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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밍 Aug 23. 2022

저는 한국인이 되고 싶습니다.

선생님,
일요일에 시간 있으면
국적 시험 문제 복습 좀 도와주시겠어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금요일 밤 10시에 샤오환에게 문자가 왔다. 


고1, 중국 국적의 중도입국청소년인 샤오환. 나와는 ㄱ고등학교에서 주 1회 한 시간씩 수업하고 있다. 샤오환은 나와의 한국어 수업 외에, 토요일 하루를 온전히 한국어 공부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법무부에서 진행하는 사회통합프로그램 수강이 그것인데, 이민자가 한국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한국어와 경제, 사회, 법률 등의 기본 소양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다.  


나에게 주어진 수업시간은 너무 짧아서, 주로 주말 사회통합프로그램 수업을 들을 때 이해를 못 했던 내용을 질문받거나 복습을 하며 단어 확인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샤오환은 주말에 그렇게 긴 시간 동안 (9시~오후 6시) 한국어 수업을 듣고, 또 평일에는 당연히 학교 수업에 참여하여야 했다. 힘들 법도 한데 항상 열심히 하는 그녀의 빛나는 눈빛 덕분에 나도 수업시간이 매우 즐겁고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었다. 


이번 주 수업할 때 이미 국적 취득 면접 대비 짧은 문답 복습 시간을 가졌는데, 좀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저렇게 문자가 온 것이다. 면접시험은 당장 다음 주 월요일이다. 안 될 이유가 없지. 


학교 담당 선생님께 허락을 구하고, 일요일에 카페에서 만나 면접 대비 문답 복습을 했다. 


샤오환은 혼자 유튜브를 보고 국적 취득을 위한 면접 질문 몇 백개를 공책에 따로 정리했는데, 그 공책을 보자마자 샤오환의 진심이 느껴졌다. 글씨도 얼마나 꾹꾹 눌러서 정성스럽게 썼는지 꼼꼼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났다. 질문은 까만색으로, 정답은 빨간색 볼펜으로 정리되어 있었고, 질문과 정답 밑에는 중국어 번역이 연필로 쓰여 있었다. 별표, 체크표 등의 부호들이 이미 수 차례  반복해서 공부했음을 보여 주었다.  


면접 문제는 한국의 사회, 정치, 역사, 기본 소양 등 다양한 부문에서 출제되었다. 과거 삼국시대 여러 장군들의 이름과 일제 강점기 유관순, 이봉창, 윤봉길, 안중근 등의 독립운동가 이름을 거쳐 현재 대통령의 이름을 묻는 질문들까지 매우 광범위했다.  대부분 잘 대답했지만, '건곤감리'라든가, '직지심체요절'등 어려운 발음이 복병이었다. 계속 '간곤검리', '짐지식체요절'이라고 발음하기 일쑤였다. (직지심체요절! 나도 고등학교 이후 기억 저편에 넣어둔 이 낱말을 이날 소환했다...) 


질문 몇 개를 연달아 잘 못 알아듣거나 대답을 잘 못했을 때는 머리를 싸매며 괴로워했다. 그러다가도 곧 정신을 차리고 손으로 머리를 꾹꾹 눌러가며 정답을 몇 번씩 되뇌어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아무래도 실체 없이 몇 백개의 질문을 외우다 보니 기억력에 과부하가 온 것 같았다. 


가능하다면 샤오환이 좀 더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한자어로 되어 있는 낱말들은 한자를 알려주고 중국어로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 불국사, 석굴암 등의 문화재는 사진을 검색해서 보여주고 말할 때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랐다. 기억해야 하는 그 많은 장군들의 이름은 질문에 반드시 나라가 제시되므로 '신라-김유신 장군, 백제-계백 장군, 조선- 이순신 장군' 이렇게 정리하여 외우도록 했다.  


샤오환이 정리한 면접 기출문제의 일부 - 출처: 유튜브 눈사람-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쭉 한국인으로 살면서 몇십 년 동안 축적되었을 한국인으로서의 그것들을 단 몇 년 동안 부족한 한국어와 더불어 공부해야 하니 고1 학생에게는 당연히 만만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한 나라의 국적을 취득한다는 것이 그래, 그렇게 수월할 수는 없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애국가를 1절부터 4절까지 불러보고 수업을 마쳤다. 카페에서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은 소리로 긴장한 듯 애국가를 부르는 샤오환을 마침 저물녘의 햇빛이 지그시, 눌러 빛내 주었다. 


샤오환,
내 생각엔 샤오환은 이미 대단해요.
내일 시험에서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파이팅!

[대문 사진: Photo by D Ta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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