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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한영교 Apr 19. 2021

식인의 형이상학 5장~9장


1

김숨의 소설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는 일본군 위안부 길원옥의 증언집, 이 소설-증언집에는 세 편의 편지가 재구성되어 실려있다. 한통은 베트남에서 온 응우옌 티탄 (베트남전쟁 학살 여성-생존자). 한통은 이라크에서 온 마르바 알-알리코 (소수민족인 야지디족 IS 성노예 생존자), 한통은 콩고에서 온 레베카 마시카 카추바(아홉살과 열 세 살이던 딸들과 함께 군인들에게 강간당하고 남편은 살해당한 콩고전쟁 여성-생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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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_응우옌 티 탄의 소리 


흙을 땅에 묻어주는데 여자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어. 
“군인들이총을쐈어!” 
“총알이 동생 목에 박혔어.피가 울컥울컥 쏟아졌어.”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 56쪽 

소리가 온다. 달팽이형으로 말려있는 두 개의 어두운 구멍으로 온다. 공기 분자를 흔들며 온다. 파동과 함께 “죽은 사람들 소리가” (57쪽) 온다. 듣는 말이 아니라 들리는 말. 귀로 듣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들리는 말. 귀를 ‘기울여’ 듣는 말이 아니라 몸이 ‘울리며’ 들리는 말. 진동으로 있는 말. ‘고래의 노래 소리는 귀로 들리지 않고 몸을 진동시키며 들린다’ 라는 말. 어디선가 읽은 적 있는 것 같다. 김숨이 듣고 있는 말, 길원옥 할머니에게 들리는 말. 이 사이에 또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신 들리듯. 


3_마르바 알-알리코의 목소리  


기차역 대합실에서 여자를 만났어. 처음에는 맨 처음에는 나 혼자 있었어. 기차역 대합실에 나 혼자인게 이상하지 않았어 무섭거나 쓸쓸하지도. 나는 늘 혼자였으니까. 내 옆 의자가 비어 있었어. 나는 기차를 기다렸어. 그냥기차, 나는 어디로 가는 기차를 기다렸을까. 기차가 몇 시에 올지 몰랐어. 아무도 내게 기차가 몇 시에 오는지 알려주지 않았어. 기다리다보면 기차가 오겠지 했어.(88쪽)  

맨 처음의 ‘나 혼자’는 기차역 대합실에서 어디로 가는지, 몇시에 오는지도 모르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목적지도, 예정된 시간을 벗어난 공간에서 혼자. 오롯이 혼자, 기차를 기다린다. 너무 오래 혼자 있어서 “무섭거나 쓸쓸하지도” 않게 혼자 기다린다. 가만히 기다린다. “자신이 장례를 치르기 위한 은둔 생활, 즉 추모”(172쪽, 카스뚜루) 하며 기다린다. “미리 죽어있는 자mort anticipe”(190쪽, 카스뚜루)로서 기다린다.  


4

키가 제법 큰 여자가 발소리도 없이 걸어오더니 내 옆 빈 의자에 앉았어. 내가 기다리는 기차를 여자도 기다리는 것 같았어. 여자도 기차가 몇 시에 오는지 모르는 것 같았어. 여자머리카락이 밤처럼 검었어.가운데 가르마를 타고. 눈썹은 초승달 모양이고, 크고 쌍꺼풀진 눈이 순해 보였어. 수줍게 웃을 때마다 박꽃 같은 이가 드러났어. 길고 검은 눈썹을 깜박깜박. 피부가 호두빛깔이었어. 여자의 머리카락을 빗겨주고 싶었어. 내게 빗이 있었으면 빗겨 주었을거야. 여자의 머리카락을 빗겨주면 어때. 기차가 오지 않았어.


“의미를 징뭉개고 전진해온 이미지가 박동한다.” (김혜순, 56쪽)  키카 큰 여자, 빈 의자, 눈썹, 가르마, “누군가 울기 시작할 것 같은, 무언가 시작하기 전, 그 전의 소리같은 그 작은 기미가 우주적인 세밀화를” (57쪽) 그린다. 허공에 그리는 세밀화는 “대기atmosphere 속에 스며든다.”(이진경, 27쪽, 감응의 유물론과 예술) 깜박깜박 검게, 호두빛깔로 스며든다. 


5

그래서 노래를 불렀어. 내가 가진 건 노래뿐이니까. 그리고 사탕 한 알. (89쪽)  


호두빛깔로 검게 스며든 대기 속에서 “나 혼자”는 할 수 없는 목소리, 해서는 안 되는 목소리, 하면 큰일 나는 목소리를 스며들 수 있게 하는 건 오직, 노래 뿐. “사탕 한 알” 입에 넣고 노래를 부른다. 입 안의 노래가 맛 볼 수 있게. 입 안의 노래를 굴리듯. 입 안의 미리죽어있는자가 구슬을 굴렸던 것처럼. 


6

“어느덧 70년이 지났어, 무섭고 끔찍한 전쟁이 끝난지 70년이 지났어•••••엄마•••••엄마•••••” 내 노래를 가만히 듣던 여자가 울기 시작했어. 

입 밖으로 나온 소리. 70년 전에 ‘이미 죽어있던 자’의 목소리. ‘미리 죽어있는 자’의 성대를 울린다. “키 큰 여자”를 울린다. 가만히 듣기만 했던 여자. 빈의자에 와서 앉은 여자. 발걸음 소리가 나지 않는 여자. 기차를 기다리는 여자,를 울린다. “•••••엄마•••••엄마•••••”의 모음들. 모든 음들. 몸 들은 “•••••XX•••••XX•••••” 사이를 진동하며 여자(XX)를 울린다. 리듬이 대기를 울린다. 


7

눈가에 고이는 눈물을 손등으로 가만가만 훔치더니 말을 하기 시작했어. 내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어. 일본말도 중국말도 아니었어.


의미를 실어나르지 않는 “기관없는 신체”의 말. 태아의 말. 엄마가 “•••••”로 스며든 말. “내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아닌 말. 단지, 처음 들어보는 말. 처음 가본 미지에서 들려오는 말. 미-지방의 말. 돌연변이(XXX)의 말은 울음의 여진으로 남아있는 흐느낌의 말로 있다.


8

내 입속에는 사탕이 녹고, 여자의 입속에서는 말이 녹고. 


흐느낌은 말을 녹인다. 알아 들을 수 없이 중얼거리는 말(XXX)은 여자(XX)의 입속에서 녹는다. 오직 흐느낌으로만 전해지는 말. 


9

어떤 여자가 슬그머니 다가 오더니 내 귀에 대고 속삭였어. “저 여자의 고향은 중동 이라크 산지르래요. 여자의 고향에서는 야즈단이리는 신을 믿는대요•야즈단은 자신이 창조한 세상에 관심이 없어서 일곱 천사에게 세상을 맡겨버렸대요. 그래서 여자의 가족들은 공작새처럼 생긴일곱천사들을 숭배하고,태양을 항해 하루에 두 번 기도하며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대요. 그런데 어느날 총칼로 무장한 군인들이 여자가 사는 마을에 몰려와 남자들을 전부죽였대요.여자와 여자 자매들을 끌고 가 겁탈하고 군인을 만들거나 노예시장에 팔았대요. 말을 듣지 않으면쇠사슬로 발목을 묶어 태양 아래에 놓아 두었대요. 죽은 쥐가 떠다니는 물을 마시게하고,유리조각이 들어있는 음식을 먹였대요. 군인들이 여자의 어린남동생손에 칼을 들려주며 말했대요. '그 칼로 네엄마를 죽여라.' 여자는 노예가 되어 이리저리 팔려다니다 도망쳐 이곳까지왔대요. 여자의 자매들은 여전히 노예시장에서 팔려 다니고 있대요. 


“나 혼자”와 “키 큰 여자” 사이로 “어떤 여자”가 슬그머니 다가와 속삭인다. 어떤(X) - 여자(XX)는 증언(X-XX)을 시작한다. 말은 그제서야 들리기 시작한다. 녹아드는 모음들 “•••••”을 문법의 모음(몸)으로 발음하기 시작한다. 고향에 대해서, 신에 대해서, 기도에 대해서, 군인에 대해서, 자매들에 대해서, 쇠사슬에 대해서, 칼에 대해서, 노예시장에 대해서, 속삭인다. 증언은 기도, 시와 같이 고백의 장르다. 고백은 속삭임의 장르다. 아무리 크게 고백해도 속삭임의 성분을 가진다. 


10

여자는모르겠대요. 여자의 할머니는 마른 땅 위에 불을 피우며 손녀들에게 말하고는 했대요. ‘악마도 신 앞에서 눈물로 회개하면 천사가 될 수 있단다.’ 여자는 할머니에게 물어보고 싶대요. 남동생 손에 칼을 들려주며 엄마를 죽이라고 한 군인도 회개하면 천가가 될수 있는지.....“


응답받지 못한 질문은 이렇게 자리한다. 이 질문에 야즈단도, 일곱 천사도, 군인들도, 남동생도, 우리도 응답하지 못한다. 그 누구도 정확하게 응답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런데도, 그럼에도, 응답받지 못한 질문의 자리에서 이라크의 마르바 알-알리코씨는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 


11

나는 고개를 흔들었어. 거짓말일거야. 거짓말이 아닐 거야. 꽃이 있으면 꽆잎을 한 잎 한 잎 따며 묻고 싶었어. 거짓말일거야, 거짓말이 아닐 거야...... 진실은 꽃잎에게 맡기고 싶었어. 세상 사람들은 우리 말도 믿지 않으려고 했어. 열서너 살이던 우리 몸에 군인이 열 명, 스무 명, 서른 명씩 다녀갔다는 걸. 아기를 갖지 못하게 수은을 먹이기도 했다는 걸. 자궁을 들어내기도 했다는 걸. 전쟁에서 지자 우리를 야산으로 끌고가 죽이기도 했다는 걸. (...)겨울 열 세 살이던 내 옷을 찢은 군인도 잘못을 뉘우치고 눈물을 흘리면 천사가 될 수 있는지. 아이들을 죽인 군인도 천사가 될 수 있을까? 


응답받지 못한 자리로 들어간다. 응답받지 못한 질문 안으로 들어간다. 그 질문 안에는 내가 응답받지 못한 질문도 녹아있다. 흐느낌으로 이미/미리 녹아있던 말 들이 있다.  


12

“아파도참아.” “참고기다려... “말하고 싶지않지?"(...) “나도 말하고 싶지 않았어." (...) “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테니까." “내가 참으라는 것은 아픔을 참으라는 뜻이지 말을 참으라는 뜻이 아니야.” “말해야해 그래야 사람들이 알지.” 


진술이 주술이 될 때까지. 진술을 반복한다. 


13

밖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왔어. 
“부끄러워 하지마.” “네가 죄를 지어서 그런 일을 당한게 아니야.” “네가 벌을 받아서 그런 일을 당한 게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야.” 사람들이 우르르 대합실로 몰려왔어. 여자와 나를 안개처럼 둘러쌌어. 뜨겁게 달아오른 선로로 기차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어. 


주술이 시작되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주술 속에서 어떤(X) 사람들(XXY)이 몰려와 응답을 시작한다. 깔끔하게 완성된 단락의 말이 아니라, 한 문장, 한 문장으로 말로 응답을 시작한다. 한 문장, 한 문장은 서로 이어져 웅성거림의 주술을 시작한다. 기차를 부르는 주술. 비를 부르는 주술처럼. 마침내, 기차가 달려온다. 


14

그리고 은둔의 추모를 마친 샤먼 밖으로 걸어나온다. 그리고 남은 질문 하나.


 “여자와 나는 같은 기차를 탔을까?”(96)




15_쪽요약 



<5장 흥미로운 교차>


-들뢰즈/가타리와 인류학 

들뢰즈의 사유는 구조주의를 탈영토화하는 기획이라고 볼 수 있다. 들뢰즈는 구조주의에 의존하면서도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구조주의 운동에서 더 긴유효 범위의 직관들을 추출했다. (...) 안티 오이디푸스(...)이 책은 고유한 의미로 이해된 탈구조주의를 결정화한 주축 중 하나다.  


<6장 다양체들에 대한 반사회학> 


122

안티 오이디푸스는 “다르게 사유하기 위한 경이로운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 목적은 (...) “반사회학”을 정립하는 것이다. 


123~128

-다양체의 이미지로서 리좀

들뢰즈의 다양체multiplicite는 인류학에 고유한 새로운 인식 실천뿐만 아니라, 그 실천에 몰두했던 현상까지도 가장 잘 서술하는 개념으로 보인다. 이 개념은 무엇보다 (인류학을) 해방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인류학이 18세기와 19세기의 암흑에서 태어난 이래 ‘자연’과 ‘문화’, ‘개인’과 ‘사회’라는 두 가지 이원론 인류학을 가두었던 인식론적 감옥의 벽이라 할 만한 것을 형성했다. 다양체 개념이 가져온 해방의 효과는 이 두가지 이원론 사이에 도주선이 지나가로고 하는데 있다. 그 두가지 이원론은 인류학의 “궁긍적 정신의 틀” (...) 이다. (...) ‘하나’와 ‘여럿’ 사이의 끔찍한 양자택일을 가지 뒤에 내버려 둔다. 바로 이 양자택일이 방금 말한 두 가지 이원론과 그보다 작은 수많은 이원론들을 지배하는 가장 거대한 이원론이다. (...) 


“리좀”이 그런 유형의 구체적 이미지다. (...)다양체라는 관념은 본성상 반본질주의적이고 반계통주의적인 어떤 최초 결정에서 비롯한 성과물이다. (...) 본질과 유형이라는 고전 형이상학의 일반개념을 기존의 권좌에서 끌어내린다. 다양체라는 관념은 사유를 식별, 분류, 판단과는 다른 활동처럼 사유하기 위한, 실체나 주체보다 강도적 독특성으로 사유해야 할 것을 규정하기 위한, “경이로운 노력”의 주요 도구다. 이러한 결정의 철학-정치적 의도는 분명하다. 즉, 다양체를 개념으로, 개념을 다양체로 변형하는 것이다. (...)이것이 “플라톤주의의 전복”이라는 유명한 호소의 의미다. 

다양체는 본질과 다르다. 다양체를 구성하는 차원들은 구성적 속성도 아니고, 분류상의 포함을 위한 기준도 아니다. 이와 반대로, 계통학적이지 않은 미분화로서의 개체화라는 일반 개념이 다양체 개념의 주요 구성성분 중 하나다. (...) 다양체는 순수 강도적 차이의 존재 양식이며, “세계의 조건을 형성하는 것은 이러한 환원 불가능한 비동등이다”. (...) 

이것은 이질적 독특성들 사이의 강도적 관계들(“되기들”에 의해 형성된, 중심없는 격자 체계다. (...) 리좀적 다양체는 실재적으로 존재가 아니라 되기들의 배치, 어떤 “사이”다. 그것은 어떤 차이의 엔진differnce engine (...) 강도적 다이어그램 (...) 다양체는 “횡적” 복잡성을 지닌 체계다. (...) 그것은 혈통보다는 동맹의 복잡성이다. (...) “부분과 “전체”의 구별을 모르는 프랙털적 존재론으로 투사한다. (...) 바로크적인 복잡성 (...) 다양체는 하나와 여럿 사이의 끔찍한 양자택일에 도주선을 그린다. 



126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 

브뤼노 라투트(...) 하나의 네트워크는 하나의 관점이고, 기입과 서술의 한가지 방식이다. 또한 “다른 많은 요소들과 연관되어가는 어떤 사물의 기록된 운동”이다. (...) 이 때 관점이란 내적이거나 내재적인 것이다. “사물들”의 다양한 연관들은 그 관점을 점진적으로 관점 자신과 차이 나게 만든다. 즉, “사물 그 자체가 자신을 여럿임으로 지각하도록 만든다.” (...) 사물에 대한 시점이란 없다. 사물들과 존재자들이 바로 시점들 “이다” 정체성없는 개별체가 없다면, 관점주의 없는 다양체도 없다. 


126~127

-n-1의 차원 

리좀이 하나의 존재자가 아니라면, 하나의 존재자도, 게다가 복수의 존재자들도 아니다. 다양체란 단일성보다 큰 것이 아니고, 다원성이나 우월한 단일성 같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다양체란 하나보다 덜 한것, 빼기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다. (...) 다양체는 n-1개의 차원으로 이루어진 체계인데(들뢰즈, 1980) 거기서 ‘하나’는 단지 여럿을 생산하기 위해 빼어져야 하는 것처럼 작동한다. 이때 여럿은 “탈초월성”에 의해 창조된다. 다양체는 “여럿 그 자체에 고유한 고직화”를 드러내고, 이런 조직화는 “하나의 체계를 형성하기 위해 어떤 단일성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128~144 

-전제로서의 이원성의 함축 

“함축은 들뢰즈 철학의 기초적인 논리 운동이다”(프랑수아 주라비쉬빌리) (...) 이원성의 두 극을 동등하게 필수적인 것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상호 전제가 그 두극을 대칭적이거나 등가적으로 만들지는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상호 전제는 비대칭적인 상호 함축의 관계다. 즉, “경로는 두 방향에서 동일하지 않다.” (...)이것이 비대칭적 상호함축이다. 


<7장, 모든 것은 생산이다: 강도적 혈통> 


145~166

-동맹과 혈통 


동맹과 혈통은 고전적 친족 이론의 두가지 핵심범주다. (...) 혈통 그룹에 관한 이론의 원형이 실체와 동일성이라는 관념이었고(형이상학적 개체로서의 그룹), 혼인 동맹에 관한 이론의 원형이 대립과 통합이라는 관념이었다면(변증법적 전체로서의 사회), 여기서 제안하는 관점은 차이와 다양체(포함적 분리접속으로서의 관계)로서의 친족 이론을 수립하기 위한 몇 가지 요소들을 들뢰즈와 과타리의 저작으로부터 이끌어 낸다. (...) 

 동맹과 혈통이라는 일반 개념을 인간 바깥의 존재에게도 열려 있는 양태로 전환할 가능성을 (...) 강도적 혈통과 외연적 동맹에 관한 <안티 오이디푸스의> 분석을 “생산”개념 (...) 즉 (...) 분리접속적 종합이 다양체에 특징적인 관계적 체제라는 것(...) 이다. (...) 반오이이푸스의 음정에 맞게 친족에 관한 구조주의 담론을 다시 연주하려면 최소한 배타적 양자택일의 용어로 (이 여자는 내 누이 아니면 부인, 이 남자는 내 아버지 아니면 외삼촌) “친족의 원자”를 서술하기를 포기하고, 그것을 포함적 혹은 비제한적인 분리접속의 용어(“.....이든 ......이든”, “그리고/ 또는”)로 다시 정식화해야 한다. (...) 주어진 한 여자는 사실의 차원에서 내 누이 혹은 형제부인이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여자는 두 측면 두두에 있다.” 즉 누이들(그리고 형제들)의 측면에서 는 누이고, 부인들(그리고 남편들)의 측면에서는 부인이다. 나에게 동시에 누이와 부인이라는 것이 아니라, “이 두가지 각각은 미끄러지듯 날아간 거리의 양 끝에 있다. 분해 불가능한 공간 내에 있는 막대기의 두 끄트머리와 같이, 한쪽은 다른 한쪽의 끄트머리에 있다. (...) 내 누이가 내 누이인 것은 그녀가 타인에게 부인이기 때문이다. 즉, 누이가 동시에 부인으로 태어나지 않고서는, 누이로 태어나지도 않는다. 누이는 부인이 있기 위해서 존재한다. 모든 “여자”는 “누이”의 관계와 “부이녜의 관계 사이의 비대칭적 관계에 의해 구성된 하나의 항(메타관계)이다.(동일한 것은 물론 “남자들”에게도 적용된다) 누이라는 혈족관계는 그녀의몰적인 성적 할당과 마찬가지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기초라는 것(...) 이 아니라, 수립된 것이다. (인척관계 삼각형의 각 꼭짓점은 다른 두개의 꼭짓점을 자기 자신의 다른 버전들처럼 포함한다. (...)

즉, 동맹은 “실재적으로” 사회의 원리이고, 신화의 종말이다.  


<8장, 포식의 형이상학> 


169~171 

-아라웨테인들의 경우 


원주민의 아마존에 “희생” 제례 (...) 희상이란 필수적인 신학-정치적 장치다. (...) 희생 제례에 관한 질문에 관시을 가진 전문자들이 아마존 지역에서 주의를 기울이는 현상이 바로 샤머니즘이다. 샤먼이 종종 초월성의 대리자라는 원형적 사제의 모습을 띠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아라웨테인의 우주론은 사후 식인 풍습을 위한 명예로운 자리를 마련해 놓는다. 즉, 천상의 신들(마이mai)은 천상에 도착한 죽은 자들의 영혼을 먹어치우는데, 이는 죽은 자들이 자신을 먹어 치우는 신들을 닮은 불멸의 존재자로 변신하기 위한 전주곡과 같다. (...) 이는 (...) 장례 의식에 관련된 이런 신비주의적인 사후 식인 풍습은 투피남바인의 호전적이고 사회학적 성격을 지닌 식인 풍습이 명백하게 구조적으로 변형된 것. 


171~172

-투피남바의 경우 


투피남바인은 16세기 브라질 해안가에 거주(...) 투피어를 사용 (...) 하였다. (...) 그들의 식인풍습은 적대자를 포획하고, 처형하고, 의례에 따라 먹어 치우는 매우 정교한 체계를 필요로 했다. (...)

포로들은 마을 중앙 광장에서 장중하게 처형되기 전까지 포획자들 곁에서 충분히 오랜 시간을 함께 살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포로들은 좋은 대우를 받았으며, 성대한 처형 제례를 위한 오랜 준비 기간 동안 감시 속에 자류롭게 살았다. 포획자가 자기 그룹의 여자들을 포로들에게 아내로 주는 것이 관례였다. 이렇게 포로는 누이남편으로 변형되었다. (...) 

포로의 처형이 집행되는 순간, 제의 과정은 정점에 이르렀다. (...) 그 다음에 제의 참석자 모두가 포로의 신체를 먹어 치우는 순서가 이어졌다. 제의 참석자란 제의를 주관하는 이들과 이웃 마을의 손님 모두를 말한다. 제의와 처형을 집전한 사람만이 예외인데, 그는 포로를 먹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장례를 치르기 위한 은둔 생활, 즉 추모 기간으로 들어갔다. 다른 용어로 말하자면, 그는 자신이 방금 처형한 “반대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과정에 진입했다. 


172~175

-투피남바,로부터 아라웨테인,에게로


(페르낭지스의 해석)투피남바인의 인간섭취anthropophagie는 자주 “인간 희생”이라는 형식으로 해석되었다. 브라질 사회학의 설집자 중 한 명인 페르낭지스(...)는 희생의 수취자로서 어떤 “초자연적 개별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공준으로 제기했다. (...) 전쟁 포로를 쳐형하고 먹어 치움으로써 죽은 자들의 복수를 하고, 그들을 기리는 것이었다. (...) 자비를 구하는 것이 제례의 이유 일 것이라는 (...) 것. 


(까스뚜르의 해석) 식인 풍습의 관계에서 적극적인 극점의 역할을 수행하는 “초자연적 개별체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 이지만 (...) 먹어 치우는 자의 그러한 초자연적 조건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 투피남바인의 제례에서 주체의 기능을 하는 그룹 (포로를 먹어치우는 살해자 그룹과 동맹자들)이 차지했던 자리는, 아라웨테인의 마이(말하자면, 신)들이 차지하는 반면, 투피남바인 자례에서 희생의 대상이 되었던 포로의 자리는 아라웨테인의 죽은 자들이 차지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살아있는 아라웨테인들은 공동주체 consujet의 자리를 차지하는데, 투피남바인의 경우에 이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제물이 속한 적대자 그룹이다. 요컨대 아라웨티인의 신적인 식인 풍습은 투피남바인의 인간적 식인 풍습을 변형시키는 것인데, 이런 변형이 겨냥하는 것은 그런 실천의 상징적 내용이나 그것의 사회적 기능이 아니다. 그 변형은 주체와 대상, 수단과 목적, 자신과 타인이라는 가치와 기능들에 영향을 주는 어떤 화요론적 미끄러짐, 관점의 비틀림 혹은 이동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 관점들의 변환과정(...) “나”는 “타자”로 규정되는데, 이는 바로 그 타자의 일체화INCorporation 행동에 의한 것이다. 그 타자의 편에서 보면, 그도 (또 다른) 하나의 “나”가 되지만, 언제나 타자 안에서, 문자 그대로, “타자를 가로질러”그렇게 된다. 


175~178

-그들은 무엇을 먹어치우는 것인가? 


식인 풍습에서 제물의 고기를 섭취하는 것은 양적인 측면에서 별 의미가 없었다. (...) 먹히는 “사물”은 하나의 신체라는 것이 핵심이고 (...) 그 신체는 하나의 기호, 순수한 위치 값(...). 먹히는 것은 적대자와 그를 먹어 치우는 자 사아의 관계, 달리 말해 적대자가 가진 적대자의 조건이었다. 제물로 부터 흡수한 것은 그의 타자성이라는 기호였고, 목표로 삼은 것은 ‘자신’에 대한 시점으로서의 그 타자성이었다. (...) 적대자의 시점에 의한 상호적 자기규정이라는 역절적인 운동을 함축하고 있었다. 

유럽의 다문화주의적 인류학의 목적이 원주민의 시점에서 체험되는 바와 같은 인간의 삶을 서술하는 것이라면, 워주민의 다자연주의적 인간섭취는 적대자의 시점을 “물리기호학적으로” 포착prehension하는 것(죽임과 먹어 치움)을 자기 서술의 생존 조건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이 인류학으로서의 인간 섭취다. 

아라웨테인의 전쟁 노래(...) 그 노래에서 (...) 적대자의 시점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한다. 즉, 노래의 주제이자 주체인 희생자(죽은 적대자)는 자신이 죽이 아라웨테인들에 대해 말하고, (아라웨테인이 먹는 것은 단지 단어들뿐임에도 불구하고) 식인 풍습을 가진 적대자에 대해 말하듯이 자신을 살해한자 (“말하는” 사람, 다시 말해 죽은 적대자의 가사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 사람)에 대해 말한다. 아라웨테인 살해자는 자신의 적대자를 통해 자신을 적대자로 보거나, 적대자임을 자처하는데, 그는 “적대자로서”(죽은 적대자의 관점에서) 이렇게 하는 것이다. 그는 희생자의 시선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보는 순간부터, 혹은 희생자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의 독특성을 자신에게 발음하는 그 순간부터 자신을 주체로서 파악한다. 이것이 관점주의다. 

(…) 아마존 사회적의 기초 제체를 구성하는 포식적 타자성의 경제(...)는 사회체의 “내부성”은 외부의 상징적 자원들(이름과 영혼, 인격과 전리품, 말과 기억)을 포획함으로써 온전히 구성된다는 것이다. 적대자로부터 유래한 특성들과 일체화하는 것을 운동 원리로 선택하면서, 아메리카 원주민의 사회체는 바로 그와 같은 특성들을 따라 자기 자신을 “정의하기”에 이른다. 

(…)그런 제의에서 포로를 살해하는 순간, 쌍둥이의 형태를 한 살해자와 제물에게 명예로운 자리가 마련되는대, 이 둘은 서로를 무한히 반영하고 반사하다. (...)레비-스트로스가 말했던 “포식의 형이상학”의 본질적인 것이 있다. 즉, 우너시사회란 내부가 없는 사회로서, 오로지 자신의 외부에서만 “자기 자신”이 되는 데 성공한다. 그 사회의 내재성은 그 사회의 초월성과 일치한다. 


179-185

-토템의 은유와 희생의 환유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 8장 (…) 의 경우, 


(1)토템의 은유

-계열체적 참조 /위치적 양 /참조들의 해석체계 /랑그에 속한다 /불연속의 장소 /비례의 등가성 /논리적 변형들은 치환, 도치, 교차 /외연적인 재분배에 의해 상호 위치가 바뀌는 항들 사이에 확립 /목적: 주어진 차이들의 두 가지 계열 사이의 유사성을 각가의 계열 편에서 확립하는 것 /토테미즘의 구조적 변형 모델은 조합론 /형식들의 체계


2)희생의 환유

-통합체적 작동 /벡터적 질 /작동의 기술 체계 /파롤에 속한다 /희생의 변형들은 항들 자체의 본성을 바꾸는 강도적 관계를 촉발 /항들 사이로 어떤 것이 “지나가도록”하기 때문 /목적: 자기 동일적이라 전제된 두 가지 극 사이에서 식별불가능성의 지대 혹은 순간을 귀납해 내는 것 /희생의 강도적 변식으로 성립된 “연속성의 왕국” /미분학의 질서에 속한 어떤 것 /힘의 체계


181~186

-차이에대 한 서로 다른 두가지 이미지 


형식이라는 외연적 이미지(토템)와 힘이라는 강도적 이미지(희생)가 있다. (...) 이 두가지 이미지는 “양립 불가능”할 정도로 매우 다르지만 (...) 상보적 이미지들이라고 해석하려 한다. (...)토테미즘과 희생이 지시하는 것은 두 개의 “체계”라기보다는, 동일한 일반적 현상에 대한 두 가지 서술, 동시에 필요하지만 상호 배타적인 두 가지 서술일 것이다. 그 동일한 현상이란 이질적 계열들을 분절하는 것으로서의 의미 또는 기호작용을 말한다. 

(…) 참된 반토테미즘적 작동자인 식인 풍습은 어떤 변형을 실현할 터인데, 이 변형은 자신이 연결하는 항들 사이에서 잠재력적으로 상호적이지만 (투피남바 사회에서는 복수를 해야 하다는 명령이 식인 풍습에 의미를 부여했으므로), 실재적으로는 비가역적이다. 식인 풍습은 최고의 인접성 및 “비인접성”의 행동들(처형이라는 폭력적인 물리적 접촉, 제물의 신체를 조각내어 섭취하는 것)을 수단으로 삼아 그 변형을 실현하는데, 그런 행동들은 살해자와 제물, 잡아 먹는 자와 잡아먹히는 자 사이의 식별불가능한 지대를 창조하는 비정의Indefinition 운동을 함축한다. (...) 투피남바인의 제의를 세 가지 극으로 해석한 바 있는데, 이 해석에 따르면 1)제의의 행위주들은 잡아먹는 구룹 2)체형자-제물이라는 이원적 인격, 3)그리고 적대자 그룹이다. “죽은 자”는 제례의 이러한 세 가지 극이 차례로 번갈아 가며 받아들이는 어떤 대리 기능일 뿐이다. (...) 투피인의 식인 풍습에는 (...) 복수란 “불가능”한 것이지만, 심지어 복수조차 상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복수란 그 무엇보다 사회적 포에이시스의 도식론이었다. 즉, 복수는 적대적 그룹 사이에 어떤 영속적 비평형을 설치함으로써 집단적 시간성(복수의 끝없는 순환)을 제의적으로 생산하는 메커니즘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항상 적대자를 상상해야만 했다면(타자 그 자체를 구축해야만 했다면), 그 목표는 (타자로서의 ‘자신’을 구축하기 위해) 그를 실재적으로 먹는 것이었다. 비록 토메미즘 개념보다는 희생 개념이 지나는 것이 훨씬 많다고 할지라도, 희생 개념을 지나지 않는 어떤 것도 있다. 



<9장, 횡단하는 샤머니즘> 


187~191

-아마존 샤머니즘 

1)다른 종들이 자기 자신을(인간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은 식으로 그 종들을 바라볼 능력이 있다. 

-레비-스트로스적 용어들에서 새머니즘은 확실히 희생의 편에 놓여질 것 


2)종 사이 지대에서 작동한다. 

-다양한 사회자연적 이해관계들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격투

장에서 세계시민주의적 외교관의 역할을 수행한다. 

 -자연 종 각각이 가진 세계 사이의 상호 관계 또는 번역을 수립. 

-소통, 즉 소통 불가능한 것들 사이를 횡단하는 소통, 관점들 사이의 위험하고 까다로운 비교에 관련된다. 

-서로 다른 시점들 사이의 적극적 등가관계와 상응관계를 모색 

-샤면 자신은 실재적인 “관계 맺는 자(이야기를 들려주는자)”이지 형식적으로 관계를 중계하는 자가 아니다. 

 -하나의 시점에서 다른 시점으로 이행해야만 하며, 동물을 인간으로, 인간을 동물로 변형할 수 있도록 그 자신이 동물로 변형되어야만 한다. 



3)전도체다. 

-샤먼이 희생의 집전자인 동시에 운송자라는 점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 유익한 기호학적 흐름이 지나가도록 할 수 있는 것은 “인접성의 부족 상태” (신체와 영혼의 분리가 창조하는 빈 공간, 새먼의 인격을 이루는 부분들을 빼내어 외부에 두는 것) 

-샤먼 그 자신이 바로 제물이다. 

-샤먼이란 미리 죽어있는 자 mort anticipe

-외연적으로 배치되기 보다 강도적으로 중첩된다. 


4)샤먼의 기능은 본질적으로 전사의 기능과 다르지 않다. 

-전쟁이란 다른 수단에 의한 샤머니즘의 연장이라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옳은 것이다. 



191

-수평적 샤머니즘과 수직적 샤머니즘 


…(휴-존스의 분류에 따르면)… 

1)수평적 샤머니즘

-외부적 실천

-(수평적이라고 분류한 샤먼들은 자기 힘의 원천을 영감과 카리스마에서 찾는 전문가들

-그들의 행위는 사회체 외부를 향해 있음 

-공격성과 도덕적 모호함을 간직함 

-대표적 대화자는 동물의 정신들 

-“희생의 집행자-제물”로 규정된 새먼 

-평등주의적 

-호전적인 에토스

-아마존 사회들의 전형적인 전문가 

정치적 권력과 우주적 역량의 일치가 불가능함을 표시 


2)수직적 샤머니즘

-내부적 실천 

-노래를 가르치는 스승 

-의례 전문가들 

-평화적 수호자 

-축생, 성인식, 임명식, 장례식(내부 관계를 재생산하는) 

-위계적 

-평화적인 사회들에만 존재

-사제의 형태에 가까움 



…(까스뚜르에 따르면)…

1)수평적/수직적 샤머니즘 (영속적 비평형 이원론/ 비대칭적 이원성)  

-수직적 샤먼만이 제의를 집전하는 아마존 사회는 존재하는 않음. 

-두가지 새먼의 기능들을 모두 축적하려는 경향이 있음. 

-하지만, 수평적 샤머니즘의 특성과 책임들이 더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명백함. 

-신화의 구조에 열거된 계열: 메시아> 디오스쿠로이> 트릭스터> 양성적인 것> 형제자매> 혼인한 부부> 할머니/손자> 4개의 항으로 이루어진 그룹> 삼각구도. 휴-존스의 두 가지 샤먼의 구별은 “메시아주의”를 근거로 함. 

-구별해야 할 것은(…) 사제-샤먼과 엄격한 의미에서의 샤먼(또는 전사-샤먼) 이 아니라, 오히려 샤머니즘적 기능의 두 가지 가능한 궤적이라는 것이다. 이 두가지 궤적이란 사제적 변형과 예언자적 변형을 말한다. 이 경우에 예언주의는 샤머니즘이 역사적으로 재가열되는 과정의 결과일 것이고, 반면 분명히 정의도니 사제 기능의 출현은 샤머니즘의 정치적 재냉각, 다시 말해 사회적 권력이 샤머니즘을 포섭하는 것에서 유래한 것일테다. (193) 

-샤머니즘의 기능이 달라지는 것은 사회적 내부성의 구성과정에 결부됨. 



194

-우주론적 경제 


-서부 아마존의 와리인의 종말론에 관해 베스 A. 콩클린이 관찰한바에 따르면, 죽은 자의 세계에 동물은 없다. 동물이 없는 이유는 죽은 자들 자신이 동물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동물이 인간이었던 것처럼, 각각의 인간이 종말을 맞이한 후에는 인간이 동물일 것이다. 

-개체발생의 질서 내에 있는 죽은 자의 유령은 계통발생의 질서 내에 있는 동물과 같다. 

-처음에 모든 동물은 인간이었다 

-인간 신체와 분리접속적 관계에 있는 것으로 정의된 이미지들로서, 죽은 자들이 동물의 신체에 이끌리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마존에서 죽는다는 것은 곧 동물로 변형된다는 것 

-동물의 영혼이 원초적인 인간 신체의 형식을 가진 거승로 이해된다면, 인간의 영혼이 사후에 동물적 신체를 갖춘다고 이해하거나, 살아있는 자들이 죽여서 잡아먹을 수도 있는 동물의 신체 안으로 인간의 영혼이 들어간다고 이해하는 것. 

-수직적 샤머니즘의 출현은 죽은자와 동물이라는 타자성의 두 가지 위치가 서로 분리되는 (과정)에 결부될 것이다. 


198

-횡단적 샤머니즘 


존재자들 사이에 시점의 고정된 위계질서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존의 관점주의는 존재론적 존엄성의 연쇄를 따라(다른 관점을) 점진적으로 포섭하는 것에 비례하는 관점들의 등급처럼 해석될 수 없고, “모든 것의 시점” 따위가 탄생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없다. 존재자들 사이의 변형적 잠재력 차이가 샤머니즘의 존재이유지만, 그 어떤 시점도 일방적으로 다른 시점을 포함하지는 않는다. 모든 시점은 “전체적”인 것이며, 그 어떤 시점도 등가적이거나 유사한 것을 알지 못한다. 따라서 수평적 샤머니즘은 수평적일 것이 아니라 횡단적인 것이다. 시점 사이의 관계 (이 관계가 곧 다양체로서의 시점이다)는 분리접속적 종합이나 내재적 배제의 질서에 속한 것이지 초월적 포섭이 아니다. (...) 관점주의적 체계는 영속적 비평형(상태)에 있다. 

(…) 사람들은 토템적 논리와 희생적 실천 사이의 구분이 철저하다고 믿었지만, 샤머니즘은 그런 구분을 빠져나간다. 샤머니즘은(...) 토템적 분류 (...) 희생의 상상적 상호 계열성(...)을 모색하지 않는다. 관계의 세 번째 형식을 보여주는 표본들, 이것들은 이질적 항들 사이의 소통을 무대에 올린다. 그러한 항들은 전개체적, 강도적 혹은 리좀적 다양체들을 구성한다. 즉, 우리의 사례로 돌라가자면, 모든 재규어-되기에는 피/맥주가 함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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