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만들기로 이란의 여성인권운동에 힘 보태기
12월. 크리스마스를 고대하는 별빛이 집집마다 창문을 밝히는 시기이다.
춥고도 어두운 12월의 초입의 스톡홀름에서 나는 우리 회사 동료들을 위한 김치 워크샵을 열었다.
이 모든 일의 시작: 미드섬머
6월 초에 친구의 친구가 Älvsbacka라는 스톡홀름보다는 오슬로에 더 가까운 아주 작은 마을에서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참여 아티스트는 4월 정도부터 거기에 상주하며 작업을 하고 있었고, 미드섬머를 맞이하여 6월 마지막 주는 아티스트들의 지인, 친구들, 연인 등등을 초대해서 전시 오프닝도 하고 겸사겸사 명절도 챙기기로 한 것이다.
거기에서 4일간 지내는 동안 어떤 식으로든 공동체에 기여를 할 수 있다면 숙박비와 식비가 다 무료라는 것이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망했다. 워크샵을 열 정도의 스킬은 없는데?' 그런데 문득, 정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요새 사람들이 김치를 여기저기서 되게 좋아하는데, 자기만의 김치 만드는 법을 알려주면 어떨까?
여기서 잠시 짚고 넘어가자면, 나는 요리를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김치 전문가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같이 살던 스웨덴 룸메가 항상 김치든 뭐든 뚝딱뚝딱 만들어서 스스로 해 먹는 모습에 몇 번 감명을 받고 내 김치를 겨우 만들기 시작한 햇병아리였을 뿐이다. 그러나 그러면 뭐 어때. 슈퍼에서 야매로 파는 김치보다는 훨씬 더 맛있게 만들 수 있게 해 줄 수 있다는 자신은 있었다. 누가 뭐래든 나는 한국인이니까.
"나는 그럼 김치워크샵 할래"
친구는 바로 주최자에게 연락을 했고, 그는 쿨하게 '김치워크샵? 대박이다. 오케이'를 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워크샵을 수료한 사람들에게 나눠줄 레시피를 만화로 그려 봉투에 하나하나 담고, 어찌어찌 마음의 준비를 해서 레지던시로 향했다.
레지던시 3일째. 아주 화창한 낮 한시. 풀밭에 간단하게 차려놓은 피크닉 테이블에서 워크샵이 시작되었다.
주최한 친구의 누나, 엄마, 레지던시 아티스트들, 차로 좀 떨어진 곳에 사는 주민들까지 적어도 15명의 사람들이 눈을 빛내며 워크샵에 참여해주었다. 다 같이 마늘, 생강, 고추를 썰고, 배추에 양념을 묻히고 또 통에 담기까지 그 모든 순간순간이 특별했고, 참 즐거웠다. 내가 항상 당연하게 여기던 김치를 세상 반대편의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또 같이 만들어보는 이 시간들이 내 안에 어떤 스위치를 켠 것 같다. 즐거움 스위치.
새로운 것을 시도해봤다는 즐거움.
사람들과 모여서 사부작사부작 뭔가를 만드는 즐거움.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를 이 먼 곳, 스웨덴 시골에서 알릴 수 있었다는 즐거움.
갓 만든 김치를 야매로 만든 비빔밤과 함께 다 같이 낄낄대며 먹는 즐거움.
이 즐거움은 내 삶에서 지속되어야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매니저는 말했지. 자기도 김치 만들고 싶다고.
미드섬머 워크샵의 사진과 동영상을 인스타그램에 공유하고 나서 스톡홀름 오피스 매니저인 동료에게 메시지가 왔다. 자기도 너무 배우고 싶다고.
흥 뭐 지나가는 말이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진심이었다.
사무실에서 만나자 또 김치 워크샵 얘기를 꺼내는 것이다. 자기도 배우고 싶다고, 오피스 개방해줄 테니까 워크샵 열어주면 안 되겠냐고. 이 질문을 듣는 순간 별 고민 없이 나는 당연히 할 수 있지! 하고 대답했고 9월에 서울에 가기 전에 하려고 했으나 어영부영 시간이 흘렀고 서울에서 돌아오니 11월의 초입이었다.
매니저는 까먹지도 않고 나에게 다시 물어봤다.
김치 워크샵...언제 할 거야?
이제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에겐 뭔가 부족한 2%가 있었다. 김치 만드는 거 알려주는 거 재밌었지. 근데 또 해도 처음만큼 재밌을까?
이유를 찾아야 해.
마음을 움직이는 동기부여가 안된 상태에서 일을 벌리고 계획하는 건 에너지 소모가 크다. 그래서 나는 6월에 느낀 재미가 귀찮음을 이기지 못하는 이 상황에서 나를 위해 뭔가 명백한 이유를 만들어줘야 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 꼭 해야 할, 하고 싶을 이유.
8월부터 한창 이란에서의 여성 인권 운동 시위가 내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몰라서 괴로웠다. 이런 마음을 남자 친구에게 전하던 어느 날 그는 뜬금없어 보이나 나에게는 열쇠가 되었던 말을 한다. "너 김치워크샵을 뭔가 이란과 관련 있는 행사로 만들어보면 어때?"라고. 순간 엥? 김치랑 이란이 뭔 상관인데 했으나 곰곰이 생각해보자 내가 수고비로 받으려고 했던 수익을 여성인권운동을 위해 기부할 수가 있다는 생각에 미쳤다.
그래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내가 혼자 기부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모을 수 있는 방법이 내 눈앞에 있었는데.
12월 6일. 생에 처음으로 스웨덴 동료들과 김치를 만드는 날. 그리고, 지구 또 다른 저편의 그녀들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건넬 수 있는 날. 그날을 위해 작은 준비들을 시작했다.
D-DAY
같이 일하는 한국인인 친절한 그녀 D 덕에 장도 무사히 봤고, 수육과 두부김치까지 만들 준비를 모두 마친 화요일. 자꾸 마음이 일렁일렁. 기대와 걱정이 한 데에 뒤섞여서 하루 종일 가만히 있기가 어려웠다.
워크샵을 기록해두어야 한다는 남자 친구는 카메라 장비로 가득 찬 배낭을 메고 6시에 사무실로 등장했고 나는 미리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을 띄어두었다. D와 나는 모든 재료를 주방 카운터 위에 웨스 안더슨 스타일로 세팅해놓고 떨리는 마음을 달래며 동료들이 일을 마무리하기를 기다렸다.
6시 반. 새초롬하게 도마 위에 누워있는 배추들을 뒤로하고 나는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모두를 불러 모았다.
주말 몇 시간을 바쳐 완성한 피피티로 김치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간단하게 설명을 해줬고, 그 후에는 바로 각각 역할을 나누어서 김치 만들기를 시작했다. 열 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하나씩 도맡아서 하니 여섯 포기는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재료 준비가 끝났다.
매일 같은 오피스에서 차 마시고 점심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들이지만 진지한 눈빛으로 생강을 갈고, 마늘을 까고, 파를 써는 모습을 보니 또 동료들이 새로워 보였고, 왠지 귀엽기도 했다. 각자 궁금한 점들을 재잘재잘 물어봐줄 때는 또 가슴 한편이 따뜻해지기도 했다. 나 이런 열정 너무 좋다고. 그런 모습 자주 좀 보여주면 안 되겠니?
피날레는 수육과 두부김치, 그리고 막걸리
다 같이 만든 양념재료를 한 데에 섞고, 미리 절여둔 배추에 골고루 묻히는 작업까지 모두 완료한 우리는 D가 뒤에서 열심히 만들어준 수육과 두부김치를 먹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이 날을 위해 막걸리까지 독일 마트에서 주문을 해뒀는데, 이런 작은 것들도 사람들을 기쁘게 해 줄 수 있다는 게 새삼 즐거웠다.
갓 지은 쌀밥. 윤기 나는 수육. 생두부와 (올리브 오일이 다 떨어져서...) 버터로 구운 두부.
그리고 우리가 직접 만든 김치까지. 간단해 보이나 사실 정성이 가득하고 따뜻한 저녁이었다.
나의 착각일 수는 있으나 그 어느 때의 애프터워크 때 보다 동료들이 활기차고 또 즐거워 보였다.
뭔가를 함께 만들어내는 것에는 이런 힘이 있는 걸까. 이런 저녁은 몇 번이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크샵이 이렇게 제대로 돌아갈 수 있게, 또 세상에 흔적을 남길 수 있게 도와준 D와 남자 친구를 보며 또 다른 종류의 힘도 느꼈다. 함께하면 뭐든지 조금 더 즐겁게 할 수 있구나. 누군가가 같이 영차영차 힘 내주는 거 굉장한 거구나. 그런 순수한 감동들이 나를 찾아왔다. 다음날인 오늘은 심지어 그 뿌듯함에 취해 미소마저 지으며 일어났다. 와, 이 어두운 겨울에 이 긍정적인 마음이 가능하다고? 스웨덴에 와보시라. 쉬운 마음이 아니다.
김치는 힘이 세다
스시만들기? 훠궈 만들기? 까르보나라 만들기? 그 뭐가 되었던 김치만큼 사람들이 배워서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치에는 뭔가 말할 수 없는 오묘한 매력이 있고, 그 매력을 뒷받침하는 음식 자체의 건강함도 있다. 김치가 내 생애 첫 워크샵을 장식하고, 직장생활 중 내가 주도한 첫 애프터 워크를 이끌었다. 다음번엔 김치 만들기와 어떤 것을 결합해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