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애 Mar 05. 2020

개인의 고통이란 없다

  최근의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모두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 사람의 건강 상태는 다른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 세계인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것이다. 다른 이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것보다 자기 자신에게도 이롭다.

  개인의 고통이란 없다. 고통은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 사실을 아파트 아래층에 사는 이웃을 통해 다시 한번 배웠다. 우리 아랫집에 사는 남자는 종종 집 안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러면 그 담배 냄새가 환풍구나 창문을 통해 우리 집 등 이웃집으로 올라왔다.

  고통받던 이웃들은 “귀찮으시겠지만 집 밖에서 피워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등의 글을 엘리베이터에 붙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웃들을 신경 쓰기에는 자신의 고통이 너무 큰지도 몰랐다. 그리고 남자의 고통은 곧 이웃들의 고통이었다. 이웃들은 흡연자 이웃의 고통을 나눌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숨 쉬는 공기를 통해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나만 잘 살 수는 없다. 내가 아무리 혼자 행복하게 살려고 애쓴다 해도, 다른 사람들이 불행하다면 자신도 행복할 수 없다. 가족이든, 이웃이든, 친구든, 주위의 누군가가 고통받는다면 자신도 고통스럽기 마련이니.

  우리는 때때로 타인의 고통에 무뎌진다. 그것은 사실 우리가 자신의 고통에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뜻이리라. 담배, 과식 등 순간적 만족감을 주는 무언가를 통해 자신의 고통을―그리고 그것과 뗄 수 없는 타인의 고통을―회피하는 것. 고통을 잊으려고 끊임없이, 위로가 된다고 믿고 있지만 결국은 고통의 원인이 되는 무언가를 찾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아닐까.

  한번은 여행사의 실수로, 비행기의 비즈니스석에 처음으로 앉게 되었다. 비즈니스석의 경우, 옆좌석과는 칸막이로 분리돼 있었다. 그래서 이코노미석에 앉을 때보다 타인과 분리된 듯한 느낌을 더 주었다.

  우리가 서로 분리돼 있다는 착각은 고통의 근본적 원인이다. 어쩌면, 자신과 이어져 있는 수많은 존재를 명확히 보는 것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시작점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길을 걷다, 담배를 피우려는 한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불을 붙이려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나를 보더니, 내가 지나갈 때까지 불을 켜지 않고 기다렸다. ‘당신이 거기 있군요. 당신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남자의 태도가 마음을 움직였다.

  우리가 서로의 존재를 무시하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며 도울 때, 우리의 고통은 지금보다 줄어들 것이다. 13세기 페르시아 시인 루미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절대 잠기지 않는 문이다. //

  그대가 무엇으로든 고통받고 있다면,

  이 문 가까이 머물라. 문을 열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