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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프릭 Dec 15. 2024

신자의 역할에 대하여

주일설교 말씀묵상_이사야 40장 27-31절

27 야곱아, 네가 왜 이렇게 말하느냐? 이스라엘아, 네가 왜 이렇게 이야기하느냐? 왜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져 있고 내 공의는 하나님이 무시하신다" 하느냐? 28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가 듣지 못했느냐? 여호와는 영원한 하나님이시고 땅끝을 창조한 분이시다. 그분은 지치거나 피곤해하지 않으시고 그분의 통찰력은 아무도 탐구할 수 없다. 29 그분은 지친 사람들에게 힘을 주시고 약한 사람들에게 힘을 북돋워 주신다. 30 젊은이라도 지쳐 피곤하고 장정이라도 걸려 비틀거리겠지만 31 여호와를 바라는 사람들은 새로운 힘을 얻을 것이다. 독수리가 날개를 치면서 솟구치듯 올라갈 것이고 아무리 달려도 지치지 않고 아무리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_사40:27-31, 우리말성경


오늘의 말씀은 어려운 현실을 어떻게 감내할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불만을 터뜨린 민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래전 이집트에서 끌어내실때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나면 가장 먼저 하나님께 원망을 토로한다. 이는 욥기도 그랬고 하박국 선지자도 마찬가지였다.


2 오 여호와여, 제가 언제까지 부르짖어야 합니까? 주께서 듣지 않으시고, "폭력입니다"라고 제가 주께 외쳐도 주께서는 구해 주지 않으십니다. 3 왜 저로 하여금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왜 죄악을 쳐다보게 하십니까? 파괴와 폭력이 제 앞에 있습니다. 갈등이 있고 싸움이 일어납니다. 4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지 않고 정의가 아주 실행되지 못합니다. 악인이 의인을 에워싸 버려서 정의가 왜곡되고 있습니다. _합1:2-4, 우리말성경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신 하나님 말씀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너는 신앙을 가지고 살면서도 어려운 일이 일어날 때마다 왜 그것에만 집착하느냐?"

 이는 자기 시야로 보이는 것만 다 인줄 알고 피조물의 한계에 머물러있는 이스라엘 민족 뿐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임하는 내용이다. 우리는 우리의 이해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언제나 불만을 품는다.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어려움 가운데 놓인다. 그럴때 신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바로 누가 우리의 주인인가를 인식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무지하고 어리석은 우리를 버리지도 포기하지도 않으신다. 전능하셔서 우리를 얼마든지 억지로 굴복시키실 수도 있으시지만 그러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설득하신다.


28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가 듣지 못했느냐? 여호와는 영원한 하나님이시고 땅끝을 창조한 분이시다. 그분은 지치거나 피곤해하지 않으시고 그분의 통찰력은 아무도 탐구할 수 없다. 29 그분은 지친 사람들에게 힘을 주시고 약한 사람들에게 힘을 북돋워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된 우리에게 질문하신다.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가 듣지 못했느냐?"

우리는 사실 알고 있다. 우리는 사실 다 들었다. 하지만 모르는 자처럼, 듣지 못한 자처럼 행동하는 이유는 우리 앞에 놓인 현실에 짓눌려 있기 때문이라고 목사님은 말씀하셨다. 그것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명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는데 대강 알고, 들었지만 희미하게 듣고 남아있지 않으면 그것이 내 삶 속에서 능력으로 발휘되기 어렵다.


목사님은 이어서 마가복음을 예로 들어 설명하셨다.

39 예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을 꾸짖으시고 파도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고요하라! 잠잠하라!" 그러자 바람이 멈추고 호수가 잔잔해졌습니다. 40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41 제자들은 크게 두려워하면서 서로 수군거렸습니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파도까지도 복종하는가?" _막4:39-41, 우리말성경

제자들은 자신들과 함께 하시는 주님이 누구신지 제대로 몰라 벌벌 떨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질문 인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는 말씀은 사실 "내가 누군지 아직 알지 못하느냐?"는 말씀과 같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그 내용을 뒷받침한다. "도대체 이 분이 누구시기에...?"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내 삶은 그 신앙과 별개가 되곤 할 때가 많다. 내 기준에 좋으면 할렐루야를 외치면서도 안 좋은 일에는 내 힘으로 그것을 해결하는데 골몰한다. 인생에 몰아쳐오는 광풍 - 인생의 여러가지 사건들 - 이 어떻게 불어와도, 우리를 창조하시고 택하시고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이시라면 우리가 겪는 모든 일의 해결도 그분께 있음을 얼마큼 믿으며 사는가? 하는 목사님의 질문은 재정난을 겪고 있어 한달 한달 기도하며 버티고 있는 회사의 상황과 여러가지 일들이 맞물린 현시점의 나에게 매우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우리는 어떤 일을 만났을 때 보통 그 일의 해결을 원한다. 합격을 원하고, 돈이 생기길 원하고, 취직을 원한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인생 가운데 수없이 지나가는 많은 일들중 하나일 뿐이다. 형태와 모습을 달리할 뿐 우리를 허비시키고 소진시키는 일들인 것이다. 그런 일들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나의 눈을 하나님께 고정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목사님은 말씀하셨다. 이는 태풍이 불어와도 튼튼한 건물 안에 있으면 안심할 수 있으나 부실한 건물에서는 불안한 것과 같다는 비유를 하셨다. 결국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를 인식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나는 누구 안에 거하는가? 하는 것이다. 배가 아무리 흔들려도 예수님께서 그러셨고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두려워하지 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진리를 선포하는 사람이 있다면 평안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것이 바로 신자가 험한 풍파를 헤쳐가고 있는 세상 속에서 해야 할 역할이다. 그러기 위해서 신자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된다. 그 일을 많이 할수록 우리는 더욱 큰 평안을 얻고, 또한 가져다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찌보면 목사님께서 매주 선포하시는 말씀이 그런 말씀이다.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 그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고 계신가 하는 것. 그것을 알아가는 것은 신자의 의무요 책임이다.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혜와 지식이 우리를 쓰러져도 일어나게 하고, 불투명한 길을 걸어도 바르게 나아갈 수 있게 할 것이다. 그 길,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신자의 자리를 견고하게 감당해갈 수 있기를. - 문정식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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