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24년 4월 30일, 회사원이 종료되었다.
15번의 이직을 거쳐 글로벌 홍보대행사의 '부장'직급을 단지 2년 4개월 만이었다.
약 2년전 까지만해도 나는 뼛속까지 '회사형인간'이라고 확신했고, 회사에서 나를 '내보내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회사를 다니면서 이것저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간의 많은 이직은 뭐냐고 물으면...음.. 그건 또 그나름대로 할말이 많다)
다만, 대행사라는 업무 특성상 야근이 많은터라 8시간을 훌쩍 넘겨 일했던 것 외에는 일은 재미있었고 새롭게 배우고, 보여주고, 고객사와 회사의 비위에 센스있게 맞춰나가는 것도 잘했다.
그런 생각들이 무너지기 시작한건,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시간'이 '돈'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된 1년 전쯤이었을꺼다.
44세 후반에 다시 들어간 대행사, 경력사원이라면 매번 나를 '증명해야' 그 뒤가 편안해지는데, 운이 좋아서였는지 입사하자마자 제안 PT를 따냈고 내 '일'이 생겼다. 그러나 좋은일과 나쁜일은 언제나 한 데 뭉쳐서온다고 했더랬지... 고객사는 꽤나 까다로운 요구쟁이들이었고, 내부의 여러가지 사정으로 책임지고 실무를 볼 사람은 그냥 '나'였다. 그렇지만 난 회사형인간이잖아? 1년여 기간동안 직원들이 나갔고, 이리저리 해결책을 찾아 프로젝트를 완료했다.
그렇게 힘든 일이 나름 잘 끝난것도, 그렇게 번아웃을 겪은것도 처음이었다.
자발적으로 '퇴사'를 입에 올렸고 회사의 '인정?'으로 때마침 타이밍이 좋게 아이가 초2가 되면서 '육아휴직'을 7개월 동안 보냈다.
육아휴직 7개월의 목적은 진짜 육아휴직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책임은 져야하지만 그만큼의 보답은 받지 못하는 '회사원의 생활'에 내 시간의 쓰임이 너무도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이걸 또 할 만한 자신이 없었다.
7개월간 나는 책을 썼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브런치에 기록해두긴했다. Project 7으로, 그러나 성과는...)
그간 미라클 모닝까지는 아니고 그냥 '내 시간을 가지기 위한'모닝시간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주 테마는 '공부' 그런데 운동을 하고나니 다른게 보였다. 하루하루 비슷할 것 같은 생활 속에서 '조금 더 나아지는', 내가 몰랐던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던 거다.
매일매일해야 비로소 습관이 된다지? 근 2달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밖에 나갔고 산책로를 한바퀴 돌고 두바퀴를 걷고 다시 한바퀴 를 돌던 그냥 산책러는 7개월의 육아휴직기간이 끝나는 동안 5km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오전 달리기에서 얻은 원동력은 고스란히 책쓰기로 전파되었고, 3개월간 책쓰기 완료, 다시 출판사 찾기 1개월, 12월의 거의 마지막날에 한 출판사와 계약을 확정지었다.
그래서 나는 전업작가가 되었다!
라고 썼으면 좋았겠지만, 누가 무명의 첫 책을... 잘 봐주겠나... 인세도 마케팅도 형편없었고 내 책은 '첫 술에 배부르랴~'라는 명언을 머릿속에 남기고 조용히 서점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육아휴직 종료, 7개월이 흘렀고, 생활비가 간당간당해지면서 나는 다시 '회사로 복귀했다' 팀원들은 반겨주었고, 업무는 금세 적응되었다.
그러나 그 7개월의 시간동안 나는 너무도 변해버렸으니...
일이 재미가 없었다. 이성적인 척 하지만 지극히 애정과 감정을 가지고 일하는 내게, 이건 굉장한 위기였다.
재미있다->열심히 한다/ 보람있다->열심히 한다 ... 가 도무지 통용되지 않았다. 그래, 월급을 받자! 월급을 받는 그 날, 그리고 그 월급으로 생활비를 내고 맛있는 것을 먹고.. 하는 것까지도 좋았는데,
그 다음의 공허함은 너무도 깊었다.
그 와중에도 틈틈이 달리기는 이어졌다. 책을 보고, 달리기를 했다. 이제는 수동적으로 뭔가 받는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무언가 더 많은 것을 하고 싶은데, 월급에 시간을 야금야금 빼앗기고 있는 것 같아 속이 상했다.
적지 않은 월급이고 그 덕분에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있지 않냐고 아무리 나를 다독여봐도, 마음 한 곳이 괜히 헛헛했다.
습관처럼 읽는 책들중에서 '노동의 가치' '시간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책들이 많아졌다.
내가 열심히 일하든 일하지 않든 월급은 내 '시간'을 채워서 들어오고 있는데, 그래 지금은 이렇게 산다고 쳐, 그런데 그럼 10년 후에는? 그때 일을 혹시 못하게 되면, 내가 내 '시간'을 월급과 바꾸지 않게되면 내 생활은 아예 못하게 되는 거야?
나이가 들고 내가 '노동력'이 떨어질 때까지는 나는 내 시간과 월급을 바꿔가면서 살아야하는거야? 로
고민이 귀결되었다.
그렇다면,...
그냥 지금 내 시간과 월급을 바꾸지 않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늦었는데, 더 나이가 들면 그땐 내가 굳이 '시도하지 않아도' 별수 없이 시도해야 하는 때가 오겠지.
그 전에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냥 시간과 월급을 바꾸는 삶이 아니라 내가 좀 더 '가치있게 쓸 수 있는' 시간의 방법을 찾기로 했다.
회사에 '번아웃으로 인한 퇴사'를 알렸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잡지 않던 회사는 '더 이상 일하기가 힘들어요'라는 말에 수긍해주었다.
그게 그제까지의 나의 모습이었다.
ENTJ
그렇다고 아무생각없이 그냥 무작정 퇴사를 한 건 아니다. 몇 개월 생활비를 낼 돈도 일단은 모아두었고, 하고 싶은 것도 몇 개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내 생각대로 흘러갈 것인가-
이렇게 무모한 퇴사는 나또한 처음이라 적잖이 당황스러운데 두려움보다는 설레임이 더 앞선다.
같은 이유다, 이렇게 무모한 퇴사는 처음이니까-
한동안 하고 싶은 것만 멋대로 해보면 되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