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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애 May 16. 2017

아니 온 듯 다녀가세요

  도시의 밤은 너무 밝다. 거리는 밤에도 낮처럼 환하다. 얼마 전 밤에 어느 쇼핑가를 지나게 되었는데, 건물 앞마다 켜놓은 조명에 눈이 부실 정도였다. 저 전기가 어떻게 만들어져 어디를 거쳐 오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전체 전기 중 약 70%는 화력발전이고, 약 30%는 핵발전이다. 태양광, 수력, 풍력 등 재생가능에너지를 이용한 발전은 미미한 수준이다(2013년 기준). 그 가운데 핵발전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큰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지금까지 스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 등에서 일어난 여러 원전 사고는 핵발전소가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후쿠시마에서도 30년이 넘은 노후원전이 모두 폭발했듯이, 노후원전은 사고 위험성이 더욱 높다. 그러므로 수명이 다 된 노후원전은 수명을 연장해서는 안 된다. 또한 새로운 핵발전소는 더 이상 짓지 않는 것이 옳다.

  이와 함께 정부는 태양광 발전 등 재생가능에너지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햇빛에너지가 풍부하므로 이러한 재생가능에너지를 이용하여 전기를 만들 수 있다. 지금까지는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이 미미했지만, 정부가 적극 지원한다면 이 분야는 큰 힘을 받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마음만 먹으면 놀라운 일을 해내는 능력이 있으므로, 그 엄청난 힘을 좋은 데 쓰면 굉장한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핵발전을 하고 난 뒤 나오는 핵쓰레기가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정도로 방사능이 약해지려면 10만 년이 걸린다(<잃어버린 후쿠시마의 봄>). 즉 사용후 핵연료 같은 고준위 핵폐기물은 거의 영구적으로 안전하게 보관해야 하는데, 그 오랜 세월 안전하게 보관되리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더 이상 핵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준위 핵폐기물보다는 방사능이 적은 중저준위 핵폐기물을 보관할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을 경주에 지었다. 그런데 지하에 완공한 이 방폐장은 암반이 단단하지 않고 주변에 지하수가 많이 흘러서, 이곳에 보관되는 핵폐기물은 결국 물에 잠길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온 바 있다(<한국 탈핵>). 이렇게 되면 방사능 물질이 지하수를 따라 동해로 퍼져 수많은 사람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 경주 방폐장은 방사능이 유출되지 않도록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

  전에 경주 여행을 갔을 때 석굴암 앞에 ‘아니 온 듯 다녀가세요’라는 글귀가 쓰여 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짧은 인생의 흔적을 너무 많이 남기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아름다운 강산과, 한글과 석굴암을 비롯한 풍요로운 문화유산을 우리에게 물려주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후대에게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수많은 공사로 파괴된 땅과 강과 감당할 수 없는 핵쓰레기를 남기고 있지 않은가. 

  이제는 더 이상 행동을 미룰 수 없다.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에 많은 핵발전소가 밀집돼 있어, 원전 사고가 나면 모든 국민이 피해를 입게 된다. 핵발전소에서 나온 방사능 물질로 땅과 바다와 공기가 오염되면 누구도 건강하게 살기 어렵다. 그러므로 시민들이 힘을 모아 우리나라의 탈핵을 이루는 것이 시급하다. 

  강원도 삼척의 경우, 핵발전소와 핵폐기장이 들어설 위기에 처했으나 시민들이 반대 운동으로 막아냈다. 30년이 넘게, 때로는 생업을 포기하고 투쟁을 했다(<탈핵 탈송전탑 원정대>). 물론 핵발전소를 막아낸 것은 기쁘지만, 삼척 시민들은 그 오랜 투쟁 과정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삼척에는 아직 못 가봤지만, 삼척의 바닷가를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운 바다를 그대로 보존했으면 좋겠다. 삼척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핵발전소의 위협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의 탈핵은 가능하다. 물론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리가 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정하고 그 방향으로 꾸준히 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독일 등의 나라는 탈핵을 결정하고 재생가능에너지로 모든 전기를 만들려는 정책을 펼치며 단계적으로 실현하고 있다. 

  핵발전소를 계속 돌리고 새로 지을 경우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핵발전소를 만들어 파는 대기업과, 원전을 운영하는 공기업 등 소수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핵발전으로 아무리 많은 부를 누린다 해도, 길어야 몇 십 년 누리다 세상을 떠날 것이다. 반면에 원전 사고로 인한 피해나 핵폐기물은 우리 아이들을 비롯해 후대가 계속 떠안고 갈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 사회는 소수의 단기적 이익 추구에서 벗어나, 장기적 관점에서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 어르신들부터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까지 다 함께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지금부터 사회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핵발전을 계속하여 돈을 버는 사람들도 ‘나는 진정으로 행복한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그렇다고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돈만으로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핵발전소 가까이 사는 사람들은 암 등의 발병률이 높아져 고통받고 있다.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대도시로 보내려고 발전소와 대도시 사이의 농촌 지역에 송전탑을 세우면, 송전선 주변 주민들은 전자파로 고통받는다. 게다가 평생 농사 지어온 소중한 땅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핵발전과 송전탑 건설로 부를 쌓는 사람들은 그 부가 수많은 사람의 눈물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바로 볼 때,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의 고통에 기반을 둔 행복이 진정한 행복일 수 있을까.

  핵발전소를 멈추는 것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달려가던 삶을, 주위를 둘러보며 걸어가는 삶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제 우리 멈춰 서서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자. 주위를 둘러보고 앞을 내다보자. 그리고 서로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자.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천천히, 미소 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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