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면 좀 어때. 모두 다 같이 이상한 도시 포틀랜드.
지난주 포틀랜드와 시애틀을 다녀왔다. 오빠가 사는 밴쿠버에 한 동안 머물면서 10일간 잠시 포틀랜드와 시애틀에 나 홀로 여행을 다녀온 것이다.
시애틀은 많이 들어봤을 테지만 포틀랜드는 아마 시애틀만큼의 인지도는 아직까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내가 언제 어디서 포틀랜드라는 도시의 존재를 인지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포틀랜드는 '힙스터의 도시'라고 흔히 이야기하는데, 아무래도 그 단어 때문에 끌린 것 같지는 않고, 예전 근무했던 외국계 음반회사에서 주력으로 홍보했던 팝 아티스트가 쉴 때는 포틀랜드에서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거나, 카페에서는 기타를 치며 시간을 보낸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포틀랜드라는 도시는 처음 듣는데?'라고 시작하며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 같다.
그 후로 몇 년 시간이 지나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계속 나는 '언젠가 포틀랜드에 가야지'라는 다짐을 버켓 리스트로 삼고 있었다. 외근으로 한 번 만난 생면부지의 거래처 직원에게도, 한 번도 만나본적 없는 포틀랜드 출신의 인스타 친구에게도, '포틀랜드에 있었었다'라고 하면 나는 눈빛이 반짝해지면서 '정말 좋나요? 저는 일주일간 있을까 하는데 그 정도 있어도 좋죠? 대중교통으로 다니기 편하나요?' 라며 적극적으로 물어보거나 DM을 보내곤 했다.
밴쿠버에 먼저 오게 된 것은 사실 예전부터 준비되었던 계획은 아니다. 여러 가지 생각지 못한 일들이 생겨 갑자기 길게 쉴 수 있는 시간-어쩌면 다시 오지 못할-이 생겨 밴쿠버에 방문하여 느긋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다 밴쿠버의 남쪽으로 쭈욱 내려가면 시애틀, 포틀랜드, 샌프란시스코, LA를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부랴부랴 포틀랜드로 가는 기차표를 예매했다. 그러기 때문에 '올해 여름에 (또는 내년 여름에) 미국 여행을 해야지'라는 시간적 기한을 둔 준비된 마음이 아닌, 모든 게 갑작스럽게 진행된 여행이었던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는 살면서 하루하루가 특별하기를 원한다. 친구를 만나서 함께 밥을 먹을 때, 어디를 놀러 갈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뭘 해야 맛있는 것을 먹었다고, 재미있는 데에 갔다고 소문이 날까.', 심지어 각자 개개인의 삶에서도 사소한 것에서부터 인생의 큰 그림까지 무조건 '최고'여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 '~게 해야 한다. 해야만 한다'라는 것에 갇혀, 그렇게 되지 않으면 쉽게 자신을 자책하는 삶. 줄곧 그러한 삶 속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러한 삶 속에서 어딘가 나의 내면 속에서는 그것에 대한 반작용이 일어난 것이다.
그래, '포틀랜드'에 가면 그러지 않을 것 같아. 그냥 있는 그대로 재미있을 것 같아.라는 생각. 그래서 나는 그곳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있으면, 다시 그 도시를 '특별한 도시'로 타자화 시키며 하나의 유토피아로 꿈꿔온 것이었다.
나는 일상 속 특별한 의미를 찾는 강박에 이골이 나
'특별하지 않을 것 같은 곳'이라고 포틀랜드를 '특별화' 하여 떠난 것이다.
계속 내가 포틀랜드를 '특별하지 않은 곳'이라고 특징을 지어버리지만, 내가 말하는 이 '특별하지 않다'라는 뜻은 뉴욕이나 파리, 런던, 도쿄처럼 도시를 떠올릴 때 딱 연상되는 유명한 관광지나, 기념물 같은 것, 그 도시만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를 지칭하는 스테레오 타입의 단어들이 필요하지 않은 곳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항상 To do list에 쌓여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당연했던 내게, 어느 도시를 가면 꼭 어느 관광지와 어느 박물관을 들러야 한다는, 이것은 꼭 먹어야 한다는 강박이 그다지 없는 도시가 얼마나 특별해 보이겠는가.
Keep Portland Weird라는 슬로건이 찰떡같은 포틀랜드는 정말 있는 그대로 이상한 도시이다.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들이 취할 수 있는 것들로 자연스럽지만 개성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걸어 다니면서 한 번도 '저 동양 여자는 누구지'라는 시선이나 캣 콜링도 없었으며 서로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상관하지도 않고 오히려 더욱 '존중' 한다. 그래서 모두 '이상' 하다. 그들 눈에는 내가 비교적 평범해서 '이상해'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렇다고 포틀랜드는 허술한 도시도 아니다. 서로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하는 단단한 믿음 같은 것들이 바탕이 되어있고, 고집스럽게 로컬 브랜드와 끊임없는 창조력을 독려한다. 수 많은 카페, 브루어리, 레스토랑, 편집숍들.. 그리고 어딜 들어가도 그들 각자가 창조해낸 브랜드로 선보이는 MD 들, 유기농 마켓 등.. 이러한 문화가 계속 지속되는 포틀랜드가, 다른 도시 혹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고 특별한 매력으로 보이는 것일 테고, 그 매력에 이끌려 나처럼 찾아가는 것일 테다.
포틀랜드 여행 첫날, 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캐릭터와 함께 'Curiosity leads to trouble (호기심은 문제를 일으킨다)'라는 레터링이 찍힌 티셔츠를 입고 에이스 호텔의 스텀프 타운에 들러 커피 한 잔을 시켰다. 커피를 기다리는 도중에 창가에 앉아 있는 할머니가 나를 보고 'I love your t-shirt. curiosity leads to trouble, that's right.'라고 하며 엄지 척을 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포틀랜드와 어울리는 티셔츠를 적재적소에 입었다.) 적어도 포틀랜드에 살고 있을 거라고 추측이 되는 그 할머니는 나의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이번 여행도,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