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떠나기 전의 풍경들
유럽여행. 그것도 '동유럽'이라는 지극히 낭만적인 키워드. 그리고 그 앞에 붙는 예쁘고 간질간질한 수식어들. 동화 같은 풍경들이 펼쳐지고 아름다운 야경이 반짝이는 곳.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 스물넷에 떠났던 서유럽 여행에 대한 여운과 아쉬움. 낯선 풍경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 그리고 스물다섯. 대학교 4학년이었고 마지막 학기를 앞둔 여름 방학. 떠나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여행을 가기 위해 겨울부터 초여름까지 카페에서 매일 커피를 내렸다. 계절이 두 번 바뀌는 동안 대부분은 별 다를 것 없는 보통의 나날들이 이어졌다. 늘 같은 자리에 서서 일을 했고 종종 바깥 풍경을 구경하듯 바라보았다. 그럴 때마다 지금 바로 밖으로 나가서 쏟아지는 햇살에 흠뻑 젖으며 여유롭게 거리를 걷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고개를 돌려서 해야 할 일을 했다. 그 무렵을 떠올려 보면 제일 먼저 기억나는 것은 그저 긴긴 겨울을 지나 언젠가부터 꽃이 피었다는 것. 짧게 만발하고는 금세 졌다는 것.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거리에 초록이 물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싱그러운 변화들 속에 충분히 잠겨 즐길 새도 없이 시간은 매일 매일을 타고 빠르게 흘렀다. 딸기 음료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봄이 왔구나 싶었고, 아이스 음료를 손님들에게 건네는 일이 점점 많아지면서 여름이 오려나 생각했다. 카페 음료 메뉴의 변화가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게 했다.
봄 꽃이 한창이던 어느 날, 이래서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며 친구들과 한강 공원으로 향했다. 돗자리를 펴고 다 식어버린 닭강정 한 박스와 맥주 몇 캔, 그리고 퉁퉁 불어버린 컵라면을 늘어놓고서 우리는 끊임없이 재잘거렸고 웃었다. 밤하늘을 바라보았고 떨어지는 꽃잎을 온몸으로 맞았다. 소박한 소풍이었지만 은은한 여운이 오래도록 남았다. 그 날의 우리를 몇 장의 사진으로 남겼고 그 사진들을 보며 우리만의 축제를 추억했다.
다시 일상이 권태로워질 때쯤, 진짜 페스티벌 티켓을 샀다. 여행 자금을 모으기도 빠듯했지만 매일 아르바이트와 영어공부와 집 밖에 없던 일상에 질려버렸기에. 비싼 가격에 고민했지만 "스물다섯은 다시 오지 않아!"라는 생각으로 질러버렸다. 그렇게 산 티켓을 손목에 감고 풀밭에 앉아 따뜻한 햇볕 아래서 음악을 들었다. 방방 뛰고 노래를 불렀다. 음악은 스피커가 터질 듯이 쿵쿵 거렸고 그럴 때마다 내 마음도 같이 쿵쿵 울렸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축제는 끝났다. 쿵쿵 큰 소리로 울리던 음악과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차 있던 잔디밭이 텅 비었다. 내 마음도 따라서 공허해졌다. 축제가 끝난 다음 날, 하루 종일 방방 뛰어다녀 알이 배긴 다리를 주무르며 다시 카페 카운터의 뒤편에 섰다.
일상으로 돌아왔고 다시 평범한 나날들이 이어졌다. 페스티벌의 여파인지 난 다시, 더 큰 권태를 느끼고는 "스물다섯은 다시 오지 않아!"라며 미술관에 갔고, 공연을 보러 갔다. 심지어 출국 3일 전에는 친구와 1박 2일 부산여행을 다녀왔다. 스물다섯의 보통날은 나에게 너무나도 지루했고, 일상이 지루하면 지루할수록 더욱더 특별함을 꿈꿨다. 유독 스물다섯이 되고 더 그랬다. 특별해야 할 것 같았다. '서른엔 뭐라도 되어 있을 줄 알았다'라는 어느 베스트셀러 책 제목처럼. 스물다섯엔 밑그림이라도 그려져 있을 줄 알았던 내 스케치북에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낙서들만 종이 귀퉁이에 간간이 있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그린다고 그렸는데도 애매했다. 텅 빈 여백을 채우기 위해서 그렇게 특별하고 반짝이는 순간들을 찾아다녔다. 그래도 어딘가 채워지지 않았다. 그때 까지만 해도 나에게 일상은 그저 무채색의 보통날이었다. 누군가 첫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가라"고 말했다. 그때 까지만 해도 그 말의 의미를 몰랐다.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말이라고, 일상은 일상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보통의 나날들 속에서 나를 가장 튼튼히 지탱해주던 것은 그렇게 찾아 헤매던 특별한 일정보다는 혼자 조용히 여행을 꿈꾸는 시간이었다. 평범한 일상을 마치고 책상에 앉아 가고 싶은 곳을 수첩에 하나씩 적어두었다. 그 목록은 그저 바라만 봐도 나를 벅차오르게 하고 설레게 했다. 수첩에 적어놓은 메모들을 들여다보며 꿈꾸는 풍경 속에 서 있는 나를 상상했다. 이 곳의 평범하고 보통의 일상이 아닌 그곳에서의 특별한 나날을 꿈꾸며. 다시 유럽에 가면 나를 짓누르는 이 무거움과 지루함을 털어버리고 그때처럼 반짝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난 여행에서의 반짝이던 순간들을 몇 번이고 회상했고 아쉬웠던 순간들을 되새겼다. 졸업 전, 학생 신분으로서의 마지막 여행. 단 18일의 짧지만 그래서 더 소중한 시간. 그때보다 더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을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다가온 출국 전 날, 좀처럼 쉽게 잠들지 못했다. 새벽까지 경직된 표정으로 깜깜한 천장을 바라보았다. 여행에 대한 설렘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이며 무거운 생각들이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깜깜한 천장을 바라보면 눈을 뜨고 있어도 감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암흑을 보는 답답한 느낌들이 온몸 곳곳에 전해졌다. 졸업을 앞두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정해진 것은 없었고 불안했다. 그즈음의 나는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미련을 두 손으로 꽉 붙들어 두고,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까지 짊어지고, 오늘을 무겁게 걸어가고 있었다. 사실 유난스러워할 것도 아니었다. 나와 같은 시간을 걸어가고 있는 '청춘'이라고 불리는 대부분의 또래들이 그러했으니. 한참을 걷다가 옆을 보면 다들 그렇게 무겁게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힘들다고 말하는 것도 어쩌면 민망하게 느껴졌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 그 무렵, 우리는 모이면 불행 배틀을 하곤 했다. "야, 나 진짜 너무 힘들다.", "야! 난 더 힘들어."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누가 더 힘든지 대결하는 거야?"
'청춘'이라는 낱말은 내 안에서 빛을 잃었다. 스물두 살의 해, 사월의 어느 날. 일기장에 "청춘이라는 단어가 좋다. 불완전하고, 위태롭고, 서투르지만 그래도 나는 영원히 청춘이고 싶다."라고 꾹꾹 눌러썼다. 그 날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마음으로 저런 문장을 적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청춘이라는 단어를 소중히 꼭 쥐고 있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청춘이라는 말을 내뱉는 것이 식상하고 촌스럽게 느껴졌다. 그런 청춘의 마음을 알기나 하는지 눈치 없이 각종 매체에서는 청춘이라는 단어를 남발했다. 그들이 말하는 청춘은 너무나도 뻔하고 예측 가능했다. 지겨웠다. 그런데 더 지루하고 지겨운 건, 나 자신이 그저 그런 청춘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반짝반짝 빛나고 싶은데. 그런데 그저 그런, 지루하고 평범한 청춘인 것만 같아서. 아니, 그 평범하고 보통인 것 조차 나에겐 너무나도 힘든 것 같아서. 슬펐다.
내일이 출국인데도 이런 어지러운 생각들을 하며 침대에 누워 있었다. 스물다섯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적당하게 무거운 시간을 가지는 것이 이 나이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에 대해서,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는 이 시간들이 내 삶에 어마어마한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다. 생각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고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슬슬 피곤해졌고 더 이상의 생각은 안 돼!라고 외치며 그냥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눈을 감고 편안한 마음으로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늘 곱씹던 생각들을 마음속에 되새기기 시작했다. 새로운 풍경에 흠뻑 빠져들자. 새로운 사람들 속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자. 앞으로 나에게 어떤 하루하루들이 펼쳐질지 마음껏 설레자. 이 여행이 끝나면 내가 얼마나 성장을 할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기대하고 또 기대하자. 18일이지만 한 달 같은 여행 만들기. 마지막 방학이니까. 스물다섯은 다시 오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