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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 짱쓸 Mar 22. 2016

#39. 한 남자와 10년동안 연애하기

콩깍지가 안 벗겨져


"안 지겹냐"


오랜 기간 연애를 하다보면 수없이 듣는 말이다. 결론부터 짓고 글을 시작하자면, 아이러니하지만 "지겨우면서도 안 지겹다"다.


흔히들 사랑을 시작할 때 '콩깍지가 씌였다'고 표현한다. 그가 뭘 입든, 뭘 하든, 뭐라고 말하든 모든 것이 다 이뻐보이고 그렇게 멋질 수가 없다.


나 역시 연애초기 그가 나에게 해주는 말 하나하나에 가슴이 뛰고 그의 눈웃음이 멋져보이고 그가 준 선물은 마치 내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보물마냥 신성하고 그랬다.


긴 시간을 함께 하면서 그의 웃음을 반복해서 보고 그의 목소리가 익숙해질 만큼 수많은 말을 듣다보니 솔직히 처음과 같다고는 표현 못하겠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여전히 멋진 사람이다. 두근거리는 가슴설렘은 사라졌지만 그의 말은 언제나 멋지고 그의 웃음은 지금도 날 기쁘게 한다.


나는 상당히 객관적이라 표현하지만 남들은 나에게 "아직도 콩깍지가 안 벗겨졌네"라고 타박한다.


매번 주말을 그와 함께 하다보니 언제부턴가 우린 서로에게 너무 편해져 있었다. 화장을 안하는 것은 물론 씻지도 않고 다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무릎이 나온 츄리닝을 입고 우린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냈다.


"집에 있어도 좀 씻어라"


가끔 우리는 서로에게 핀잔을 주며 지겨움을 표하지만 그것이 싫은 것은 아니다. 다 늘어난 티를 입고 있어도, 펑퍼짐한 수면바지를 배까지 끌어올려 입고 있어도 그 모습이 귀엽다. 그 역시 나에게 "완전 아줌마네"라고 하면서도 어느새 날 꼬옥 끌어안으며 무심하게 TV를 본다.


익숙하지만 지겹지는 않다. 아직도 우리는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함께 한 오랜시간에 익숙해져 있을 뿐 그런 그가 멋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10년이었던 연애기간이 20년이 되고, 30년 결혼생활이 될 수 있다. 그때엔 그가 조금은 덜 멋져보일 수 있겠지만 덜 멋진 그 모습도 사랑할 수 있다.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 억지로 콩깍지를 벗겨버릴 필요는 없다. 눈을 비비지 말자. 그냥 자연스레 있는 그대로를, 흘러가는 시간 속의 그를 변함없이 바라봐 주자. 그것이 내가 그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내 생애에 콩깍지는 안 벗겨지리라 믿고 오늘도 나는 긴 연애를 또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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