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loe Feb 01. 2021

마음이 말했다. 속상한건 빨리 빠져나오는 거라고.

왠지 예감이 좋은 것에 발을 들이려는 나를 어떻게 해서라도 기분을 잡치게 만들려는 빌런 같은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이 그러하다.


최근 조금씩 발전 가능성이 있는 어느 산업의 스타트업에서 경력직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았다. 지원하면 붙을 확률도, 떨어질 확률도 반반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그곳은 '한번 이야기해봐요'라고 기회는 줄 것 같은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주관적인 느낌이 아니고 정말 '먼저 티타임부터 해도 됩니다'라는 부담스럽지 않은 방식도 공개적으로 보였기 때문에 더더욱이 지원하는 데 있어서 망설임이 들지 않았다. 먼저 티타임을 하고 싶어서 그들이 남긴 '티타임 원하는 사람들의 연락처 공유 링크'에 내 연락처를 남겼다. 대표에게서 문자가 왔다. 지원 포지션 관련 경력이 있는지 알 수 있겠느냐, 라는 문자였다. 나는 그 주 내에 전달드리겠다고 답변을 보냈다.


'네 알겠습니다.'라고 깔끔하고 명확하게 답변이 왔다. 이 깔끔하고 석연치 않은 포인트도 하나도 없는 커뮤니케이션이란 뭐랄까, 더더욱 이 지원을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어버렸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해도 되는 그들의 지원서 양식에 맞춰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은 대로 썼다. 다만 그 작성 시간이 길었다.


대표와 나눈 문자가 그 주 월요일, 정리된 나의 포트폴리오와 하고 싶은 말을 최대한 담아서 보낸 날은 금요일 늦은 저녁. 솔직히 영업일로 따졌을 때는 늦은 게 맞다. 방망이 깎던 노인처럼 시간을 들여서 최대한 하고 싶은 말을 적느라고, 또 코 앞에 닥친 일도 하느라고.


나는 내가 겪었던 여러 구직 경험을 살려 분명 한 명을 뽑더라도 시간을 들여 채용하는 요즘 추세를 그곳도 따라가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혹 떨어지더라도 내가 궁금하고 한 번은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까진 받지 않을까?라고 기대를 했으나... 오늘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어서 그 대표에게 메일이 왔다. '지원한 포지션에 채용하기로 예정한 지원자가 있어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라는 내용이었다.



난생처음 겪는 일도 아닌데 꽝을 만날 땐 왜 이리 속상한 걸까.

나는 다시 '너무 지켜보고, 좋아하는 직무였는데 솔직히 아쉽지만 좋은 분 만나셨으리라 생각되고, 앞으로도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란다'라는 내용으로 답변을 보냈다.



열네 살 즈음의 사생대회 때가 생각이 났다.

잘 지내는 친구도 있는 반면 잘 지내지 못했던 친구들이 있음이 극명히 드러나던 때였다.

친구들이랑 신나게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딱히 내 친구 무리도 아니면서 나를 너무나도 싫어하던 애가 이렇게 내게 말했다.


내가 너를 아주 망가뜨려버릴 거야. 앞으로 나대지도 못하게 할 거야.


내가 먼저 딱히 괴롭힌 적도 없이 이렇게 다가온 말도 안 되는, 앙숙으로 만들 의도도 없는 앙숙 같은 그런 애였다.


나는 오늘 불합격 소식을 받고 그 앙숙 같던 아이가 떠올랐다.

내가 의욕 있게, 의미 있게 무언가를 하고 싶은 거에는 무조건 안되게 만들려고 하는 것 같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울컥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며칠 더 빨리 지원을 했어야 했을까? 아니 빨리 지원했더라도 원하는 역량과 안 맞아서 떨어진 것일 수도 있어. 결국 내가 문제야.'라고 자책감이 들어간 그런 속상한 감정.

그러다, 갑자기 예전과는 다른 인지를 바로 하려고 하는 내 마음이 보였다.


'속상한 마음에서 빠져나올 때다.'라고 내게 말한 것이다.


나는 바로 다음 행동을 시작했다.

그중 첫 번째로 한 행동은 속상한 것에 대해서 그냥 지질하더라도 토로하는 것 그 자체였다.

페북을 열어 하소연하듯 그 일에 대해 남겼다. 느슨한 관계들은 '좋아요' '힘내요' 등을 누르거나 리플을 남겨주었다.

얄팍한 내 마음이 우선은 그걸로 인해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정말 그걸로 되었다.


두 번째로 한 행동은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었다.

나는 불합격 소식을 확인했던 카페를 빠져나와 푸드코트가 있는 건물로 들어가 카레를 먹으려고 했다.

그런데 하필 공사 중. 하지만 맛있는 건 이것 말고도 많이 있다. 속상해할 필요 없었다.

나는 다시 카페가 있던 방향으로 돌아가 맥도널드에서 가장 좋아하는 베이컨 토마토 디럭스 버거 세트를 시켰다. 음료는 사이다로 변경.

달짝지근한 토마토와 짭조름한 베이컨과 고기 패티와 빵 두 개가 속상했던 마음의 매듭 하나를 푼다.

이건 이걸로 됐다.


세 번째로 한 행동은 돌아와서 바로 샤워를 하고 가장 좋아하는 향의 바디로션을 발랐다. 좋아하는 향으로 풀어지는 마음의 마법이란. 



'다음에는 복숭아 향의 바디로션을 사야지.'라고 아까의 일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한다, 아니 아까의 일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마음이 다시 '이제 속상한 것에서 벗어났어'라고 말을 걸었다. 그러니 정말로 징징댔던 속상함이 사라졌다.

아쉬운 마음은 남았다. 그들이 정말 급하지 않았다면 내 이야기를 한번 들어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아무 생각 없이 마우스 스크롤을 올리며 페북 피드를 열심히 내려다보았다. 어느 잡지의 이번 달, 이번 주 별자리 운세 포스팅이 올라왔고, 나는 바로 클릭했다.


2월의 처녀자리 운세

'가끔씩 의욕이 사라진다고 자신의 재능을 과소평가하지 말자.

의심이 생길수록 더욱 자신을 믿고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중략)'


갑자기 누군가에게 연락이 왔다. 전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는 프리랜서 일 관련해서, 내가 지금 잘하고 있으니 하나 더 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제안.


한 문이 닫혔지만 또 다른 문이 열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들은 애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