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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한영교 Oct 31. 2017

16. 어머니와 어머니들



요즘, 어머니에 대해 
처음으로 이토록 생각한다. 
처음으로 어머니를 겪고 있는 탓이다.



++ 
아침에 일어나 집 안 정리하고, 비질하고, 걸레질 하고, 미역국 끓이고, 밥상 차리고, 설거지하고, 뒷정리하고 나면 조금 있으면 점심. 
빨래를 돌리고, 빨래를 개고, 빨래를 널고, 기저귀 빨고, 젖병 씻고, 젖병 소독하고, 점심 밥상 차리고, 설거지하고, 가계부쓰고, 책 몇 장 넘기고, 조금 있으면 또 저녁. 
산책갔다가, 목욕시키고, 자장가 불러주고, 저녁 먹고 나면 또 하루, 다 가 있다. 
으이씨, 어머니가 바르던 리도멕스 습진 연고를 내가 바르고 있다.



+++ 
아가 재워놓고 나면 거실에 누워 어머니 생각을 가만가만 한다. 
쌀 씻다 물에 쓸려간 쌀 한 톨 손끝으로 눌러 밥을 안치고야 마는, 어머니 
구석에 굴러간 녹두 한 알 손바닥으로 슬어 모으고야 마는, 어머니 
참기름 마지막 한 방울을 모으고야 마는, 어머니 
어머니께서 가장 많이 하신 말. 
야야 밥묵자, 퍼뜩 나오그라 
내가 요즘 가장 많이 하는 말. 
마데야 밥 먹자, 어서 나와 
밥 먹자, 오래전부터 이어져 오는 
우리 집안 가훈이다. 
일만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인류의 모국어다.



++++ 
야야, 인생 별거 없다 
밥 잘 묵고 기운 내서 
정성껏 사는기다 
그거 말고 할게 더 있긋나 
밥 챙기 묵고 댕기그라



+++++ 
온종일 집안일하고 잠시 차 우리는 동안 부엌 바닥에 누워서 생각한다. 
싱크대 개수대에 걸린 쌀 한 톨 주우며 생각한다. 
냉장고 뒤로 굴러 들어간 완두콩을 짚고 난 뒤 생각한다. 
참기름병 거꾸로 세워 마지막 한 방울을 모으며 생각도 한다. 
정성스런 내 어머니, 
우리 어머니들.



#이렇게아버지가된다 #이렇게어머니도된다 #부엌의숭고랄까 #식칼의숭고랄까 #앞치마의숭고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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