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나
친구와 나
동료와 나
연인과 나
길거리의 사람들과 나
티비와 유튜브 속 사람들과 나
모두 동시대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으니
같은 시대 같은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처럼 보인다
함께 마스크를 끼고
같은 유행어를 쓰고
한날한시에 대통령을 뽑고
누구든 치킨 한 마리를 2만 원에 시켜먹으니
우리, 같은 시대 사람 맞는 거 같아 보인다
그럴 땐 언제고
서로를 경계하고 미워한다
같은 세상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데
어쩜 이렇게 생각이 다르냐고
그렇게밖에 행동하지 못하느냐고
우리는 단순하면서도 꽤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38선만큼 적당히 갈라 친 거대한 아군과 적군을 만들었다
나는 정의롭고 합리적이며 선한 집단에 속해 있으니
포근하고 든든하다
골치 아픈 반박은 똑똑하고 목소리 큰 아군에 맡겨둔 채
바빠 죽겠는 일상을 이어갈 수 있다
남녀라 다르고
세대가 다르고
지역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정치성향이 다르고
경제 수준이 다르고
교육 수준이 다르단다
분명 남자와 여자 생각이 다르고
10대와 80대의 행동이 다르겠지만
모든 남자가 같은 생각을 하고
모든 10대가 같은 행동을 하는 건 아니다
나를 감싸 줄 아늑함이 그걸로는 부족한지
공통분모를 발견한 작은 집단이
체세포 분열하듯 탄생하기도 한다
자기 그룹과 적대 그룹을 끊임없이 재정의해야만
상대의 말과 행동이 설명되고
부족한 정보를 편한 대로 메우기 좋다
아군은 철저히 미화되며 용서되고 찬양받는 사이,
적군은 역사상 가장 악랄하고 저주받아야 할 악마가 되어버린다
적군에겐 아군이 또 그렇게 묘사되고 상상되며 받아들여진다
지울 수 없는 너와 나 사이의 38선이
그렇게 매일 그어진다
협소한 땅덩이에 날카로운 투명선이 새로 그어질수록
우리가 딛고 설 자리는 조여 오고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어버린다
나는 진정 그 선들이 교차하는 영역에 서있을까
너는 진정 내가 그은 선들 바깥에 서있을까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없는 걸까
2021년과 2022년은 다른 해지만
12월 31일과 1월 1일은 붙어있는 어느 날들처럼
하루로 다를 뿐이다
새해를 맞아도
어제에 이은 오늘을 살아갈 뿐인 것처럼
어제 본 그 해가 다시 뜨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