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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애 May 16. 2017

새로운 길 떠나라고 불어오는 바람

  <여행길>이라는 연극을 보았다. 멀리 칠레에서 온 극단이 공연한 어린이극이었다. 세 친구의 사계절에 걸친 여행을 노래와 악기 연주와 다양한 소품을 통해 그렸다. 작품 초반에 한 배우는 자신의 배에 차고 있던 빨간 사각형 모양의 종이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종이를 순식간에 꺼내 펴자 종이배가 된다. 그 마법 같은 종이배의 등장, 사각형 종이의 변신이 아름다웠다. 마치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해 펼친 것처럼. 관객석의 아이들은 낮게 탄성을 질렀다. 

  세 친구가 여행을 떠나는 연극을 보며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그 길에서 우리는 다시 새로워진다.

  지난달에, 몇 명이서 둘러앉아 한 명의 사람책의 이야기를 듣는 휴먼라이브러리 행사에 참여했는데, 그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한 분이 떠오른다. 그분은 제주 4·3 사건으로 학살당한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한 4·3평화공원에서 보고 느꼈던 바를 우리와 나누었다. 그리고 책상에서만 하는 공부가 아닌 발로 하는 공부를 강조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많이 걷고 싶어졌다. 그 이야기는 새로운 길 떠나라고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그 바람은 언제 어디서 불어올지 모른다. 그 바람은 우연찮게 만난 누군가의 눈빛일 수도 있고, 어느 날 저녁 읽은 책 속의 한 구절일 수도 있고, 우리 안의 목소리일 수도 있다. 

  하루는 산책길에서, 이슬 맺힌 초록 풀잎 사이를 가벼이 날아다니는 하얀 나비를 보았다. 저 나비도 한때는 애벌레였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문득문득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느낌이 든다. 익숙해서 편한 삶에서 벗어나 새롭게 비상하는 삶. 

  잠자리 애벌레는 잠자리가 되기까지 10~15번 허물을 벗는다고 한다. 우리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허물을 미련 없이 벗어던지고 나아가고 있는가? 이제는 불필요하고 어쩌면 앞길을 막고 있는 과거의 짐을 끌어안고 있지는 않은가? 전에는 필요했더라도 지금은 삶의 무게를 가중시키는 짐이 되었다면 이제 놓고 가볍게 떠나면 된다.

  정말로 삶을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한번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한 채 어영부영하다 생을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산다는 것은? 그동안 머물러온 안락한 일상은 애벌레를 둘러싼 고치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그곳을 빠져나와 날아오른다면?

  우리는 종종 자신이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알지 못한 채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곤 한다. 그렇게 사회의 물살에 휩쓸려가다 보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어떻게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지 알기 어려워진다. 생의 감각은 무뎌지고, 되풀이되는 하루하루 속에서 내가 정말 살아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순간이 찾아온다. 생생히 살아 있음을 느껴본 적이 언제였나 기억을 더듬게 된다.

  집 문을 활짝 여니,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스쳐간다. 새로운 길 떠나라고 불어오는 바람. 숲과 바다와 별과 달을 만나고 빛나는 태양 아래 걷고 싶다. 비가 내려도 좋다. 그 길 끝에서 누구를 만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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