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붓이 내게 알려준 여행의 소소한 비밀
1. 저절로 눈 떠지는 아침
스스로 눈이 떠졌을 때 그때서야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도, 알람의 힘을 빌려서도. 그 어떤 것에 '의한' 것이 아닌, 오직 내가 일어나고 싶은 순간! 그때부터가 나의 완전한 하루의 시작이다. 신기하게도 알람이 '반드시' 필요한 일정이 있던 날보다, 어떤 조건도 없던 아침에. 나는 더 일찍, 더 즐겁게 하루를 시작한다.
2. 새벽시장에서 하루 열기
시장은 각각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로 늘 붐빈다. 우붓시장은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의 필수코스로, ‘발리 힌두교’라는 고유의 종교를 가진 발리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집약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평소엔 관광객들을 위한 전통 수공예품들과 화려한 기념품으로 가득하지만, 아침 8시 이전은 오로지 이곳을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시간으로 발리인의 삶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 매일 하루 세 번, 신에게 공양을 올리는 사람들로 그 재료가 되는 꽃들은 각자의 정성스런 마음만큼 그 종류가 다양하고, 처음 보는 식재료부터 신선한 먹거리들을 하나씩 고르다 보며 어느새 그들의 밥상이 한상 차려 지기도 한다. 간이식당에서 분주히 아침식사를 하는 뒷모습, 아직은 차가운 새벽의 공기를 따뜻한 차 한잔으로 녹이는 상인의 얼굴. 그 생기와 고단한 모습들이 어쩐지 익숙하고 다정하게 느껴져서 매일 새벽 시장에서, 여행 중 다른 곳에선 얻을 수 없는 위안을 찾기도 한다.
3. 여행자의 밥상
하루 한 끼 식사를 위해 나는 보통 현지 사람들이 주로 가는 식당을 찾아 로컬 가격을 미리 알아보고, 내 식사를 위한 적당한 예산을 정해둔다. 매일 그 가격이 넘지 않는 선에서 새로운 식당을 찾다 보면 물론 수고롭고, 때를 놓쳐 배를 곯기도 일쑤. 때로는 조금 다른 기준의 위생 원칙으로 내 식사 속에서 믿고 싶지 않은 이물질과 대면하기도 한다. 결국 여행지에서 식사를 한다는 것, 그것은 좀 더 품을 들여 주변을 관찰하고 현지 사람들의 자취를 쫓아가며. 어느새 그들의 밥상 가까이에, 그렇게 그들과 친구가 되기도. 나는 그 어떤 '화려한' 특식보다 '잘 차려진' 특식을 만나기도 한다.
(사진) 박소(Bakso)는 현지인들이 주로 간식으로 찾는 음식(한화로 약 500원)으로 맑은 국물에 피쉬볼이 푸짐히 들어있어 간단한 한끼 식사로도 훌륭하다. 면과 야채 등의 고명을 선택할 수 있고, 여기에 후루룩 뿌려먹는 매콤한 소스는 덤이다.
(사진) 현지인들의 일상 식사는 간소하며, 외식이 보편적이라 길거리 음식을 포장하는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국물이 없는 음식은 바나나 잎이나 종이로 휘뚜루 싸서 툭, 주고는 하는데, 이때를 위한 개인 포크 지참은 필수이다. 현지인의 밥상을 닮은 소박한 여행자의 만찬이다.
4. 하루 5 km 걷기
새로운 산책로를 찾아 나서는 것도, 어느새 익숙해진 얼굴이 반겨주는 늘 걷던 길도 좋다. 가끔 그늘이 있어, 시원한 숲길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발걸음에 리듬을 더해 줄 음악이 있어도 좋고. 거리에 흘러 다니는 대화를 수집하는 일도 즐겁다. 편안한 운동화와 시원한 생수가 준비된 날은 지치지도 않고 걷고 걸어 어떤 날은 10 km 이상을 걷기도 한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늘 즐겁다. 해 질 녘, 일상에서 퇴근을 하듯. 나는 길 위에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때로는 돌아오는 그 시간이 좋아 나는 산책을 한다.
5. 여행자의 친구
여행지에서 보통은 같은 곳을 여행하는 다른 여행자와 친구가 되기 쉽다. 같은 국적을 가진 여행자가 동행이 되거나, 대부분 여행지에서 서양여행자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여행 가이드북에 소개된 여행자들을 위한 식당은 이미 '그들'이 점령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곳에서 나누는 대부분의 대화는 숙소 공유, 여행지 코스 추천, 그들의 지난 여행 이야기, 그리고 다음 목적지에 대한 기대. 가끔은 그 내용들이 겹쳐서 누구와 대화를 나눴는지 기억이 나지 않기도 한다. 나는 여행지에서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먼저 친구가 되고 싶다. 다른 여행자와 친구가 되는 것은 '그 여행자의 나라'에 갔을 때 만난다면 더 좋을 일이다. 여행은 나와 같은 여행자만이 아닌, 그 곳을 살아가는 그들을 만나기 위해서 '결국' 우리는 이곳에 온 것이다.
6. '우붓타임'이라는 절대적인 시간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결코 상대적이지 않다. 나는 이미 '이곳만의' 절대적인 시간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곳에서 하루는 너무 짧다. 나는 일상에서 여느 휴일처럼 결코 TV를 보며 시간을 죽이는 일도. 낮술을 하며 무료한 일상에 한 줄기의 광명을 찾는 일도. 나른한 오후, 달콤한 낮잠에 빠져서 깜깜한 저녁이 되어서 일어나거나, SNS 타임라인에서 새로운 뉴스를 충혈되도록 염탐하는 시간도 없다. 지극히 '자연스럽게' 아침을 찾는 새소리에 눈을 뜨고. 맑은 정신에 읽고 싶은 책을 조금 보고. 소박한 식사를 하고. 산책을 조금 하고. 어느 새 '또 다른 집'이 된 숙소로 돌아오면 이미 나의 하루는 깊어 밤이 된다. 이 단순한 일과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리는 경험을 하며 나는 우붓의 시간을, 내가 이전에 살아온 '24시간'과 전혀 다른 시간이라 확신하게 되었다.
(사진) 비록 초점이 흐릿한 여행 사진이라도 언제고 그 빛나는 순간의 기억을 찾아내는 일처럼, 지극히 평범하고 단순한 하루라도 여행자는 그 순간을 온전히 살아가며 여행의 소소한 비밀을 어렴풋이 찾아간다.
우붓씨, 고맙습니다. 당신의 친절한 공간의 기억은,
완벽한 '나만의 정원'이 되었습니다.
이 작은 세계는 그의 것이었고, 그가 깊은 친밀감을 가지고 속속들이 알고 사랑했던 세계였다. 이곳에서는 모든 관목과 모든 정원이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녔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으며, 내리는 빗줄기와 눈송이도 그에게 말을 걸었었다. 이 세계에서는 공기와 대지가 그의 꿈과 희망 속에서 살면서 그들에게 응답하고 그 삶을 함께 호흡했었다. 크눌프는 생각했다. 아마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이 근방에서는 자신보다 이 모든 것들을 더 깊이 소유해 본 집주인이나 정원 주인이 없을 것이라고. _ 헤르만 헤세, 이노은 역 『크눌프』 민음사, 119p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