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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방 스토리 - 몽테뉴와 오이무침

by Hazelle

시작하면서...


기억하실지도 모르지만, 십 년도 더 된 시절 제가 네이트판에 쓰던 고서방 스토리가 꽤 인기가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 고서방이랑 살고 있으므로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 보도록 하죠.


다만 연재는 아니고, 댓글과 좋아요에 따라 업데이트 주기가 정해집니다.





제목 한 번...


대체 무슨 뜻일까... 생각하게 만들었다면 나의 의도는 성공적 ㅋㅋㅋ



프랑스 철학가이자 작가인 몽테뉴와 한국식 오이무침은 아무런 상관이 없으므로


괜히 무슨 관계인가... 고민은 일단 차단하고.



<진짜 직접 개발한 기가 찬 명란 오이무침>


물론 완전 창작은 아님


또 유튜브 돌아다니다가 혹하는 오이무침 두개를 발견하고


하나는 일본식 이자카야에서 주는 명란 오이


또 하나는 토종 한국 매운 오이무침


둘 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인데


종류 다르게 두 개 하는거 귀찮으니 하이브리드 혹은 퓨전으로


만들어보고자 하는 의도



어차피 이 글도 퓨전이니까


글 속의 글,


개발한 오이레시피도 공개



크고 실한 오이 두 개 기준


오이는 듬성듬성 한 입 크기로 자르는데 속을 다 파줌


속 아깝다고 안 파면 맛도 없고 아무리 짜내도 속의 물이 끝도 없이 나와 오이국이 됨


듬성듬성 자른 오이를 큰 볼에 담고 굵은 소금을 뿌려 마구 섞어 절임


15분 정도



그 사이 양념장 준비


고추장 1, 고춧가루2, 아무 액젓이나 1


마늘 1 깨소금 찧어서 1 참기름1 설탕1


핵심분자 명란젓 1(귀찮아도 껍데기 깔 것. 안 그러면 인생의 쓴맛이 올라옴)



소금에 절인 오이를 찬물샤워


꼼꼼하게 잘 씻어서


안그러면? 짬



형편이 좋은 사람들은 부추나 미나리나 쪽파, 양파 등 같이 썰어서 오이랑 합체


양념장 합체


두 개나 가지고 있는 손 중 하나 사용해서 골고루 잘 무쳐주면 끝



가족들과 나눠 먹기도 아까운 인생 최고의 오이무침을


당신은 방금 창조했다는 점



냉장고에 넣어서 좀 더 아삭하고 쳥명하게 살짝 숙성



그런데 그거 아는지?


오이는 희한하게도 호불호가 갈리는 채소라는 점


우리집 인간들 중 두 인간은 오이 극혐자들임


1번과 3번


앗싸 입 두개가 줄었음


좋은 소식


고서방은 입 안이 최근 헐었음.


매운 거 먹으면 셀프 고문임.


더 좋은 소식


2인분짜리 입이 하나 더 줄었음


그리하여 이 국보급 오이무침은 나와 2번만 독점할 예정임





주말보다 더 싫은 날


수요일


이 나라 살고 부터 수요일을 저주하게 됨


초딩까지는 아예 학교를 안 가고(대체 일주일 중 한복판인 날에 왜 뜬금없이 학교를 안 가?)


중딩은 오전수업만 하고 집에 오면 12시 45분


게다가 수요일은 애를 잡겠단 건지 두 시간 체육


아침에 치장하느라 먹는 걸 포기하는 2번은 대문 들어서면서 부터 아사 직전 상태로 들어섬


고딩은 오전수업만 있는게 보통이지만


우리집 고딩은 우열반이라 오후에 엑스트라 수업이 있음



이번주 수요일의 메뉴는


새우튀김, 어묵탕, 그리고 비장의 오이무침, 김, 계란말이였음.





고서방은 작년 오십 살 생일에 번아웃을 겪고


이후 정신과 상담후 공식적인 우울증이라는 타이틀을 획득


이후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달에 한번 의사 상담을 하고 있음


우울증 약도 복용중임


우울증약이란 무엇인가 꽤 궁금했었는데


이걸 먹는다고 기분이 좋아지는 건 아님


한마디로 어떤 감정이든 중화시키는 기능임.


즉, 화가 나는 것도 저지


너무 기뻐 죽겠는 것도 저지


슬픈것도 희석


인간을 살짝 로보트화 한달까


혹은 좋게 말한다면 인생달관한 생불로 만든달까...



의사가 핸드폰도 자제하라고 권고했음


현대인의 우울증은 각종 매체와 SNS 에 너무 과도 노출되어 발발하거나 심각해진다고...


완전히 끊지는 못했지만 남자는 이후 책을 많이 읽게 됨



그래,


그가 독서광이 된 것은 나쁘지 않음


문제는 본인이 읽은 책을 심하게 공유하고자 하는 것에 있음


한때 그가 프로이드의 꿈의 이론을 읽었을 때는


하도 피나게 들어서 잠자리에 들면 프로이드 꿈을 꿀 정도였음


기욤 뮈쏘의 그 많은 책도 다 섭렵했고


볼테르, 프로스트, 프레베르... 이러다가 저 남자가 나보다 유식해지는 거 아냐 걱정될 정도로


그는 읽고 또 읽었음



최근에 그는 몽테뉴의 컨트라벌시를 읽었음



수요일 점심


중딩이 도착하자 마자 바로 텅텅 빈 위에 넣을 수 있도록 상을 다 차리고


기다리고 있는데 그녀가 들어와 대충 손을 씻고 허겁지겁 한 술 뜨기 시작하자


남자의 몽테뉴 강의가 시작됨



"몽테뉴는 말했어.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딸과 나는 순간 서로 눈빛을 교환함


'제기랄... 또 시작되었어'



"그는 끊임없이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하지?”, “나는 정말 자유로운가?” 하고 스스로를 해체해."



대체 뭔소리여...



"그는 논리적 결론보다는 자기 안의 다양한 목소리를 존중하고 공존시키는 철학자였지."



그렇구나...



"몽테뉴에게 있어 컨트라벌시는 자아의 확신을 깨뜨리는 과정, 자기 생각에 "스스로 이의제기"하는 일이란 거야


자, 오디.


너는 끊임없이 너의 존재와 너의 생각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서 살고 있니?


그렇지 않다면 이제부터라도 각성하고 너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항상 이의제기 하는 습관을 가져보는 것이 좋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다른 이들의 유행과 행동을 관찰하는 것 보다는


네 자신을 들여다 보는 것이 중요해.


그러므로 컨트라벌시는.... 어쩌고 저쩌고..."



그가 그렇게 연설을 하는 동안


나와 오디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오이무침 반을 작살내는 중이었음.



남자가 계속해서 컨트라벌시에 대해 말을 이어가는데


드디어 오디가 한 마디 했음






"엄마, 오늘 이 오이 노벨상감이다.


엄마는 책 보다 오이무침으로 노벨상 먼저 타겠어.


엄마는 오이무침에 대해 끊임없이 컨트라벌시를 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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