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만나러 지하철을 타고 가는 중에 열차 안에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열차에서 금지된 행위를 알리는 방송이었는데, 그중에는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행위’라는 말이 포함돼 있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수치’는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 또는 그런 일’을 뜻한다. 누군가 성추행을 했을 때, 수치심은 가해자가 느껴야 할까, 피해자가 느껴야 할까? 잘못된 행동을 한 가해자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뉘우치지도 않는다면 그 사회는 나아지기 어려울 것이다.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행위’라는 표현은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겨레>는 성추행 피해자들이 불쾌감,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는 조사 결과를 보도한 바 있다(‘성적 수치심, 안 느꼈는데요? ‘성적 빡치심’을 느꼈어요’, 2020년 8월 15일). 이 기사와 더불어 ‘검찰, ‘성적 수치심’ → ‘성적 불쾌감’ 성차별 용어 바꾼다’(2021년 5월 25일 <한겨레>)를 참고자료로 제시하며, 서울교통공사에 서울 지하철 안내방송 변경을 건의했다. 열차 내 방송에서 ‘성적 수치심’을 ‘성적 불쾌감’이란 표현으로 바꿔달라는 건의였다. 서울교통공사의 답이 왔다. ‘이 방송의 내용은 국토교통부에서 교통안전공단과 제작해 전 철도기관에 적용하는 것이라, 서울교통공사에서 바꿀 수 없다’는 답변이었다.
그래서 ‘서울 지하철을 포함해 이 안내방송이 나오는 모든 철도기관에서 해당 표현을 교체해달라’고 국토부에 건의했다. 민원은 한국교통안전공단과 전국의 교통공사에 전달됐다.
교통안전공단에서는 현재 안내방송은 철도안전법에 있는 법정 용어인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행위’를 그대로 쓴 것으로, 추후 법 개정 시 ‘성적 불쾌감’이란 용어로 교체하자는 의견을 건의하겠다고 답했다.
대전도시철도의 경우, 대전 전동차 안내방송에서는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행위’라는 표현을 쓰지 않지만, 전동차 전광판에는 이 표현이 나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동차 관련 모든 사항은 철도안전법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이를 수정하기 위해서는 철도안전법이 먼저 개정되어야” 한다고 했다.
지하철에서 성추행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부끄러움을 느낄 것을 강요하는 방송을 들을 때면 마음이 불편하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비롯해 수많은 시민이 이 방송을 계속 듣는다면,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가해자는 떳떳해도 되고, 피해자는 떳떳하지 못하다’는 잘못된 인식이 지속될 수 있다.
철도안전법을 개정해 모든 철도기관의 안내방송과 안내문구에서 ‘성적 수치심’을 ‘성적 불쾌감’으로 바꿀 것을 건의한다. 모두가 안전하고 마음 편히 살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