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여행 첫 번째 이야기] 애증의 영어
대략 일 년 전쯤의 이야기다. 교환학생을 지내던 중 런던으로 5박 6일의 시간 동안 여행을 다녀왔다. 이 글은 여행기인지 칼럼인지 모를 정체불명의 글이 될 것이라는 점을 미리 밝힌다.
내게 영국이라는 나라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나라다.
여행지로서 영국이라는 나라가 끌리지 않았던 이유도 있지만 스물넷 인생의 절반을 영어로 인한 고통 속에서 살아오다 보니 느끼게 된 일종의 피로감이었다. 괜한 탓을 영국이라는 나라에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영어 때문에 입시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았던 것도 사실이고, 대학에 와서는 영어를 못하면 기회가 박탈되는 경우, 이를테면 영어강의를 듣지 않으면 졸업을 못하거나 영어성적이 없으면 하지 못하는 대외활동들, 그뿐 아니라 다른 나라보다 더 유난스러운 영어에 대한 한국의 사회적 압박감은 내가 이런 생각을 갖게끔 하기에 충분했다.
조금 더 정보를 찾아보니 영어에 대한 한국인의 지독한 사랑(?)의 시작은 해방정국에 미국과의 교류가 출발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 영어를 통한 출세의 길이 열리며, 영어를 조금 한다 하는 사람은 부유해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박정희 대통령 당시 ‘수출 전쟁’이 선포되면서 영어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고, 1978년 정부의 영어조기 교육 실시설로 과외 열풍이 불면서 조기영어교육 붐을 일으키게 된다. 1981년의 해외여행자유화정책 역시 이런 붐에 한몫을 한다.
지금까지도 우리 청년들이 영어에 목매달게 만든 것은 대기업이 토익으로 공인시험을 대체하면서부터다. 이 시기에 인터넷과 경제 글로벌화가 진행되었고, 전 세계 정보의 80퍼센트 이상이 영어로 돼있어, 영어를 못하면 지식정보사회의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기업이 선도하는 영어열풍에 더해 영어성적으로 대학을 갈 수 있는 전형이 생겨나면서 외고 등의 이른바 특목고 열풍이 시작되었고, 이로 인한 학벌주의 사회와 그것을 강요하는 언론의 프레임 그리고 돈이 좀 있다고 하는 집안의 자식들은 어렸을 때부터 영어유치원부터 해외유학을 통해 쉽게 영어를 접하다 오니 물질적 빈부격차와 더불어 영어에 대한 빈부격차도 생겨났다. 이로써 우리는 전 국민이 영어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게 된, 한 편 이런 상황 속에서도 영어에 대한 경외심(?)까지 갖게 된 사회가 되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영어 제국주의’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이 핑계 저 핑계 다 제쳐두고 나는 영어강의를 듣고 졸업을 해야 하고, 영어 성적으로 교환학생도 지원해야 했다. 공부를 더 하고자 하는 꿈을 가졌기에 영어로 쓰인 방대한 자료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 또한 내가 영어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였다.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고 괜히 마음이 두근거린다.
아닌 척하면서 영국이라는 나라가 참 궁금하긴 했나 보다. 에스토니아에서 떠난 지 3시간 만에 비행기에서 내렸고, 온통 영어 천지인 공항 내의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났다. 그동안엔 영어라는 언어를 배워보기만 했지 실제로 이 언어를 쓰고 있는 곳을 경험한 적은 없으니 신기할만하다. 그동안 여러 나라를 여행했지만 이곳은 유일하게 내가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을 이해할 수 있으니 감회가 새롭다.
시내로 가는 길을 묻기 위해 한 영국 여자에게 질문을 했고, 그녀의 답변을 듣는 순간 나는 시내로 가는 정보를 들어야 한다는 의무는 잊은 채, 그녀의 매력적인 영국식 악센트에만 귀 기울이고 있었다. 단단하면서도 섹시함이 느껴지는 영국식 악센트, 그녀의 말소리에 금방이라도 반할 것만 같았다.
마치 글을 처음 배우는 5살짜리 소녀가 된 듯, 길을 걷다 눈앞에 보이는 간판을 소리 내어 하나씩 읽어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나 혼자 영어 듣기 평가를 시작한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서 배운 좋은 표현을 또 다른 사람에게 써먹어 보기도 한다. 매일 글로만 배우다가 이렇게 영어를 공부하니 즐겁다.
: 런던의 어느 거리. 일 년 전이라 어딘지는 모르겠다.
슬프지만 알아듣기가 어려운 건 현실이다.
여행을 다니는 중간에도 사람들에게 길을 묻거나 대화를 하게 되면 이해하기가 어려워 식은땀이 나곤 했다. 알아듣기 어려운 발음도 문제지만, 그들만의 표현 또한 이해하기 어려웠다. 외국인이 아무리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더라도 수십 년간 살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우리만의 줄임말이나 상황에 맞는 표현들을 배우기는 어려운 것과 같은 원리겠다. 행군 같았던 나의 여행보다 이들과 이야기하고 이해하는 과정에 더욱 피로를 느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비싼 물가로 시내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숙소에 묵었는데 여기까지 가는 교통비 또한 만만치 않아 매일 거의 1시간 반~2시간을 걸어서 돌아가곤 했다. 밥값도 비싸다고 마트에서 유통기한 몇 분남은 샌드위치로 끼니를 대신한 상태에서 행군을 하니 배가 고플 수밖에.
숙소 주변엔 그나마 싼 음식점들이 있었고, 그중 하나가 치킨집이었다. 여기를 지날 때마다 풍기는 그 냄새는, 아니 '치킨의 향기'는 뭔가에 홀린 듯 나를 끌고 들어간다. 닭다리든 닭가슴살이든 하나에 1파운드에 파는데, 우리 돈으로 1700원가량 한다고 보면 되겠다. 영국 물가 치고는 아주 싼 편이다.
닭다리 하나와 닭 가슴살 하나를 주문했다. 그러더니 점원이 비웃으며 묻는다. ‘breast?' 나는 대답했다. ’yes' 점원이 다시 말한다. 'oh! breast! hahahahahahahahahahaha'
내 말에 그들은 가게가 터져나갈 듯 웃는다.
순간 민망해졌고 얼굴이 붉어졌음을 느꼈다.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길래 저렇게 비웃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chicken breast'라고 해야 될 말을 그냥 'breast'라고 표현해서 그렇게 비웃었나 보다. 순간 화가 났다. 하지만 이런 걸로 화내고 싶지도 않았고, 또 유창하게 나의 기분 나쁨을 표현할 수도 없어서 관뒀다. 슬펐다. 그래도 치킨은 맛있었다.
: 문제의 그 치킨.
왜인지 모르겠지만 5박 6일 런던 여행 동안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은 여행 자체에 대한 느낌보다는 영어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런던 여행기 1편으로 이 글을 쓰는 이유기도 하다.
이곳 런던에서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번 여행은 유학을 꿈꾸는 내게 큰 동기를 주기도 했다. 전 세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자료를 읽고 해석하면서 나만의 연구를 한 뒤 이것을 다시 멋지게 발표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나에게 그 시작은 영어공부다.
이쯤 되면 영어는 나와 애증의 관계다. 밉지만 좋아할 수밖에 없는, 좋다가도 미워지는.
-2편은 진짜 여행기다. 아마 사진도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