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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유 Jun 08. 2024

강릉 수영장엔 걷기 zone이 있다


" 물속에서 하는 운동을 하세요. 수중 걷기나 아쿠아로빅이나"


작년에 무릎관절염으로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 선생님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난 어릴 때부터 물을 무서워해서 수영시간에도 절대 수영을 하지 않았던 아이였다.


대학교 때 수영과목 이수가 필수여서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겨우 수영을 배우긴 했다. 하지만 내 수영 역사는 거기서 끝이었다.


그런데 무릎관절염은 수영이나 수중 걷기가 가장 좋다고 하니 근처 수영장에 전화를 해서 걷기만 할 수 있냐고 문의했다. 대답은 '안된다'였다. 몇 군데 더 문의해 봤으나 대답은 역시나 no였다.

가뜩이나 아파서 심되는 마음인데 물속 걷기도 할 수 없다니 난감했다.


할 수 없이 아쿠아로빅 등록에 도전했다. 새벽부터 줄을 서서 등록에 성공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첫 수업에 난 혼나는 천덕꾸러기처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다.


수영복을 입고 풀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한 발 한 발 난간을 잡고 겨우 내려갔다.

풀장엔 이미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 40명은 되시는 듯했다. 처음이라 어디 서야 할지 몰라 얼떨떨해하는 나더러 저쪽으로 가랬다가 이쪽으로 오랬다가 막 호령을 하시는 거다.


수업도 몸이 안 좋은 내가 따라 하기엔 강도가 셌다. 결국 50분을 채우지고 못하고 먼저 나와버렸다.

첫 아쿠아로빅 경험은 최악이었다.

그 이후엔 엄두가 안 나서 다시는 참석하지 못했다.


오히려 좌절감만 더 커졌다.

'저렇게 연세 많으신 분들도 씩씩하게 운동을 잘 따라 하시는데...'

스스로 쓸모없는 존재가 된 듯 우울해졌다.




그렇게 수영장과의 인연은 끝이 났다. 그런데 강릉에 이사 와서 정형외과에서 도수치료를 받는데 치료사분이 " 여기 수영장에는 걷기 zone 이 따로 있어요"라고 하셨다.


"정말요? 너무 좋네요. 서울엔 걸을 수 있는 수영장이 없었거든요. 이젠 수중 걷기를 할 수 있겠네요"


며칠 후 남편과 함께 강릉원주대에 있는 수영장을 등록했다. 풀장으로 들어가니 한쪽면이 유리로 되어있는데 푸른 숲이 가득한 교정이 보이고 따스한 햇살이 수영장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맨 오른쪽 레인에는 '걷기'라는 푯말이 있었다.

수영하시는 분들도 몇 명 되지 않아 쾌적했다.


"와 여기 너무 좋다" 난 탄성을 질렀다.

난 맨 오른쪽 걷기 zone에서 걸었다. 물살을 가르며 걷는 게 쉽지는 않았다. 처음엔 남편도 같이 걸어주었다. 그렇게 한 바퀴, 두 바퀴 걷다 보니

내가 물을 싫어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즐겁게 운동을 했다.


두 번째 날엔 남편이 물속으로 얼굴은 넣고 수영을 해보라고 권해서 못한다고 거부하다가 하도 해보라고 하길래 못 이기는 척 얼굴을 넣고 물에 떠보았다. 힘을 빼고 물장구를 치니 몸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자유형에도 도전을 해봤다.

팔을 저으면서 호흡도 해보았다. 40년 전에 배웠던 자유형을 할 수 있었다. 너무 신기했다.

" 당신 수영 잘하는데!!" 라며 남편이 더 기뻐했다.


몸은 그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기억하고 있었던 거다. 너무 신나서 배형도 해보고 잠수도 하고 깔깔거리며 물속에서 실컷 놀았다.


며칠 안 쓰던 근육을 써서 근육통으로 힘들긴 했지만 이제 난 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요즘 우리 부부는 1주일에 3번 수영장에 간다.

수영은 강릉에 와서 하는 제일 큰 스케줄이 되었다.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열심히 운동해서 다리와 허리가 튼튼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여보 내 로망이 프리 다이빙 해보는 거야. 우리 수영 열심히 해서 같이 프리 다이빙도 도전해 보자"

남편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


예전 같으면 "내가? 말도 안 돼. 당신이나 혼자 해"라고 했을 테지만 이제 나도 무조건 거부하지 않고 뭐든 시도해 보려 한다.

왜냐? 여긴 강릉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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