 어느 날 외숙모에게 하는 말은 우연히 들었는데 지금은 충분히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어린 날 나는 그 말이 너무 사무쳤지.


"쟤는 부모도 있는데 왜 맨날 우리 집에 오는 거야?

맨날 우리랑 밥 먹고, 잘난 척해서 아빠한테 우리만 혼나게 하고

쟤 좀 그만 오라 해!"


그 이야기 듣고 며칠간 그 집 안 간다고 할머니한테 있는 대로 성질부린 게 생각나.

할머니가 대체 왜 그러냐고 해서 일러줬더니 우리 할머니가 했던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나.


"아이고야... 갸가 그랬구나.

잘 들어라이, 그 못난 것이 벌써 아는기라.

아무리 해도 니를 못 이긴다는 거를...

살면서 그런 못난 종자를 수없이 만날끼데이.

갸들은 그렇게 니를 까내릴라 하고 흠집 낼라 할끼데이.

왠지 아나?

그거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초라한 것들이라 그렇데이.

니가 그런 거 전혀 상관없어해야 그것들이 더 비참하지. 안 그렇나?"


지금 생각해도 좀 아이러니한 건

그 사촌언니는 우리 외할머니한테 친손녀잖아?

난 할머니한테 물었었어.


"근데 그 언니는 친손녀잖아. 나는 외손녀인데 할매 니는 왜 내 편드는데?"


“아이고 이 똑똑한 가시나 봐라.

네 살밖에 안된기 친손녀, 외손녀, 이종, 고종 다 안데이.

내 니한테만 말한다.

이거는 비밀이데이.

니는 내 금쪽같은 둘째 딸이 낳은 얼라고

가는 며느리가 낳은 딸이고.

니도 다음에 어른 되면 다 알게 된다. 지금은 뭐 그냥 그렇다고 넘어가면 된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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