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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Nov 15. 2020

우리들은 애쓴다

얼마 전 오랜만에 미용실에 갔다. 불그스름하게 바래진 머리 색을 다시 까맣게 바꾸고, 상한 머리카락도 과감하게 잘라내었다. 내 머리를 맡기는 헤어디자이너는 나보다 어리고, 또 예쁘장하고 싹싹한 여자였다. 오래전 다녔던 어떤 미용실의 남자 헤어디자이너는 굳이 손님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있지 않았던지 유독 까칠했던 사람이었던 기억이 나서, 지금의 여자 헤어디자이너에게 처음 내 머리를 맡겼을 때는 내 머리를 잘해줄 수 있을지. 성격은 혹시 안 좋지 않은지 내심 걱정했다. 다행스럽게도 대체적으로 만족하는 스타일이 나왔고, 같은 여자라서 그런지 비슷한 관심사에서 통하는 게 많아 긴 시간 동안 시술을 받아야 하는 시간에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름 고객과 헤어디자이너로서 조금은 친밀감을 서로 가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시 얼마 전 그 미용실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면, 지루해할지도 모르는 나를 위해 그 헤어디자이너는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염색이 다 끝나갈 마지막 즈음에, 당시에 화제가 됐던 어떠한 가십에 대해 설명을 하며, ‘정말 끔찍하지 않나요?’라고 나에게 동의를 구하는 말을 건넸다.



나는 바로 동의의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 의견을 동의를 못하겠다기보다, 가십의 내용 자체가 정말 내 정서와 맞지 않았던 내용이었기 때문에, ‘그거 참 별로다’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강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 정말 그렇네요…’라는 미적지근한 대답을 했다. 그 순간 아주 잠시 동안 그녀의 표정이 ‘앗 내가 잘못 말했나’라는 표정이 보였다가 이내 돌아오며 아무렇지 않게 다른 이야기를 하며 나의 기분을 살펴보는 듯했다.


머리를 다 하고 다시 옷을 갈아입고 결제를 하는 동안 그녀는 하이톤의 목소리에 웃음기를 계속 띄운 표정으로 배웅을 했다.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를 하는 끝까지 그녀의 웃음 띤 얼굴은 다른 표정으로 돌아갈 줄 몰랐다.




문을 나서며 잠깐 아까 전의 미적지근한 나의 대답을 생각해보았다. 그냥 답을 더욱 명확하게 해 주는 게 좋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그녀는 애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업은 단지 머리만 해주는 것이 아니며, 그녀가 내게 해 준 이야기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여기선 필요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그 시간 동안 충실하게 자신의 고객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애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를 쓴다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중 애를 쓰는 나를 보았다. 마케터로서 근 1년간 내가 맡은 모 브랜드의 디지털 마케팅 업무를 하는 나를 보았다. 콘텐츠의 퀄리티가 향상되어 의미 있는 성과를 달성하였고, 상사도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한다고 몇 번이나 내게 말을 하며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하지만 해당 브랜드의 클라이언트는 그 정도는 당연하다는 듯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 ‘그건 이미 알고 있어요.’라는, 맥 빠지는 대답을 해줄 뿐이었다. 나는 클라이언트의 만족을 얻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절대 돌아오지 않았다. 애를 쓴다는 것은 이토록 힘든 건데, ‘잘하셨네요.’라는 말을 듣는 건 이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답정너처럼 내가 원하는 그 대답을 꼭 들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는 것도 이미 충분히 알거니와, 정말 모든 것에 그렇게 그런 대답을 다 듣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는 모두가 애쓴다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 헤어디자이너처럼, 흔히 지나치는 어느 카페의 직원처럼, 대형마트의 캐셔처럼, 새로 이직해서 부하직원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상사처럼, 아직 데면데면 하지만 점심 먹고 커피 한잔 가볍게 마시고 싶어 먼저 말을 거는 옆 자리 직장동료가 그렇듯, 우리는 모두가 애쓴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 맘 속 크기가 한 평 정도는 넓어진 듯한 기분이다. 우리 모두는 서투르며, 애쓴다. 나는 내일 애쓰는 당신을 보며 먼저 미소 짓고 인사를 할 것이다. 수고한다고, 고맙다고, 잘하셨다고, 덕분에 잘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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