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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필 Zho YP Aug 17. 2023

알렉산더의 매듭

조영필

프리기아의 수도 고르디움*에는 고르디우스의 마차가 있었다. 그 마차는 신전기둥에 매우 복잡한 매듭으로 묶여 있었다. 세간에는 이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을 푸는 자는 아시아의 왕이 된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왔다.


신화에 따르면 프리기아에 BC 800년경 고르디우스(Gordius)란 농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독수리** 한 마리가 그의 쟁기자루에 앉아 하루종일 떠나지를 않았다. 기이한 일이라고 생각한 고르디우스는 리키아 테르메소스의 사바지오스(제우스의 이칭) 신전으로 찾아간다. 고르디우스가 성문앞에서 독수리 이야기를 꺼내자, 우물에서 물을 긷던 처녀가 그 독수리를 사바지오스 신전에 바치는 것이 좋겠다고 가르쳐주었다.***


그때 프리기아에는 왕의 선출을 둘러싸고 내분이 있었다. 제사장이 신에게 해결책을 묻자 '이륜마차를 타고 오는 첫 번째 사람이 나라를 구하고 왕이 될 것이다'라는 신탁이 내려왔다. 당시 프리기아에는 이륜마차가 드물어 모두들 의아하게 생각하였는데, 그날 고르디우스가 우마차를 타고 테르메소스 성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그가 신탁에서 말한 왕이라고 기뻐하며, 그를 왕으로 추대했다.


훗날 고르디우스는 수도 고르디움을 건설하고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준 우마차를 프리기아의 신인 사바지오스에게 바쳤다. 사바지오스 신전의 신관들은 이 우마차를 신전 기둥에 묶어두었는데****, 그때 신전의 여사제가 나타나 예언을 한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전역을 통치하는 지배자가 될 것이다.'


아시아의 통치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자들이 신전으로 모여들어 매듭풀기를 시도했지만 아무도 풀지 못했다. 기원전 333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가 그곳을 지나다 매듭 풀기에 도전했다. 그는 이리저리 시도했지만 매듭이 잘 풀리지 않자 칼로 그것을 잘라버렸다.


왜 사람들은 수백 년 동안 그 매듭을 풀지 못했을까?


매듭을 풀려는 사람들은 모두 큰 야망을 품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조바심과 긴장감이 컸을 것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이 모두 보고 있는 중에 풀어야 했기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수가 있었다. 아마도 아무런 긴장감이 없이 취미로 생각하고 그 동네의 건달이 매일 조금씩 재미삼아 매듭풀기에 도전하였다면 벌써 풀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매듭은 왕의 마차에 연결되어 있었고 제우스 신전의 전시물이었으므로 일반인이 그러한 시도를 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왜 다른 사람들은 그 매듭을 자르지 못했을까?


사람들은 프레임의 지배를 받는다. 문제의 프레임은 매듭을 풀라는 것이었고 밧줄을 자르는 것은 문제 안에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매듭을 자르지 않았다. 그리고 또 매듭 역시 사람이 묶은 것이었으므로 노력하면 어떻게든 그것을 풀 수 있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내 생각에 사람들이 매듭을 자르지 못한 이유는 또 있다.


옛날 사람들에게 밧줄은 귀했다. 지금은 묶여있지만, 풀면 재활용해야 하는 자원이었다. 자원을 함부로 훼손할 수는 없다. 게다가 그 자원은 제우스 신전의 영물이었다.


그러나 아시아(소아시아) 정도가 아니라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기 위해 출병한 알렉산더에게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이었다. 대군을 끌고 진격할 때는 군수 보급의 규모 또한 엄청나다. 그러므로 알렉산더에게 밧줄은 그냥 밧줄일 뿐이었다. 신전에서 이의를 제기하면 그 열 개라도 주어서 해결하면 되는 것이었다. 제우스가 노여워하지만 않는다면.


그러므로 알렉산더의 매듭풀기에서 우리는 문제의 프레임을 넘어 문제 밖에서 해결한 알렉산더의 과감함 외에도 다른 것이 더 있음을 보아야 한다. 그것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진화하여 온 인간종의 절약습성******과 신성한 것을 훼손하면 안된다는 문화적 터부(taboo)이다. 더 좋은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알렉산더는 자신만의 본능적 직관으로 이 고착과 터부를 돌파하였다. 이러한 그의 가차없는 결단력은 이후의 전투에서 여지없이 발휘되어 인류사 최초의 동서통합 대제국을 건설하는 발판이 되었다.


Note:

*고르디움의 위치는 현재 터키의 수도 앙카라 근처이다.

**독수리는 제우스의 변신 중의 하나이다.

***고르디우스는 그 처녀 키벨레(Cybele)와 결혼하여 미다스(Midas)를 낳았다.

****우마차를 기둥에 묶은 사람이 과연 누구일까? 어떤 책에서는 왕이 되던 바로 그날 신전에 도착한 고르디우스 자신이 묶은 것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출처에서는 훗날 고르디우스의 아들인 미다스가 왕위를 계승한 후 미다스가 묶었다고도 되어있다.

*****당시의 아시아는 오늘날의 아시아가 아니라, 아나톨리아 반도(튀르키예의 영토)를 이르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아시아 대륙에 대비하여 '소(小)아시아'라고 한다.

******나는 이것을 '자원의 고착(fixedness)'이라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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