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쇼핑 방법
연애 초기의 커플이나 연애기간이 오래된 커플이나, 우리에겐 해결하기 힘든 난제가 하나 있다. 바로 '쇼핑'이다.
우린 전형적인 남과 여의 성향을 지니고 있다. 쇼핑만 시작하면 에너지가 샘솟는 나와 10분만에 배터리가 방전되는 그. 이 남자와 연애를 10년이나 이어가고 있지만 쇼핑 습관에서 오는 차이는 아직도 좁히지 못 했다.
"도대체 이해가 안 가. 안 살건데 왜 돌아다녀?"
그가 항상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물론 세상 대부분의 남자들이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구경하다 보면 필요한 게 생길 수도 있잖아"
나의 대답이다. 그리고 세상 대부분 여자들의 대답이다.
그는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예를 들어 가죽재킷을 사고 싶어 의류매장을 방문하면 정말 딱. 가죽재킷만 입어보고 마음에 드는 가죽재킷을 사서 나온다. 소요시간 대략 10분 예상한다.
하지만 쇼핑을 좋아하는 나는 길목 입구에 있는 매장을 시작으로 길 끝에 있는 매장까지 전부 들러 이옷 저옷 마음에 드는 옷을 모두 들러본다. 30분 이상은 기본으로 소요된다.
그리곤 그에게 이야기 한다.
"오빠, 아까 처음에 본 옷이 가장 예쁜 것 같아. 그걸로 살래"
역시 그도 남자인지라, 커다란 한숨을 내쉬며 나와의 전투를 시작한다.
쇼핑을 할 때면 눈이 반짝반짝해진다. 열심히 걷고 걸어도 나의 신경은 온통 시각으로 몰려 있기 때문에 다리의 감각 따위는 아무런 방해요소가 되지 않는다. 한 시간을 걸어도 지치지 않는 것은 시각적 즐거움이 따라주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행복감을 그는 이해하지 못 한다. 그래서 우린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각자 쇼핑하는 방법으로 방향을 잡았다. 불가피하게 함께 쇼핑을 할 기회가 생기면, 그는 내가 옷을 고를 동안 매장 앞에서 담배를 한 대 태운다.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닐 듯 하다. 가끔 여성의류매장 앞에서 담배를 태우는 남자들이 여럿일 때가 있다. 그들도 그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쇼핑습관은 남녀간에 극명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좁히는 것이 쉽지 않다. 10년을 연애한 우리가 유일하게 '함께하는 쇼핑의 즐거움'을 버린 이유다. 서로 노력으로 맞추기 힘든 부분이 있다면 쿨하게 서로를 인정해주면 된다. (그와 난 최근 주로 인터넷쇼핑을 한다. 물론 각자. 인터넷의 발달이 나름 남녀간의 쇼핑 차이에 대해 현명한 답을 내려준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결혼한 이후 2주에 한 번씩은 그와 함께 근처 대형마트를 찾는다. 한 층은 식재료를 살 수 있는 곳, 한 층은 가전제품을 살 수 있는 곳.
온 김에 한 층을 더 보고 가느냐 마느냐는 매번 우리의 난제다. 필요한 코너에만 카트를 끌고 가서 정말 딱 필요한 물건만 집어넣고 계산대로 가는 그. 계산대까지 카트를 가져갔는데도 혹시나 빼놓은게 없을까 매장에서 시선을 떼지 못 하는 나. 마트에서도 우리는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본다.
마트에 머무르는 약 30분의 시간 동안 "다 샀지?"란 물음만 열 번을 내던지는 그. 결국 쇼핑의 끝은 여느 커플과 다름없이 다툼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사실 이번 에피소드의 소제목이 '현명한 쇼핑방법' 이지만 나도 그 답을 찾지 못했다. 우리 역시 매 순간의 쇼핑이 현명하지 못 하다.
대부분의 커플들이 알콩달콩 그와 함께 필요한 물건을 사며 즐거운 신혼을 보내는 꿈을 꾸지만 그 시간은 최대한 짧게 지정하는 것이 좋겠다. 그게 자신없다면, "몇시까지 계산대앞에서 만나"라는 약속과 함께 쿨하게 찢어지자. 그것이 현명한 답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