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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필 Zho YP Aug 14. 2023

역사적 벤치마킹

조영필

역사상 최고의 벤치마킹은 무엇일까? 나는 단연코 그것은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라고 말할 것이다. 그는 서기 1세기에 개발된 것으로 추정되는 와인압착기*를 벤치마킹하여 금속활자에 칠해진 잉크가 균질하게 종이에 묻을 수 있는 인쇄기를 개발하였다. 그리고 그의 인쇄기는 유럽을 더 이상 변방이 아닌 세계사의 중심으로 우뚝 솟게 만든 결정적인 지식 공유의 수단이 되었다.


*와인압착기는 大플리니우스(AD 23-79)의 <박물지>(Historia Naturalis)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와인 제조업자들이 "포도 더미 위에 넓은 판자를 얹은 다음 판자에 압력을 집중적으로 가하는" 나사를 사용한 새로운 종류의 압착기를 발명하였다고 기술하였다. 大플리니우스는 폼페이 최후의 날에 로마의 해군사령관으로서 함대를 이끌고 구조활동을 펼치다가 유독가스에 질식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다음으로 위대한 벤치마킹으로는 포드의 컨베이어 시스템이 유력한 후보가 아닐까? 그의 컨베이어 시스템(1913년 도입)은 시카고의 정육산업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시카고의 정육산업의 활황은 또한 철도교통의 확산이 그 배경이라고 하니 역사를 되짚어보는 즐거움을 주는 지점이다.


미국에서 처음 철도가 건설된 것은 1826년으로 영국에서 조지 스티븐슨(1781-1848)에 의해 철도운송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825년의 이듬해이었다. 그해 매사추세츠주 퀸시에서 그래나이트 철도(Granite Railway) 3.2Km가 개설되어 화강암을 항구까지 실어나르는 데 활용되었다. 본격적인 철도는 1828년에 건설된 볼티모어 앤드 오하이오 철도(Baltimore and Ohio Railroad)였는데, 처음엔 말이 무개차를 끌고 다녔다. 이후 철도의 부설은 급속히 추진되어 남북전쟁 직전인 1860년에는 미국의 철도 총길이가 4만 9천km로 지구 한 바퀴를 돌고 남는 정도였다. 남북전쟁후 1869년 대륙횡단철도가 개통하여 미국의 철도는 대서양과 태평양의 2개의 대양을 연결하게 되었다.


이러한 철도의 확장으로 인해 원래부터 오대호와 미시시피강의 수운의 중심지이던 시카고에 철도라는 물류 수단이 하나 더 추가로 장착되었다. 당시 미국의 인구는 동부지방에 집중해 있었던 반면 가축은 대부분 중부 대평원에서 서부에 걸쳐 사육되었다. 돼지고기의 경우에는 생산지에서 도살하여, 베이컨, 소시지, 훈제 햄 등으로 가공하여 소비지로 공급해도 무관하였으나, 소고기의 경우에는 달랐다. 미국인은 신선한 소고기를 원했고, 따라서 살아있는 소를 동부지방의 소비지까지 기차로 실어날랐다. 당연히 소들은 긴 여정동안 지치고 죽는 일이 잦았다.


구스타프 스위프트(Gustavus Swift)라는 탁월한 사업가가 있었다. 1881년 그는 냉장기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냉장기차를 개발한다.** 서부에서 사육한 소를 시카고까지 운송해 와서 도축하고 냉장기차로 살코기를 동부까지 운송하는 새로운 소고기 유통시스템을 도입하였다. 이때 그는 도축장에서 가축을 도살하는데, 소를 갈고리에 걸어 이동시키며 도축하는 해체라인을 개발하였다. 그의 도축장에서 가축 한 마리를 도살해 각 부위별로 완전히 해체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10분도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에 냉장고 자체가 굉장히 새로운 시스템이었다. 냉장고의 최초의 발명자는 매우 이론이 분분하다. 다만, 1875년에 독일의 엔지니어이자 사업가인 린데(Karl von LInde)가 암모니아를 냉매로 채택한 냉장고를 제작했는데 이는 양조장을 비롯한 산업현장에서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도축장의 갈고리 라인과 포드의 컨베이어 시스템은 정반대의 시스템이다. 즉 도축된 소의 몸체가 갈고리에 걸려 이동하는 라인에서는 고기가 조금씩 해체되어 마지막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지만, 자동차의 컨베이어 시스템에서는 점차 차량이 조립되어 완성품으로 만들어지는 점이 다르다. 그리고 도축의 해체라인에서는 이동하는 물체가 위에 걸려있으나, 자동차의 조립라인에서는 이동하는 물체가 컨베이어 위에 얹혀져 이동한다. 물론 컨베이어 시스템이란 것 자체가 역전의 사고이다. 작업자가 이동하는 대신에 작업대상이 이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이렇게 소고기 축산업이 발달하게 된 것은 1860년 당시 유럽에서 탄저병(소, 말 등 초식동물에게 발생하는 전염병)이 번지면서 유럽의 목축업이 큰 타격을 받게 된 것이 원인이라고도 한다. 유럽의 소고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무렵인 1863년 미국정부에서는 신대륙으로의 이민자들에게 농장과 주택을 지을 수 있는 땅을 무상으로 공급하는 홈스테드법(Homestead Act 택지법)을 제정하였는데, 덕분에 많은 이민자가 소나 돼지 따위를 마음껏 키울 땅을 공짜로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소고기는 미국의 광활한 토지에 유럽이민자들을 끌어왔고, 소고기의 안정적 공급에 부심하던 유럽인들은 또한 이러한 소고기를 운송하는 미국의 철도산업에 많은 투자를 하였다.


따라서 포드의 컨베이어 시스템의 벤치마킹을 얘기할 때, 미국의 서부개척과 목축업의 발달, 그리고 철도망의 확산, 냉장시스템의 출현 등 시카고 축산업을 낳은 역사적 사실들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데, 그 유전과 인과의 고리는 작은 인간의 지력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Note:

참조: 아틀라스, 2021.3.11. 열차시간 맞추느라 조정된 미국의 4개 시간대.; 이기성, 도살장과 자동차 조립공장이 공통점, 2017.6.26.; 조선멤버스, [식탁위 경제사] 도축장서 영감 얻은 포드, 세계 첫 대량생산 시스템 만들었죠, 202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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