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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고 전업투자자가 된 지 딱 1년이 되었다. 투자 성과와는 별개로, 지난 1년간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야생에서 생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시장 상황에 따라 부침은 있겠지만, 원칙을 지키고 위험관리를 제대로 한다면 평생 이 게임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투자라는 게임은 저마다 플레이 방식이 다른데, 1) 운용 규모가 커졌을 때도 지속적으로 반복할 수 있는지; 2) 시간과 복리의 힘을 활용할 수 있는지; 3) 판단이 틀렸을 때 손실을 제한하면서 자산을 지킬 수가 있는지가 핵심인 것 같다.
나는 전업투자자의 삶에 상당히 만족하는 편이다. 시드와 수익률이 일정 수준 이상이고, 자기 관리 능력이 탁월하며, 스트레스를 잘 다룰 수 있으면 가히 최고의 직업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애로사항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다음은 내가 생각하는 전업투자자의 장단점이다.
전업투자 장점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사람 스트레스가 없다
"생각" 만으로 돈을 벌 수 있다
무의미한 일을 할 필요 없이 본질에만 집중하면 된다.
신경써야 할 상사, 동료, 고객이 없다. 팔아야 할 제품이나 서비스도 없다.
아쉬운 소리할 필요 없다
나만 잘하면 된다
전업투자 단점
사회적 지위나 명예는 없다.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다
퇴근이 없다
도망치거나 숨을 곳이 없다
돈을 의미있게 쓸 때 빼고 딱히 보람은 없다. (가족한테 쓰는 것이 가장 보람람있고. 이외에는 친한 사람들한테 밥 사거나 소소한 기부 정도) 그냥 숫자 게임 같은
커리어나 레거시가 없다. 오로지 돈과 수익률 뿐.
성과가 좋지 않다면 지옥이다
가능하다면 이 일을 평생하고 싶다. 성공했을때의 경제적 보상 뿐 아니라 지적 성취감이 주는 기쁨이 크다. 스타일도 어느정도 맞는 편이고. 다만, 언젠가 전업투자 외에 다른 일도 찾지 않을까 싶다.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 의미가 있고 보람이 있는 일. 성공했을 경우 돈까지 되면 더할나위 없고.
뭐가 있을까 생각해 봤는데, 다음 정도가 고려할만한 선택지인 것 같다.
1) 재취업. 대기업은 큰 관심이 없고 재취업을 한다면 아마 스타트업이 아닐까 싶은데, 창업자와 팀의 비전을 진심으로 믿어야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분야는, 글로벌 시장에서 먹힐 잠재력이 있는 BM, 교육, AI 어플리케이션, 머니게임으로 기능하지 않는 코인/블록체인 (코인판 자체가 거대한 카지노기 때문에 지금은 아쉽게도 거의 없다) 정도.
2) 창업 1 남의 돈을 취급하는 자문사/운용사. 고액 자산가 & 지인들 돈을 받아 운용하는 중소형 하우스. 운용 규모는 자기자본 포함 5백억이상이면 일단 성공이지 않을까. 지금으로써는 연기금 자금을 받아 크게 키울 능력도 의지도 없다. 나의 이해관계와 고객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수익률 스트레스가 상당할 것 같고 자금을 끌어오기 위해서는 결국 세일즈를 해야 하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향후 몇 년간 투자 성과가 증명되고 스스로 납득할 수 있어야 선택할 수 있는 옵션션
3) 창업2 법인을 세워 투자 업무. 순수 자기 자본으로만 투자하는 일종의 패밀리 오피스 개념. 출판업을 부수적으로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남한테 손 벌리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스케일업을 하는데 한계가 있을 것 같다. 초기 시딩 자금도 꽤 필요할 것이기에 향후 투자 수익률이 꽤 괜찮아야 가능한 선택지다. 투자 법인을 우리 가족의 버크셔 해서웨이로 키운다면 보람도 있고 재미도 있을 것 같다.
4) 창업 3 투자 크리에이터. 멤버쉽이나 네프콘, 유튜브, 강의 등등. KPI가 결국 "조회수 높여서 잘 팔기" 이라는 점이 한계다. 잘 팔리는 콘텐츠와 (예시 - 급등주, 단기간에 코인으로로 버는 법) 내가 진심으로 믿는 것이 (예시 - 장기투자, 단순한 소수 종목에 집중 투자, 복리 등)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한계. 나의 투자 철학에 공감하는 소수를 대상으로 유료화를 진행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마치 소소한 동네 까페 처럼 ㅎㅎ) 이것 역시 부담되긴 마찬가지다. 지금은 투자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
내년 이맘때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 지 궁금하다. 부디 행운이 함께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