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이가 오는 날이면 집 안은 늘 그녀의 키에 대한 이야기와 여기저기서 놀라는 감탄사로 가득 찼다.
xx이는 고종사촌이다. 나와 성별, 나이가 같다.
그녀는 나를 ‘언니’라 불렀다. 내가 생일이 빠르기 때문이다. 사촌 사이 서열(?)을 정해야 한다는 이유로 친척들이 언니 동생으로 지내게 했던 것 같다.
어렸을 때 우리는 꽤 친했다. 나는 지방에 살고 그녀는 서울에 살았지만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함 없었다. 둘 다 남동생만 있었으니 명절이나 가족행사에서 만날 수 있는 서로가 반가웠다. 방학이면 서로의 집에 일주일씩 머물며 놀았다. 함께 인형 놀이를 하고, 종이 인형 옷을 입히고, 소꿉놀이를 했다. 만나기만 하면 밤을 새겠다 다짐하며 밤새 무엇을 하고 놀지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즐거웠다. 할아버지가 밤 새며 먹으라고 사주신 과자를 까먹으며, 게임을 하고 만화영화를 함께 봤다. 그렇게 친구처럼 혹은 언니와 동생처럼 정말 잘 지냈다.
동생이 언니보다 더 크겠네
우리가 멀어지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다. 그녀의 키가 나의 키를 훌쩍 넘어 버린 때이기도 하다.
그녀를 동생이라 생각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언니, 동생이란 개념이 자리잡았던 시기부터 그녀를 친구라 생각했다. 친구이고 싶었다. 우리 아빠는 6남매 중 맏이로, 나를 언니라 부르는 동생들은 그녀가 아니어도 가득한데. 굳이 그녀에게조차 언니이고 싶었을까?
친척들은 마음대로 우리를 언니, 동생으로 정한 후 ‘키’라는 잣대를 가지고 비교했다.
명절만 되면 친척들이 그녀의 키에 놀라며 말하는 걸 들어야 했다. 우리가 만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는 듯이 “둘이 키 재보자”, “르미는 더 먹어야겠네”, “xx이 키 어디까지 크려고 그래?”, “xx이 진짜 모델해도 되겠다”라며 그녀의 큰 키를 추켜세웠다.
더이상 그녀가 오는 게 기다려지지 않았다. 그녀가 도착해도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방 안에 있으면서 그녀의 키를 찬양하는 친척들의 말을 들었다. ‘제발 나를 불러다 키 재자 하지 않기를’ 바라며 조용히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작아졌던 순간이다.
그 시기와 맞물려 우리는 친구가 됐다. 그녀가 “동갑인데 왜 언니라고 불러야 돼?”라며 더이상 나를 언니라 부르지 않겠다 선언했다. 그녀가 언니라 부르든, 친구로 대하든, 아니면 키가 크니까 동생으로 대하든 상관 없었다. 그냥 그녀가 불편했다. 인생에서 처음 느낀 자격지심이었던 것 같다.
살면서 키에 불만족한 적 없다. 어렸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키에 대한 콤플렉스가 전혀 없다. 키에 만족한다. 더 작아지고 싶지도 않고 커지고 싶지도 않다.
이런 내가 유독 그녀를 만난 순간에만 키로 인해 작아진다. 키뿐만 아니라 모든 게 그녀보다 못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될 정도로 어린 시절 키를 소재로 한 친척들의 '말'들은 나를 주눅들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