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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화문 May 02. 2018

"송아지가 뛰어간 길 따라 수로를 파라" 완주 석지장

'전북평야의 젓줄' 만경강 유역에서 발견된 돌상에 얽힌 민담

▲ 전북 완주군 삼례읍 금반마을에 있는 석지장의 모습 /사진=손안나 씨 제공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금반마을의 석지장에 대한 향토문화 콘텐츠 개발에 대한 논의가 강화되고 있다. 석지장은 둥근 머리에 길쭉한 몸만 남은 화강암 석상으로 불상이라 하기엔 좀 과한 면이 있으나. 약 90년 전 지대석 위에 시멘트로 벽을 세우고 지붕을 얻은 것이 제법 신성이 느껴진다.

인근 주민들은 돌부처 혹은 석지장 보살(石地藏 菩薩)로 불리며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유례가 단절된 채 여태껏 방치돼 잡풀이 무성하고 관리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석지장이 다시 세상에 나온 건 문화 콘텐츠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손안나 씨의 역할이 크다. 최근 그는 이 지역 향토 역사에 대한 강연을 듣고 문헌으로만 존재했던 돌부처를 다시 찾아 새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손 씨는 “강연에서 들은 석지장 이야기가 매우 흥미로웠다. 어딘가에 있을 석지장을 직접 찾아보기로 했고,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 꿈속의 암시 '송아지가 달리는 길 따라 수로를 파라'
보잘것없어 보이는 돌상일지라도 엄연히 문헌 기록도 남아 있는 약 230년 된 우리 선조의 유물이다. 이종진 익산시 향토사학자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후지이 간타로(藤井寬太郞)가 1930년 발간한 책자 ‘불이농촌’(不二農村)에서 이 돌부처에 관한 기록을 찾아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30년 일본인 후지이 간타로가 발간한 '불이농촌'에 소개된 석지장 



[독주정굴할 석지장]
'지금으로부터 140여 년 전 삼례의 부자 백대석(白大錫)이라는 자가 대굴할공사를 할 때에 대단히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꿈속에서 본 송아지가 달리는 방향으로 공사를 진행한 덕에 완공할 수 있었다. 이때 공사한 산을 ‘독주정’(송아지독 ‘犢’, 달릴주 ‘走’)이라 이름을 지었고, 당시 파낸 돌은 지장(地藏)으로 모셨다. 전익수리조합(全益水利組合)의 공사 전에는 이 석지장이 소재불명이었으나 수로 확장공사에서 발견된 이후 집을 지어 보존하고 제사를 지내게 했다.'



금반마을에서는 석지장에 대한 민담도 내려오고 있다. 18세기 후반 조선시대 금반마을 사람들은 수로를 만들기 위해 땅을 파다가 돌상을 발견했다. 이후 수로의 제방을 쌓았지만 흙이 자꾸 무너져 공사에 진척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스님이 지나가며 마을에서 발견된 돌상이 부처상이니 돌부처가 발견된 곳에 자리를 마련하고 제사를 지내면 제방이 무너지지 않을 거라 하였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그 자리에 돌부처를 모셔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랬더니 정말 흙이 무너지지 않아 수로 공사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역시 금반마을 앞 수로와 관련된 것이다. 이 수로에선 해마다 사람들이 빠져 죽어 마을에 근심이 컸다고 한다. 이때 또한 한 스님이 나타나 돌상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면 더 이상 사람이 빠져 죽는 일이 없을 거라 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이 돌부처를 세웠단 것.

마을 이름인 ‘금반’ 또한 이 돌부처와 관계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유야 어찌 됐건 스님의 말을 따라 돌부처를 모시기 위해 땅을 골랐다. 그런데 이번엔 그 자리에서 금반지가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희귀하게 여겨 마을 이름을 금반마을이라 불렀다.

이 같은 내용을 종합해 볼 때 금반마을에 돌상을 처음 발견된 것은 1790년대였다. 그리고 이 돌상은 사람이 정으로 새겨 만든 것이 아닌 자연석으로 그 모습이 둘 부처와 비슷해 기이하게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돌부처는 땅에 묻혀버렸고 1920년대 들어 다시 벌였던 수로공사에서 재발견됐다.

1920년대 전북 지역 수리조합의 만경강 수로 사업은 당시 신문 기사로 볼 수 있다. 1927년 8월 20일 자 동아일보에 ‘전조선 수리조합실황 답사기’라는 제목으로 당시로선 흔치 않은 르포 형식의 기사로 보도됐다.

손 씨는 “잘 몰랐던 유물이지만 관심을 가지고 관련된 연구를 해보니 더욱 애착이 간다. 지자체에서 푯말이라도 설치해주면 민간에서 지속적으로 관리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만경강 수로와 석지장은 지역의 특색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이 지역의 귀중한 자산이다. 향토문화 콘텐츠 측면에서 스토리텔링을 입힌다면 무한히 확장해 나갈 여지가 충분하다"라고 덧붙였다.

완주군청 관계자는 “만경강 유역의 수로와 돌부처는 전북 지역의 근대 농업 발전사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앞으로 문화재위원회의 재검토를 실시해 활용 방안을 찾아 향토 문화 계승에 앞장서겠다"라고 전했다.

*전익수리조합(全益水利組合)
일제강점기 전북 지역에서 일본인 지주들이 일본으로 쌀을 가져가기 위해 주도적으로 농장 개설과 수리시설 갖추기 위해 나선 사업으로 1910년 전주(全州)의 ‘전’과 익산(益山)의 ‘익’의 첫 글자를 따 만들어진 수리조합이다. 현 익산시 춘포면의 호소가와 농장을 중심으로 일본인 지주가 민영익 개인 소유의 독주항을 매입하여 만경강의 관개수로를 정비 확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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