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 뽑아주는 남자
그의 취미는 유별났다.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혼자 손톱정리를 하며 큐티클을 깔끔히 제거하고, 쪽집게를 이용해 지저분한 콧털 등을 정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틈만나면 손톱깎기를 들고 본인의 손톱을 정리하고 발톱도 깨끗하게 정리한다. 그 만의 개취(개인의 취향)다.
지저분한 털은 용납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자꾸 뽑는 걸 좋아해서 우리 집에는 쪽집게가 3개씩이나 있다.
난 20대 후반부터 흰머리가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머리 숱이 많은 편이었고 밝은 색으로 염색을 해서 티가 많이 나진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흰머리 개수가 늘어갔다.
30대에 접어든 지금은 머리를 묶으려고 빗질을 하다보면 곳곳에 흰머리가 눈에 띈다. 남들보다 스트레스가 많은 것인가. 그래도 나름대로 청춘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자꾸만 거슬리는 흰머리때문에 속상하다.
하지만 나에겐 독특한 취미를 갖고 있는 그가 있다. 그는 몇년 전부터 내 흰머리를 주기적으로 뽑아줬다. 쪽집게를 들고 내 머리쪽으로 와서 꼼꼼히 쏙쏙 뽑았다. 까만 소파위에 흰머리가 수북하다.
할머니 같다며 나를 놀리지만 그 덕분에 무척이나 시원했다. 처음엔 조금 창피했지만 지금은 그가 쪽집게를 들고 나타나면 그의 무릎에 내가 먼저 눕는다. 긴 머리를 손으로 훔쳐가며, 흰머리가 전보다 더 늘었다며, 마치 오랜시간 함께 산 노부부와 같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시간이 좀 더 지나니 어느새 난 쪽집게를 들고 그의 턱수염을 뽑아주고 있었다. 생각보다 뽑는 재미가 있었다. 그는 날 위해 면도를 하지 않고 나의 재미를 이어가게끔 해줬다. 그의 가슴위에 기대어 턱 밑에 듬성듬성 나 있는 짧은 수염을 뽑는다.
마치 서로의 이를 잡아주는 우스꽝스러운 원숭이 형제들을 떠올릴 수 있으나, 서로의 작은 부분까지도 재미로 승화시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리고 접촉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는 좋았다.
먼 훗날 우리는 서로의 흰머리를 뽑아주며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잘 보이진 않아도, 지금보다 기력이 떨어져도 우리의 소소한 취미생활은 지속될테니.
"할멈, 흰머리 다 뽑다간 대머리 되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