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icElephant Mar 02. 2019

너의 삶은 너의 것,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기를

실벵 쇼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Attila Marcel)>

내 삶은 나의 것. 당연한 말이지만 어렵다. 삶을 자유롭게 놔주지 않는 것들이 많아서다. 가족의 기대, 사회의 편견, 고단한 현실, 그리고 때론 과거의 기억 같은 것들 말이다.


영화의 원제는 Attila Marcel. 주인공 폴의 아빠 이름이다. 어릴 때 사고로 부모를 잃은 폴은 아빠를 난폭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꿈속의 아빠는 늘 괴성을 지르고 있다. 몇 장 안 되는 옛날 사진에서 아빠는 모조리 오려버렸을 만큼 아빠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아빠의 이름은  Attila marcel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억을 낚는다. 마담 프루스트가 건넨 홍차 한잔과 마들렌 한 조각을 통해 잊고 있었던 심연의 기억과 마주하는 것이다. 폴 역시 마담 프루스트의 정원에서 어릴 때의 기억들을 끌어올린다. 엄마가 불러주던 자장가, 바닷가의 햇빛과 아이스크림. 몽글몽글한 추억들이 폴을 조금씩 웃게 만든다. 


하지만 모든 기억이 아련하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폴은 아빠와 엄마가 싸우던 날, 아빠가 엄마를 때리던 그날의 기억과도 마주한다. 폴은 이제 또 다른 기억과 만나는 게 두렵다. 더 끔찍한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나쁜 기억에만 매몰되어 있으면 변하는 건 없다. 앞으로 나아가야만 과거는 과거가 된다. 

'나쁜 추억은 행복의 홍수 속에 가라앉아, 수도꼭지를 트는 건 네 몫이란다'

폴이 용기를 내 다시 끌어올린 기억, 아빠는 많은 관객들이 쳐다보는 가운데 링 위에 엄마와 서 있다. Attila Marcel이라는 아빠 이름과 동일한 제목의 탱고에 맞춰 둘은 격렬한 몸싸움을 벌인다. 폴이 보았던 아빠가 엄마를 때린 날의 모습도 절묘하게 겹쳐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묘하게 춤사위로 바뀌는 둘의 동작. 


폴에게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이 기억은 당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엄마아빠의 결혼을 못마땅해했던 이모들, 선입견을 갖고 바라보는 시선, 링 위의 선수들을 보는듯한 부담스러운 시선, 갈등이 없을 순 없지만 그럼에도 행복했던 엄마아빠, 거실에서 같이 탱고를 추기도 했던 엄마아빠, 나를 향해 웃고 있는 엄마아빠. 이는 무서운 사람으로만 기억하던 아빠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


아빠는 다혈질이고 세심하지 않았다. 엄마를 거칠게 대한 일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폴은 Attila Marcel이라는 인간의 단면밖에 알지 못했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 새로운 기억을 쌓을 수도 없었다. 폴의 마음속에서 아빠는 충격과 공포의 대상일 뿐이고, 그 상처가 지금까지 폴을 옭아맸다. 벗어나려면, 두려움으로 기억을 봉인했던 어린 폴을 놓아주려면, 폴은 아빠를 제대로 마주 봐야만 했다.   

'너는 평생 귀족처럼 살 거야, 너는 피아노가 어울려'

하지만 폴의 환경이 그를 웅크리게 했을 것이다. 폴은 부모를 잃은 후 이모들 손에서 자랐다. 이모들은 폴의 아빠를 싫어했다. 피아니스트 집안에 노동자 남자라니 급이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모들은 폴을 지극정성으로 길렀을 것이다. 폴이 꼭 피아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열망과 저급하다 여겼던 폴의 아빠의 피가 발현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채 말이다. 그녀들이 은연중에 흘렸을 폴의 아빠에 대한 무시와 조롱을 폴도 느꼈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폴이 과연 아빠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을까? 


폴은 아빠에 대한 기억을 만남으로써 그에 대해서 갖고 있었던 ‘무섭고 나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압박에서의 해방이었다. ‘나는 불행한 아이였어.’ ‘공포스러운 아빠가 나를 계속 쫓아올 거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등의 무력감, 허무함 같은 압박에서 말이다. 실타래가 풀리듯 폴은 난생처음 피아노 콩쿠르에서 입상까지 하게 된다. 억누르던 것이 사라지자 피아노의 선율도 자유로움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폴은 피아니스트가 되지 않는다. 엄마아빠의 죽음이 피아노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다. 정말 물리적으로, 피아노에 깔려서 죽었다) 그것도 그가 평생 쳐온 피아노, 이모들 집에 놓인 바로 그 피아노 말이다. 그를 그동안 억누른 건 피아노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빠를 무시하던 가문의 우월감도 피아노에 있었고, 이모들은 어린 폴의 상처를 들여다보기보다 그를 피아노 앞에 앉히는 데 더 열을 올렸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모든 문제의 근원이 피아노였다. 그는 분노하며 건반을 내려치고, 이제 끝이라는 듯 피아노 뚜껑이 닫히면서 폴의 손가락을 망가뜨린다. 폴은 이제 피아노와도 안녕이다. 그리고 행복한 우쿨렐레 연주자가 된다. 지금까지 얽매였던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되자, 마음을 닫고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았던 폴이 드디어 입을 연다. 자신의 딸을 향해 밝게 웃으며. Attila marcel과 똑 닮은 얼굴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폴의 엄마가 자장가를 불러주는 장면이다. 폴의 미래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엄마는 ‘어느 쪽도 바라지 않는다’고 노래한다. 아들의 인생은 아들이 결정할 거라고, 필요한 건 그저 사랑, 꿀, 햇빛, 그뿐이라고. 엄마의 메시지는 마담 프루스트에게로 이어진다. 그녀가 폴에게 준 쪽지에 적혀 있던 말. Vis ta vie. 프랑스 말로 ‘네 삶을 살아라’라는 뜻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필연적인 것은 없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