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준
#10
삼촌은 약한 사람한테는 약하고, 강한 사람에게는 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약하게 나가면 낮춰 보고, 강하게 나가면 높이 보는 스타일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삼촌에게 장점이 없는 게 아니었다. 그놈의 장점이 단점과 한몸이어서 문제지.
하지만 삼촌의 단점은 약점이기도 해서 유사시 이용해 먹기는 좋았으므로 때로는 장점이랄 수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또 돌고 도네. 삼촌은 정말이지 끊임없이 돌고 도는 사람이야.
내가 강하게 내지르고 전화도 받지 않자 삼촌은 일주일 만에 백기를 들었다.
<너 작업실 보증금 이쪽으로 빼면 되잖아. 나중에 보증금은 보장해줄게.>
나에게는 작업실이 있었다. 학원 강사로 일하던 시절 저축한 돈을 거의 다 투자한 공간이었다. 전세 오천에 관리비 십만 원에 쓰던 것이 월세가 덧붙어 달에 삼십만 원씩 들더니 최근에는 주인이 월세 전환을 선언했다. 내년이 되면 작업실 대책이 없는 셈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작업실을 없애고 전월세 빌라를 얻어 독립하려던 시점에 돌아가셨다. 나는 현재 어머니와 살고 있었다. 집에서는 소설을 쓸 수 없었다.
삼촌의 말인즉슨 작업실과 사무실을 합하면 되지 않냐는 거였다. 남들이 보기에는 합자인 것 같지만 보증금은 보장되니까 사실은 한 푼도 안 내는 셈이라는 뜻이었다. 돈도 많은 양반이 오백만 원 갖고 잔머리는 할튼. 솔깃한 제안이었지만 나 좋자고 친구들을 배신할 수 없었다.
<그럼 밤비와 현지는요.>
<걔넨 돈 없다며.>
<그러니까 빼자고요?>
<걔네를 빼면 선생이 없잖아.>
<데려올 사람 많다면서요.>
<그래도 내부인이 있어야지.>
<아놔 그럼 어쩌자고요.>
<돈 낸 사람은 등기 이사. 안 낸 사람은 그냥 이사. 등기 이사는 지분을 챙기고 그냥 이사는 그때그때 이윤을 나눠 갖는 걸로>
합리적인 제안 같았다. 현지와 밤비의 성향상 페이 받는 것을 훨씬 좋아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순진하고 착해서 맨날 당하기만 하는 예술가들을 보호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는 게 이 사업의 취지 아니었던가?
<그게 뭐예요, 그냥 알바잖아요? 창립멤버 우대 뭐 이런 거 없어요? 적더라도 약간의 지분을 준다든지>
답이 오는데 무려 하루가 걸렸다. 나는 삼촌에게 먼저 물어보고 싶은 것을 백만 번쯤 참았다. 세상에는 인생을 길게 사는 방법이 참 많았다. 삼촌은 카카오톡 대신 전화를 걸어 말했다.
-- 나중에 본인이 돈을 집어넣겠다면 지분을 인정해주는 방식이 어때. 나중에 페이가 많이 발생해서 그중의 일부를 지분으로 투자하겠다면 받아주자는 거지. 지금 당장은 돈이 없을 테니까 말이야. 그렇다고 누가 대신 내주는 방식은 아닌 것 같고.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나중에 반드시 싸움이 난다.
-- 외부에서도 투자받는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게 외부 투자자랑 뭐가 다르죠?
-- 그건 펀딩이잖아. 펀딩 투자는 우리가 투자한 돈의 10분의 1 가치로 인정해주는 거야. 왜냐. 그들은 돈만 투자하고 일을 안 하니까.
-- 10분의 1? 그렇게 낮은 비율에 투자할 사람이 있어요?
-- 얘가 어디에서 살다 온 아이야. 그럼 어따 투자해? 은행 금리가 1%대인 시대에? 금리보다 높기만 하면 투자하는 거지 왜 안 해?
어머니는 평생을 웬만하면 걸어 다니셨다. 택시를 타는 일은 아예 없었고 친구를 만날 때도 커피만 마셨다. 사막에서 물 아끼듯 아낀 돈을 은행에 저축하셨고 한번 들인 돈은 절대 꺼내 쓰지 않았다. 그런 어머니가 요즘 통장 하나를 깼다. 생활비가 모자란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형과 누나는 어머니의 용돈을 얼마나 드려야 할까를 놓고 한숨을 쉬었다. 조카들은 중학생이었다. 최근 큰조카 한 명은 미술학원에 보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출했었다.
다행인 것은 형도 누나도, 나에게 얼마를 내놓을 거냐고 묻지는 않았다는 거였다.
내가 삼촌의 제안을 전하자 현지와 밤비는 동시에 눈을 반짝이더니 말했다.
- 그런 거라면 완전 좋지!
언제는 삼촌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더니. 이건 순수하다고 해야 할지 간사하다고 해야 할지. 둘이 손을 맞잡고 뛰며 설레발까지 쳤다.
- 그럼 이제 우리 미래의 대주주가 되는 거야?
구성인원이 정해지자 일주일 만에 구가 오피스텔을 구했다. 나에게는 사무실이자 공짜 작업실이 생긴 셈이었다. 구직 사이트에 간략한 회사소개와 구인공고를 내는 것도 구가 했다. 아직 법인등록도 안한 회사에, 최저임금을 받고 누가 원서를 내려나 했는데,
매일매일 두세 명씩의 면접자가 왔다.
이따위 회사에 원서를 내는 사람들이 오죽하겠냐 싶었는데,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절반을 넘었다. 경력자도 꽤 많았고, 중에는 대기업 출신도 있었다. 가장 이해 안 가는 경우는 외국의 명문대를 나와, 유수의 대기업들을 거쳐, 아직 상호도 없는 회사에 면접을 보러 온 명선희 씨였다. 명선희 씨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면 헌승은 이렇게 말할 것 같았다.
- 거 봐, 내 말이 맞잖아. 우리는 모든 게 음모인 세상에 살고 있다니까. 이로써 일자리는 있는데 대졸자들이 눈이 높아서 문제라는 기사들이 정부의 조작이라는 게 여실히 드러난 거지. 가만있어선 안되겠어. 뭐라도 해야겠어. 이렇게 있어선 안되겠어….
물론, 헌승이 그렇게 말해놓고 무언가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삼촌은 포트폴리오를 훑어본 다음 명선희 씨에게 딱 한 가지를 물었다.
- 이렇게 학벌도 경력도 화려하신 분이 우리 회사에 오신 이유가 뭡니까?
명선희 씨는 일 초의 에누리도 두지 않고 답했다.
- 경력 좋으면 뭘 해요. 오십 넘으면 뽑아주질 않는걸요.
너무 솔직한 것 같았는지 이번에는 5초 정도 생각했다.
- 예전에는 좋은 회사에 취직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연봉보다 지속가능한 일자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죠. 잘할 수 있는 일보다 잘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도요. 세상의 모든 재미있는 것들을 가르치겠다는 이 회사의 모토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명이 말한 모토는 내가 작성한 것이었다. 삼촌은 쓰윽 나를 쳐다봤고, 덕분에 나는 으쓱해졌다. 그러느라 우리는 명이 전장에 나가는 장수처럼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앉는 걸 말리지 못했다.
- 저는 정말로 이 회사에 뼈를 묻고 싶습니다.
난데없이 임금이 된 삼촌은 명을 일으켜 세운 다음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 앞으로는 상관이라고 고개를 조아리는 일은 없도록 합시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당장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하실 수 있겠습니까?
명을 만난 지 십 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저기요 삼촌, 저희한테도 좀 물어보고 결정하시죠? 라고 반박할 새도 없었다. 명이 가고 나서 왜 이렇게 성급하시냐고 타박하자 삼촌은 실실 웃더니 말했다.
- 저분 몇 킬로그램이나 나갈 것 같냐?
- 글쎄요, 사십오? 사십칠?
- 나이 오십에 오십 킬로가 안 넘는다는 거잖아. 근데 뭐가 더 필요하냐?
-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거예요? 직원을 몸무게로 뽑아요?
- 예술가들이 제일 못하는 게 뭘 것 같니? 너도 예술가니까 한번 말해봐라.
- 글쎄요.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거? 관공서 상대하는 거? 돈 계산하는 거? 뜬금없이 이런 건 왜 물어보는 건데요?
삼촌은 특기대로, 설명은커녕 짧게 한마디를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방법을 택했다.
-그렇담 저분이 뭘 잘할 것 같은지도 생각해보도록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