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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애 May 16. 2017

지켜야 할 한국의 전통

  20세기 초에 한국에 살았던 한 미국인은 당시 서울 거리에서 볼 수 있었던 한 장면을 이렇게 묘사한다.

  “우리 쪽으로 오는 저 남자의 옷을 자세히 보면, 남자의 정신 상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남자는 우아한 흰색 두루마기와 조상들이 수세기 동안 입은 것과 똑같은 재료로 만든 통 넓은 한복 바지를 입고 있다. 그러나 머리에는 런던에서 만든 밀짚모자를 쓰고, 디자인으로 보아 분명 미국에서 만든 신발을 신고 있다. 아마 매사추세츠 주에서 만든 신발 같다. 날씨가 따뜻해서, 남자는 기름 먹인 종이로 만든 큰 부채를 부치며 걸어가고 있다. 이렇게 옛것과 새것이 우스꽝스럽게 섞인 것은 흔한 광경이다.” (엘라수 와그너, <한국의 어제와 오늘>)

  서구 문물이 물밀듯이 들어오던 시절, 한국의 전통과 새로운 문물이 섞여 있던 모습이다.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서구화된 현대에도 옛것 중 일부는 새것과 공존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결혼식에서 신랑·신부의 아버지는 양복을 입지만, 어머니는 한복을 입는다. 또 신랑은 양복을 입은 채 절을 한다. 옛것과 새것이 함께 있는 흥미로운 모습이다.

  한국의 문화 중 지켜야 할 전통은 무엇일까? 나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특히 이어나가야 할 우리의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조상들은 건축물을 지을 때 자연 파괴를 최소화하고, 주변 풍경과의 어우러짐을 중시했다. 

  조선 시대에 많은 학자를 배출한 안동 병산서원은 주위의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룬 건축물의 좋은 예다. 안동 여행 중 병산서원에 갔을 때였다. 서원 앞으로는 강이 흐르고 앞과 뒤로는 산이 펼쳐져 있었다. 공부도 하고 쉬기도 했던 누각인 만대루의 나무 기둥들은 휘어진 모습 그대로 자연스러움을 보여주었다. 만대루에 대한 설명을 보니, 우리 조상들은 ‘건축물조차 자연의 일부로 생각’했다고 적혀 있다. 앞으로는 병산이 병풍처럼 펼쳐진 누각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으면 공부가 저절로 될 것 같았다. 산 위의 나무들은 바람과 함께 부드럽게 춤추고 있었다. 서원 건물들의 나무색과 기와색, 주위의 푸른 산과 연둣빛 나무들이 하나같이 잘 어울렸다.

  그러나 자연과 건축물의 어우러짐을 추구했던 전통과 달리, 현대의 우리는 자연을 무분별하게 파괴하고 있다. 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에 댐을 건설해 강물의 흐름을 막고 물을 가둔 4대강 사업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흐르는 강물조차 붙잡아두려 하는 행동은 인간의 집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자연을 거스르는 이러한 행동은 수많은 고통을 낳을 수밖에 없다. 강은 흘러야 하는데 흐르지 못하니 강물이 썩어가고 녹조가 번성하게 되었다. 4대강 공사 과정과 그 이후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는 등 강에 살던 많은 생물이 죽어가고 있다.

  또한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이 4대강 사업으로 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낙동강에서는 ‘흰수마자’라는 조그만 물고기가 살아왔다. 모래색을 닮은 이 물고기는 지구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멸종위기종이다. 그런데 4대강 사업으로 인해 흰수마자의 수가 줄어, 지금은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에서만 발견되고, 내성천에서도 점점 줄고 있다고 한다(정수근, ‘낙동강 흰수마자의 외침’, <녹색평론> 148호).

  상주 낙동강변에서는 4대강 사업 때문에 버드나무 군락지가 잘려나가기도 했다. 어른이 두 팔로 안아도 두 손이 서로 닿지 않을 만큼 큰 버드나무들을 베어버렸다. 

  자연을 파괴하면 피해는 인간에게도 돌아온다. 강은 우리의 식수원인데, 4대강 사업 이후 강의 수질이 더욱 나빠졌다. 낙동강 녹조에서는 독성물질까지 검출되었다. 강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막은 결과 우리의 건강도 위협받게 된 것이다. 영산강에서는 죽산보를 설치한 뒤로 주변 농민들이 농사에 피해를 입었다. 죽산보 때문에 하천수위가 높아져 보 주변 농지의 지하수위에 영향을 주어 논에 물이 빠지지 않게 된 것이다(환경운동연합·대한하천학회, <녹조 라떼 드실래요>).

  이제는 단계적으로 4대강을 공사 전의 모습으로 되돌릴 때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니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야 한다.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모두가 공멸하는 길이다. 

  우리 선조들은 오랜 세월 동안 자연과 더불어 살아왔다. 그런데 우리는 고작 몇 십 년 동안에 ‘개발’이란 이름으로 온 국토를 파헤치고 있다. 지금부터는 과도한 개발을 멈추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자연 없이는 인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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