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icElephant Mar 21. 2019

내 안의 찌질이

도스토예프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

10년 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놀란 건 세상에 이렇게 찌질한 인간이 다 있나가 아니라 그 인간 안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왜 그렇게 사는 거야 혀를 차게 만드는 그 인간 안에 여전히 내가 있다.


전에는 주인공이 무시당할 걸 알면서도 기어코 친구들 모임에 참석하는 모습에서 나를 봤다. 예를 들면 신입생 환영회 자리에 끝까지 남아있거나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종종 있었던 번개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던 일들.  내가 진정 흥겹게 노는 걸 잘한다면 최소한 좋아하기라도 한다면 문제가 아니나, 그렇지 않았다는 거다. 불편하고, 나는 왜 잘 못 노나 싶어 스스로 비참해했다. 하지만 주인공 말대로 '미련하고 부질없는 짓이라고 느껴지면 느껴질수록 기를 쓰고' 갔다. 그들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자리에 내가 없다는 게 싫어서, 관계에서 배제되는 게 싫어서! 있어도 없는 것 같은 미미한 존재감에 굴욕감을 느끼면서도 부득불 그렇게 불편한 자리를 찾았다.


이번에는 친구들에게 모욕을 받은 주인공이 창녀 리자를 모욕하는 모습에서 나를 보고, 우리를 봤다. 주인공은 자신이 모욕을 당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분풀이로 '권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너의 눈물, 너의 굴욕, 너의 히스테리가 필요하다고'. 

흔하디 흔한 이야기. 뉴스에 버스기사 폭행사건이 나왔다. 문을 안 열어줬다고 버스기사를 폭행한 사람. 술 취해서? 홧김에? 그가 내뱉은 말은 '네가 감히!'였다. 예전에 백화점 화장실에서 한 손님이 청소도우미 아주머니께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이전 상황은 모르겠지만) 죄송하다며 어쩔 줄 몰라하는 아주머니의 손이 손님의 옷에 닿는 순간 손님은 빽-  '더럽게 어딜 만져요!'. 

굳이 주변 이야기를 찾지 않아도 된다. 내게도 흔한 일이다. 사이버대학 스터디모임 터줏대감 멤버들의 자부심이 불쾌했던 이유, 학원 일을 할 때 추가 업무에 분개했던 이유, 동네 내과 간호사들이 수다 떠는 모습이 짜증 났던 이유. 내 나름의 고귀하고 아름다운 이유는 있지만 (보수적이고, 규정에 어긋나고, 프로답지 않다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나는 그냥 그들을 멸시한 거다. 

만만한 곳에서만 열정의 투사가 되는 것. 스스로가 환멸스럽기 그지없지만 자기 합리화를 통해 그럭저럭 또 견뎌낸다. 중심에 가서 큰소리칠 용기는 없고 변두리에서만 화르르 몸을 떤다. 


(좋은) 문학이 좋은 건, 나를 단번에 이입시킨다는 것이다. 뉴스로 볼 때면 한 발자국 떨어져서 관조하던 것들이 문학 속에서는 사정없이 나를 끌고 들어간다. 타인의 비겁함, 타인의 찌질함을 비웃던 나를 그들과 똑같은 바닥에 발 딛게 한다. 나라고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단 쓸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