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력수프> Episode #25
읽기와 쓰기
어슴푸레한 문자들이 나에게 이렇게 말해왔다.
써라. 그래야 존재할 것이다.
읽어라. 그래야 발견할 것이다.
박경리 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 실비 제르맹의 글을 읽다가 읽기와 쓰기에 대한 강렬한 리마인드가 되었다. 그녀는 팔레스타인 태생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를 인용하며 읽기는 발견하기 위해, 쓰기는 존재하기 위해 해야 만한다고 설한다.
발견과 존재
어릴 적부터 일기와 편지로 시작한 생활 글쓰기를 꾸준히 해왔지만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뒤늦은 서울살이를 하면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였다. 퇴근을 하고 나서 운동을 하고 저녁을 먹고 나면 밀려드는 공허함을 매우기 위해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를 아는 이 없는 군중들 사이를 오가며 절박하게 단어를 떠올리고 문장을 만들었던 이유를 실비 제르맹의 단언을 통해 명료하게 이해가 되었다. 희미해지고 잊히고 사라져 가는 내 안의 무언가를 세워야 했다. 존재해야 했다.
성숙과 미성숙
인지학을 공부하던 시절, 바이오그라피(생애 돌아보기) 작업을 집중적으로 할 때 들었던 이야기다. 55세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한다는 충격적인 말이었다. 실패해 보고 다시 일어나 보고 할 수 있는 온갖 노력을 다해보았다고 생각하는데도 개선되지 않고 희망을 가질 수 없다고 판단되는, 실존적 곤경에 처하는 때라는 것이다. 55세를 얼마 남겨두고 있지 않은 생애주기에서 그 말이 떠올랐다. 55세에 자살만 많이 하느냐? 반대의 경우도 있다. 성숙하게 삶을 일군 사람의 경우, 55세가 터닝포인트가 되어 그간의 꼬인 실타래가 풀려나간다고 한다. 성찰적 자아가 유연하게 작동하는지, 경험에 의한 삶에 갇혀서 완고한 인격이 되어가는지에 따라 더 꼬일 것인가, 풀려나갈 것인가, 성숙과 미성숙의 길이 나뉜다는 것이다.
운동과 공부
딸이 지난주에 그간 힘들게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일본 여행을 다녀왔고, 조카는 홍콩을 갔다는 소식이 가족 단톡방으로 날아들었다. 3년간 일한 동료 한 명은 사직서를 내고 퇴직금으로 유럽을 갈 거란다. 회사의 단짝 친구는 새로 생긴 맛있는 고깃집을 찾아다니는 식도락으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며, 내 짝 언니는 사우나를 최고의 힐링으로 꼽았고, 또 한 그룹의 동료들은 300만 원 가까운 고급 마사지 의자를 사기 위한 계를 한다는 독특한 소문도 들었다. 암울한 시대를 건너갈 나름의 재기 발랄한 기재들을 둘러본다. 불안하고 우울한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내가 가장 신뢰하는 방법은 바로 운동과 공부다. 소비가 아닌 생산에, 소유가 아닌 존재에 기반한 가장 확실한 솔루션이라고 믿어의심치 않는다.
잠과 꿈
그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새로운 활력을 주는 것은 잠이고 꿈이다. 운동과 공부는 내가 하는 노력이라면 잠과 꿈은 신이 주시는 응답이기 때문이다. 내 삶에 대한 양적인 노력은 내가 할 수 있지만, 질적인 변화는 신이 허락하신다. 깊게 파 들어가면 어느 순간 넓어지는 신비, 넓게 파고 있으면 어느 순간 깊어져 있는 마법.
Tell me (꿈나라 별나라) - 잔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