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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대표 May 01. 2024

젊은 가난뱅이처럼 보이십니다.

언젠가 모임을 통해 명함을 주고받은 지인이 계신 곳에 인사를 갔다. 그분을 A라고 하자.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 밥도 한 그릇 얻어먹고, 나중에 다시 찾아뵙겠다고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즐거운 마음으로 헤어졌다. 

그리고 얼마 후 또 다른 지인과 통화를 했다. 통화를 나눈 그분을 B라고 하자. B는 내게 'A와 방금 전에 통화했다'며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 사람 아주 위험한 사람이에요. 가까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한테 전화를 해와서는 한다는 소리가 '젊은 사람이 참 가난해 보이더라, 자기가 있는 장소에서 유튜브 촬영을 하고 싶은데 일주일에 한 번씩 빌려 쓰겠다고 하더라, 가난뱅이 같아서 일단은 그러라고 했는데 솔직히 싫다, 안 왔으면 좋겠다.'하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C는 A를 아예 인간으로 취급조차 안 합니다. (B를 통해 소개받은 분이고, A, B, C, 그리고 나까지 모두 서로 아는 사이다.) 뭐 하러 가난뱅이 소리를 들어가면서까지 그런 사람이랑 친하게 지내요? 모임에서 괜히 제명된 게 아니에요. 아주 무서운 사람이니 알아서 잘하세요."


이후 몇 마디 더 당부를 하고 난 뒤에 전화를 끊었다.




무역회사 설립과 폐업, 자동차 세일즈, 세차장 알바, 학습지 교사, 생명보험사 세일즈를 하며 하루하루 눈물로 밥을 떠먹으며 속절없이 흘려보낸 지난 10년이었다. 작가가 되어 출판사를 설립하고 책 쓰기 컨설팅과 글쓰기 수업, 공공기관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게 되기까지, 세계적인 소설가로 이름을 날리겠다는 결단을 내리게 된 2024년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난 10년은 돈 버는 능력이 거의 없는 나를 발견한 10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돈을 버는 재능도 없고, 돈을 좇는 감각도 무딘 나 때문에 온 가족과 아내까지 고생을 많이 했다. 

지나가보니 추억이더라? 조금은 그렇긴 한데, 두 번 돌아가고 싶진 않다.


안타깝고 속상한 10년이긴 했다. 그러나 반면에 예술가로서의 재능이 상당히 출중하고, 예술적 기질 또한 풍부한 나를 발견하게 된 시간이었다. 그럼 그것으로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나는 소설가로 엄청난 성공을 거둘 것이고, 영화 시나리오 작가와 웹툰 시나리오 작가로도 성공할 거니까. 한국에만 국한되는 게 아닌 글로벌 비즈니스맨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게 될 거니까.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어려움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해 버리면 그만이다. 

다만 이번 일을 통해서 배우게 된 것이 하나 있었다. 굳이 이런저런 노력을 해서 인맥을 만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뛰어난 사람이 되면 인맥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나는 그중에서 괜찮은 사람만 골라서 사귀면 된다는 것. 이번 일을 통해서 배우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내가 뛰어난 사람이 되면 인맥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나는 그중에서 괜찮은 사람만 골라서 사귀면 된다. 좋은 인맥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A에 대해 들은 소문은 이랬다.

환갑이 훌쩍 넘었음에도 아주 예의가 없고, 말을 함부로 하고, 호텔에서 남은 음식을 미리 챙겨 온 비닐봉지에 싸서 갖고 가며, 밥을 한 끼 대접하겠다고 해서 갔더니 자기가 먹는 칼국수를 나눠서 먹고 한 그릇은 집에 싸갖고 가겠다는 식의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하더라는 이야기, 다니는 성당에서 다른 사람 흉을 너무 많이 보고 다니는 바람에 결국 고소를 당해서 250만 원에 달하는 벌금형까지 받은 이야기, 땅 투자를 잘해서 수억~수십억의 돈을 벌었다면서 식사 한 번 대접하겠노라고 큰소리치길래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갔더니 더치페이로 짬뽕을 시켜 먹더라는 이야기 등등 수도 없이 많았다. 

솔직히 개의치 않았다. 나는 아직 젊기에, 나보다 훌륭한 사람들에게서 많은 것들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알아가고 관찰해 나가야 하는 일을 하다 보니 이 사람 저 사람 가릴 것 없이 만나야 하는 입장이기도 했다. 저런 사람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까, 다른 사람에게서 안 좋은 이야기만 들을 텐데 마음에 상처가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먼저 연락을 드렸고, 운이 좋아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친구를 사귀는 계기가 되면 얼마나 좋겠나 싶은 마음도 있었다. 손님이 없어서 장사도 하지 않는 그분의 가게에서 종종 유튜브 촬영을 해도 되겠느냐고 물어본 것도 종종 담소를 나누기 위한 일종의 핑계였다. 집 바로 앞에 무인카페가 몇 개나 있고 인근에 분위기 좋은 카페들도 수두룩하게 있는데, 굳이 차로 1시간이나 걸리는 산골짜기 귀곡산장 같은 곳을 유튜브 촬영만을 위해서 방문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그래도 별 거부반응 없이 그러마, 하고 수긍하길래 조용할 때 커피 한 잔 얻어마시러 와야겠다 싶었다. 그러다 B를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가 ‘젊은 사람이 참 가난해 보이더라, 내가 돈이 많아서 돈을 보고 접근하는 것 같은데 좀 부담스러우니 안 왔으면 좋겠다’하는 이야기였다.


나는 좋은 사람이 좋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냐마는, 사람을 아주 엄격하게 가려서 사귀는 편이라고 자부해 왔다. 그런데 이번 일로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는 것, 그러니까 인맥을 쌓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것 같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먼저 연락해서 인사도 하고, 식사도 대접하고, 차도 대접하는 식의 인간관계를 위한 노력이 결코 나쁘다고만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맥관리를 위한 노력이 평가절하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일을 통해 배우게 된 것은, 인간관계를 잘하기 위한 노력 그 자체는 필요한 것이지만, 나 스스로 대단한 품격과 능력을 갖추지도 않은 채 인맥을 만들기 위한 노력만 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상처를 받거나 충격을 받은 건 아니었으나, 인맥을 만드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인맥을 만드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나의 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는 게 훨씬 더 좋은 인맥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경험이었다. 물론 두 번 다시는 A를 찾아갈 일은 없다. 명함도 찢어버렸고, 연락처도 삭제해 버렸다. 근묵자흑이라 했다.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과는 두 번 다시 상종하지 않는다. 


나훈아가 어떤 차를 타는지 나는 모른다. 벤츠를 탔을까? 아우디를 탔을까? 아니면 롤스로이스? 뭐, 좋은 차를 탔겠지. 그러나 나훈아가 어떤 차를 타고 다니든지 간에, 나훈아보다 차가 빛날 리는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톱가수로서 갖고 있는 능력, 역사성, 스타성, 그 모든 것들이 나훈아를 빛나게 하기 때문에 차는 그저 그를 이동시키는 이동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25톤 트럭이나 트랙터를 타고 다닌다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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