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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Oct 26. 2020

감시를 감시하라

에필로그

우리는 감시의 역사부터 출발해 디지털 브라더가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방식으로 횡포를 부리고,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고 잇는지, 그리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도래할 초 감시사회는 어떤 모습일 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몇 가지 핵심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감시는 불평등과 계급 사회를 낳은 문명의 부산물이라는 점, 기술 발전은 권력자가 지배하는 감시 체계 발전에 활용된다는 점, 인터넷은 초창기 인터넷 산업 발전을 주도한 이상주의자들의 바람과는 달리 막강한 권력을 지닌 디지털 빅브라더를 탄생시켰다는 점, 전례 없는 방식으로 세련된 지배를 행하는 디지털 빅브라더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는 점, 코로나 바이러스가 디지털 빅브라더의 감시를 정당화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 다양한 첨단 기술 발전과 맞물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초감시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점 등이다.

 

원고를 집필하는 수개월 동안 실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선, 안타깝게도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글을 쓰고 있는 현재 (2020년 12월), 전 세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 수는 6천7백만 명, 사상자 수는 1백5십만 명을 기록하며 감염 확산이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참고로 집필을 시작한 2020년 6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 및 사상자 통계는 각각 9백만, 47만 명이었다) 각 국의 지도자들은 연대하기보다는 반목하며 단결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고, 치료 효과가 증명된 백신 역시 아직 출시되지 않았다. 2021년에는 백신이 개발돼 모든 것이 해결되고 우리의 삶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아직 근거 없는 낙관에 불과해 보인다. 


또한, 디지털 민족주의가 심화되고 있다. 오늘날 글로벌 디지털 생태계는 사실상 미국과 중국이 양분하고 있다. 디지털 패권을 위협하는 중국에 위기의식을 느낀 미국은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중국 디지털 빅브라더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특히 틱톡과 화웨이가 미국의 주요 표적이다. 왜냐하면 주로 중국 내수 시장에 영향력이 국한된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와는 달리, 틱톡과 화웨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선전하며 미국 기업들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최근 들어 트럼프 정권은 틱톡과 화웨이 때리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가령, 트럼프 정부는 미국 내 틱톡 사용을 금지하고 미국 기업들에게 틱톡 사업부를 강제로 매각할 것을 명령한 바 있다. 또한, 미국은 동맹국에게 화웨이의 5G 통신 장비를 사용하지 말 것을 요청한 데 이어, 화웨이에 공급되는 반도체 공급망을 차단했다. 한 가지 변수는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면서 해당 조치가 추진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이든 정권이 집권한다고 해서 미국의 틱톡, 화웨이 때리기 기조가 크게 변할 것 같지는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디지털 패권은 곧 국가 안보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환기시키고 싶은 사실은,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감시의 전방위적 확산에 순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국내의 경우, 이제는 그 누구도 실내에 출입할 때 QR 코드를 찍거나 출입 명부에 핸드폰 번호를 적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또한, 안면 인식 체온 감지기에 얼굴을 들이미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 이상 낳설지 않다. 물론,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서구권의 경우 아직은 이런 모습이 익숙지 않다. 그러나 나날이 증가하는 코로나 감염 통계를 보며 서구권 지도자들은 어떻게든 감시의 그물망을 펼치고 싶어 할 것이고 시민들 역시 안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프라이버시를 포기하려 들 지 모른다. 


만약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되었다고 상상해보자. 감시에 순응하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가 과연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 사회 통제와 권력 유지에 감시가 대단히 유용하다는 사실을 인지한 정부와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감시 인프라를 구축한 기업이 과연 이것을 순순히 포기할까? 나는 이에 대해 무척 회의적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마련된 인프라는 얼마든지 빅브라더의 눈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체온을 측정하는데만 활용되던 안면 인식 기기는 고성능 소프트웨어가 탑재된 감시 카메라로 손쉽게 탈바꿈할 수 있다. 게다가 QR 코드로 출입을 관리하던 인프라 역시 모바일 신원 인증 및 결제에 활용되어 사람들의 동선을 추적하는데 이용될 수 있다. 내가 우려되는 점은, 감시망이 확산되는 이 모든 일련의 활동이 아무런 저항 없이 행해지고 보다 강도 높은 감시가 허용될 여건이 자연스럽게 조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기초적인 QR 코드 인식과 안면 인식기기 정도로 시작하겠지만, 향후 상황이 '서서히 그리고 급작스럽게' 변해 중국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이 문제에 대한 바람직한 대안이 있을까? 글을 쓰는 내내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아쉽게도 마땅한 해결책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디지털 빅브라더의 권력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고 우리는 그들의 감시망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참고로 규제는 완벽한 대안이 되기 어렵다. 디지털 빅브라더를 실질적으로 규제할 권한은 사실상 미국과 중국 정부에게만 허락된 것이다. 그런데 중국은 디지털 빅브라더를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 전격적으로 활용할 계획이고 미국은 중국의 디지털 굴기로부터 국가 안보 위협을 느끼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디지털 빅브라더는 국가 경쟁력 강화 및 중국의 부상에 대한 미국 정부의 포비아를 자극해 규제 위험을 최소화하려 들 것이다. 


실제로 지난 7월,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의 CEO는 반 독점법 문제로 미 의회 청문회에 섰는데, 그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암시적인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미국은 중국과의 디지털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미국 인터넷 기업들은 미국의 경제 발전과 고용에 이바지하며 정부에 협력해 전쟁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를 독점 기업으로 몰아 권력을 분산하면 미국은 중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다" 반 독점법에 민감한 바이든 정부가 어떤 조치를 취할지 모르겠지만,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은 대승적으로 자국 인터넷 기업들에 힘을 실어줄 공산이 크다. 다른 국가들이 이 거대한 파워 게임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없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정부가 어설프게 인터넷 규제를 만들면,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국내 기업에게만 불똥이 튀어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성할 뿐 글로벌 기업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대단히 미미할 것이다.


한편, 디지털 빅브라더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도 뾰족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체제에 순응하는 과정에서 나는 무력감을 느꼈다. 예를 들어, 나는 매일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본인이 이 책에서 그토록 비판하던 디지털 빅브라더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활발히 이용했다. 게다가 나는 실내에 출입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QR코드를 찍었고 안면 인식 기기가 얼굴을 주시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허용했다. 내가 이렇게 행동한 이유는 디지털 빅브라더의 반옵티콘 적인 특성 때문에 규칙에 순응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배제되고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모두가 스마트폰을 통해 온라인 커뮤니케이션하는 상황에서 본인만 피처폰 사용을 고수하는 것은 마치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에서 나 홀로 말을 타고 다니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또한, 만약 내가 식당 앞에서 QR 코드를 찍는 것이 개인 프라이버시를 희생하는 것이라며 난리를 피운다면 나는 분명 쫓겨날 것이다. 혹은 경찰서에 끌려가거나. 


본인이 겪은 상황을 비유하자면, 마치 자본주의나 물질 소유에 대해 비판하는 책을 쓴 작가가 강연료로 번 돈으로 내 집 마련 및 재테크에 골몰하는 모습과 유사하다. 비판하는 문제의 근간이 되는 체제를 바꾸지 못하고 현실과 타협하며 순응하는 것이다. 아마 수 백 년 전, 인간의 기계화, 자본주의, 페미니즘, 인종 차별, 노예 제도, 환경 파괴 등 소수의 힘으로는 도저히 풀기 어려운 거대한 문제를 처음 마주해 해결책을 고민한 사람들 역시 본인과 마찬가지 심경이었으리라. 이는 마치 코로나 바이러스의 증상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마땅한 치료법은 아직 찾지 못한 오늘날 수많은 의학자들의 상황과 같은 처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글이 가지는 나름의 함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명확한 문제 인식이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정확한 문제 인식으로부터 비롯된다. 한때 노예제도, 인종 차별, 페미니즘은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난제였다. 과거의 평범한 사람들은 이것이 문제인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대를 앞서 간 선구자들이 문제의식을 제기하면서 세계는 전진하기 시작했다. 문제를 인식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담론을 형성하고, 용기 있는 사람들이 연대해 부조리에 투쟁한 결과, 위와 같은 문제들이 서서히 개선된 것이다. 나는 디지털 빅브라더 문제 역시 마찬가지의 수순을 밟게 되기를 고대한다.


출판사 웨일북과 계약을 맺고 <친절한 독재자, 디지털 빅브라더가 온다>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해당 내용은 책의 일부이며,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스24 http://reurl.kr/213111B9DQP

교보문고 http://reurl.kr/213111B9FIS

알라딘 http://reurl.kr/213111BA0QS

인터파크도서 http://reurl.kr/213111BA4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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