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웜홀(worm hole)은 서로 다른 두 공간을 잇는 가상의 통로 개념이다. 사과에 벌레(worm)가 파먹은 구멍을 통과하면 더 빠르게 반대편으로 갈 수 있다는 비유에서 나온 용어이다 (똘똘한블로그, 2023.12.13). 그런데 나는 이 웜홀을 종교에서 발견하였다. 그것은 지눌의 돈오점수와 칼뱅의 구원예정설이다.
칼뱅의 구원예정설이란 인간의 구원이 신의 뜻에 따라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내용이다. 이는 칼뱅이 처음으로 주장한 것이 아니라 이제 보니,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의 은혜의 교리(교회와 신앙, 2024.1.31)의 복사판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아담의 원죄 이전에는 인간에게 자유가 있었으나, 원죄 이후에는 인간은 자유를 상실하였다는 것이다. 어쨌든 한 인간의 구원 여부는 그의 자유로운 행위의 선택 여부와는 관계 없이 이미 태초에 결정되어 있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교리에 따르면, 인간은 그저 현실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되며, 그의 구원 여부는 그의 세속에서의 성과를 통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즉 그가 열심히 선행을 쌓아서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따라서 하루하루 선행을 얼마나 쌓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 구원받은 자는 선행을 쌓을 것이고, 구원받지 못한 자는 악행을 쌓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용이 불교의 돈오점수*와 연결되고 또 여래장 사상을 요청하는 것인지는 지금껏 상상도 못했다. 유튜브 삼프로TV에서 강성용 교수의 '붓다는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한 적이 없다'를 청취하면서 깜짝 놀랐다. 이 방송에서 강교수는 석가모니가 당대에 실행하지 않은 제사와 기도를 후대 불교에서 하게 되는 상황을 설명한다. 그 이유는 깨닫거나 수련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상의 행사(결혼 및 상사 등)에서 승려의 개입이 불가피할 수 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일반 대중들에게도 열반을 기대할 수 있는 이론이 요청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을 듣던 중 김프로가 갑자기 기독교에도 그 비슷한 것이 있다고 한다. 아닌게아니라 정말 그렇다. 그리고 그래서 여래장이론이 필요하였겠구나 하고 새삼 깨닫게 된다.
여래장 사상에서는 모든 중생은 본래부터 여래(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였으며, 이 가능성을 여래장이라고 하였다. 여래장은 본질적으로 불성(佛性) 또는 진여(眞如)와 동일한 개념이다 (삼프로TV). 그렇다면, 유식론에서 안이비설신의의 6식과 그 배후의 말나식과 아뢰야식(여래장이 있는 무의식)을 번거롭게 얘기하는 이유가 다 이러한 지름길(웜홀)의 이론적인 근거를 제시하려고 한 것인 셈이다. 그렇게 하여, 정혜쌍수를 통하여 깨달음을 얻는 불교에서 계에 은근슬쩍 얹힌 기도를 통한 성취의 길이 열렸다.**
그러면서 역시 종교란 대중을 설득시키는 것이며, 대중에게 접근 가능한 지름길을 열어주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기독교와 불교는 역사적으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돈오점수이다. 깨달음은 한 순간이지만, 그것의 실천은 끝없이 계속되고 또 그렇게 완성된다. 불성(여래장)은 그리고 하느님의 구원은 태초에 이미 성취되었으나, 그 내용을 담는 행위는 한 인간의 일생과 함께 끝없이 지속되면서 종교는 그 영향력을 지속할 수 있다.
이러한 돈오점수의 가장 대표적인 실천에 대해 강교수는 붓다의 일생이 이미 그러하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갑자기 육조단경의 혜능대사가 생각났다. 붓다의 경우에는 돈오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으므로 점수가 있을 필요가 아예 없다. 그의 대각 이후의 일생은 단지 중생을 제도하는 것일 뿐 업은 여읜 것이었다. 그에 비해 육조혜능은 오조홍인의 후계자 시험에서 신수를 물리치고 선가의 오의를 공인받는다. 그리고 조사의 계승자로서 의발을 전수받고는 남방의 심산유곡으로 잠적하였다.*** 그는 16여 년간 그가 깨달은 비의를 완전히 체화하였다고 스스로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이것이 돈오점수의 가장 정확한 예시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웜홀의 아이디어는 현대철학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것은 사르트르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고 하는 것의 구문 형식이다. 자신의 운명을 인간 자신의 자유의지로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 실존주의이지만 무언가 문법적으로 유사한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정해진 운명 속에서 발버둥치는 인간의 노력이다. 마치 시지프스의 바위*****처럼 와닿는다. 실존주의가 고통의 직시라면, 종교는 내세의 행복으로의 달콤한 약속이다. 결과는 어쨌든 치열한 현재의 실천이다. 비범한 사람과 보통 사람에게 제시되는 이론이 조금 다를 뿐인 것이다. (2024.10.14)
Note:
*돈오는 단박에 깨닫는 것을 의미하고, 점수는 점진적인 수행을 말한다. 불교 수행자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에는 순간적인 깨달음이 필요하고, 그렇게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도 점진적인 수행, 즉 점수는 계속해야 한다는 선종 불교 수행방법론이다. (삼프로TV)
돈오돈수(頓悟頓修)라는 말은 깨닫는 순간 닦는 것도 마친다는 말이고, 돈오점수(頓悟漸修)는 깨닫기는 하였으나 더 닦아서 완벽하게 해야 할 깨달음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당나라 때 화엄의 대가였던 청량 스님과 그 제자인 규봉 스님이 한 말입니다.
규봉 스님은 한 때 선사를 모시고 짧게 수행한 적은 있었으나 그후 『원각경』을 보고 크게 깨달음을 얻었으므로 평생 『원각경』과 『화엄경』을 연구하고 강의한 교학자였습니다. 그런 규봉 스님이 『화엄경』의 신해행증(信解行證)의 논리에 맞추어 깨달음에 대하여 돈점이론을 전개한 것이므로 돈오돈수나 돈오점수 등은 교가(敎家)에는 해당되겠으나 선가에는 해당되지 않는 이론입니다.
규봉 스님은 수행하여 깨닫는 데에는 먼저 닦은 후에 깨닫는 선수후오(先修後悟)가 있고 먼저 깨달은 뒤에 닦는 선오후수(先悟後修)가 있다고 하면서 선수후오라면 증오(證悟)라고 말할 수 있으나 선오후수라면 그것은 알음알이로 깨달은 해오(解悟)라고 말하였습니다.
또 닦음과 깨달음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돈오돈수에 대해서도 닦지 않고 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해오(解悟)라고 말하였습니다. 따라서 돈오돈수나 돈오점수를 막론하고 닦지 않고 언하에 깨달은 것이라면 그것은 해오이고 아직 미숙한 깨달음이라는 것입니다.
규봉 스님은 돈오(頓悟)에 대하여 전통 선사들과 다른 뜻으로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전통선법은 중생은 원래 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깨달으면 바로 부처라는 것을 전제하고 설법하였습니다. 따라서 선사의 말끝에 깨달아도 완전한 깨달음이요, 부처가 된 것이므로 즉시 부처의 행을 하면 된다는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전통 선가에서 쓰는 돈오(頓悟)라는 말도 그 자체에 이미 ‘깨달은 사람은 닦음도 마친다(悟人頓修)’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말입니다. 즉, 우리의 자성은 원래 때묻음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자성을 깨달으면(頓悟) 바로 부처이지 다시 부처가 되기 위하여 또 닦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규봉 스님은 심성을 닦아야 할 물건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통 선가는 정말로 깨달았는가에 대한 사항이 점검의 대상이고 중요할 뿐이지 일단 깨달았다면 그 과정에서 수증(修證)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았고, 한번 깨달으면 그것으로 완전한 깨달음이라고 인정하였습니다. 아울러 깨달으면 닦음도 끝나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돈수(頓修)라는 말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돈오만을 말할 뿐 돈오돈수니 돈오점수라는 말은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육조스님 이후에 보임(保任)이라는 말이 보이지만 이것은 깨달은 자가 부처의 행을 하는데 혹시라도 실수가 있지 않을까 조심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 부처가 되기 위하여 닦는다는 점수(漸修)의 뜻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무불선원 선원장 (법보신문, 2005.5.3)
보조스님의 수증론은 '돈오점수'이다. 즉 '돈오-점수-완성'의 과정을 거치는 수증론을 말한다. 이 돈오점수의 설은 중국의 규봉종밀(圭峰宗密)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종밀은 당나라의 대표적인 불교사상가로서 화엄종의 종주이자 하택종의 종주를 겸한 인물이다. 즉 '두순-지엄-법장-징관-종밀'로 이어지는 중국 화엄종의 5대 종주이자, 혜능의 마지막 제자로 당시 수도였던 장안(長安) 지역에서 크게 남종선을 떨쳤던 하택종의 계승자였던 것이다.
따라서 종밀은 선교일치와 돈오점수를 주장하였으며, 그의 저작 중 〈선원제전집도서〉는 그러한 사상을 집약하고 있는데, 현재 조계종 강원의 '사집과'의 하나로 되어 있다. 종밀은 당시 수증론에 관한 여러 가지의 설을 논한 뒤 이를 종합하여 '돈오점수'의 체계를 제시하였으며, 보조스님 역시 이러한 종밀의 설을 따르고 있다.
'남돈북점(南頓北漸)'이란 말이 있듯이 중국의 선종은 '달마-혜가-승찬-도신-홍인'으로 이어져 오다가, 5조 홍인에 이르러 남종인 혜능(慧能)과 북종인 신수(神秀)로 갈라지게 된다. 이 두 종파의 핵심적인 차이는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으로써 남종의 혜능은 돈오를 주장하였고, 북종의 신수는 점수를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달마에서 '홍인-신수'로 이어지는 북종에서는 〈능가경〉을 중시하고, '홍인-혜능'으로 이어지는 남종에서는 〈능가경〉에서 〈금강경〉으로 소의경전을 바꾸게 된다. (원불교신문, 2011.10.28)
깨달음과 수행의 ‘불편한’ 관계는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돈오돈수(頓悟頓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 논쟁이 그것이다. 갑론을박의 핵심은 ‘깨달은 후에도 수행이 필요한가’라는 문제였다. 돈오돈수는 필요 없다는 쪽이고 돈오점수는 필요하다는 쪽이다.
논란은 불교학계의 보편적인 이론으로 자리한 고려시대 보조지눌스님의 돈오점수를, 전 조계종 종정 성철스님이 지해(知解) 곧 불완전한 깨달음이라고 비판하면서 촉발됐다. 돈오에 치우치면 ‘아만 없애야 한다’, 점수로 시비 일삼으면 ‘분별 없애라’, “중생제도 방편…법엔 돈점 없어”
물론 최초의 돈점 논쟁은 이보다 훨씬 앞선 1300여 년 전 일이다. 중국 선종의 제5조 홍인(弘忍) 대사의 수제자였던 신수(神秀)는 아래와 같은 게송을 스승에게 지어 바쳤다. “부처의 마음은 깨끗한 거울과 같으니 매일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는 게 골자였다.
이때 허드렛일이나 하던 행자 신세였던 혜능(慧能)은 신수의 게송을 보고는 “마음이란 것 자체가 헛것인데 거울이 웬 말이냐”며 반박했다. 홍인대사는 혜능의 손을 들어줬고 그는 6조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본래부처이므로 더 이상 닦을 것이 없다는 통찰을 높이 산 것이다.
신수가 점수의 상징이라면 혜능은 돈수를 대변한다. 지금껏 유효한 돈점 논쟁을 자세히 살펴보면 깨달음에 대한 시각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돈수를 옹호하는 측은 ‘깨달은 후에도 수행이 필요하다면 그 깨달음은 진정한 깨달음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반면 이치를 깨달았다손 과거 오랜 세월의 습기(習氣)를 없애야만 깨달음이 완성되는 것이고 그래서 수행이 필요하다‘는 게 점수주의자들의 입장이다. 요컨대 돈수의 깨달음이 최고의 깨달음인 증오(證悟)를 지향한다면, 점수의 깨달음은 해오(解悟)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똑같이 ‘오(悟)’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개념은 서로 다르게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훗날 육조혜능스님은 중국불교를 대표하는 최고 선지식에 올랐다. 그런데 혜능선사가 신수선사를 제압한 사연은 하택신회선사의 조작이란 설이 있다. 신회스님은 당초 신수스님의 문하였으나, 신수스님이 인정해주지 않자 혜능스님 쪽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자신만이 혜능의 후계자(7조)라고 강변하는 동시에, 신수에 대한 비난으로 평생을 보냈다. 얄궂은 건 신회선사가 당시 불교계로부터 점수를 일컫는 ‘지해종도’로 낙인찍혀 몰락했다는 사실이다.
깨달음의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깨달음의 실천이다. 본래부처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독선을 부추긴다. ‘내가 부처이니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방일은 금물이다. 본래부처의 진의 가운데 하나는 ‘내가 부처인 만큼 남도 부처’라는 윤리의식이다. (불교신문, 2015.3.24)
**계는 단순한 고행을 부처가 중도로서 승화하여 제시되는 불교의 계정혜 수련의 한 축이지만, 또한 강성용 교수에 따르면 ‘계’란 ’쉴라‘인데 습관(또는 본질)의 뜻이라고 한다. 습관이 굳어져 체화가 되면 그 사람의 본질이 된다. 습관은 라이프스타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도라는 행위도 (좋은) 습관을 쌓는 것 또는 (나쁜) 습관을 버리는 방법이기도 하기에 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강교수는 수행의 끝은 갈애라는 집착을 버리는 것인데, 이 집착의 가장 큰 장애요소가 아만심이라고 한다. (조현TV휴심정)
***나는 육조혜능의 잠적을 '점수'로서 해석하나, 위키백과에서는 위험을 회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오조홍인은 의발을 물려주면서 혜능에게 3년 동안은 법을 펴지 말고 피해 있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 조사의 지위를 승계받은 혜능은 당연히 후계자가 신수일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의 시기의 표적이 되었다. 그가 가진 조사의 상징인 의발을 뺏으려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혜능을 해치려고 그를 뒤쫓았다. (위키백과, 혜능)
****예전에는 그 본질을 (기독교의) 신이 주었다.
*****그런 까닭에 실존주의자 알베르 카뮈가 <시지프의 신화>라는 에세이를 썼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