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2
올해 내 나이가 집 나이로 40이다. 공자의 논어 위정 편에서 말하길, 40세를 일컬어 ‘불혹(不惑)’이라 했다. ‘아닐 불(不)’ 자와 ‘미혹할 혹(惑)’ 자를 더해 ‘미혹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상일에 홀리지 않고 또렷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됐음을 의미하는 거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는 살아가는 게 어렵고 세상사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만큼, 삶의 방식도 여럿인데 나는 그 어느 사람의 방식과도 궤를 같이할 수 없기 때문에 더더욱 세상에 흔들리고, 힘들어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지나온 시간을 복기해 보며 지난 40년간 잘 살아오긴 한 건지, 무엇이 다른 이와의 차이점을 만들었던 건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해 보기로 했다.
어린 시절 집에 아이라고는 나 하나뿐이었다. 태어날 무렵엔 증조할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그리고 고모 하나 삼촌 둘까지... 4대가 모여 사는 아홉 가족 대식구였다. 훗날 고모와 삼촌들이 결혼해 분가해 나갔고, 증조할머니도 노환으로 돌아가셔서 식구가 줄어들었지만 오랜 시간 부모님 사이에선 동생이 태어나지 않았기에 우리 집에 아이라고는 내가 유일했다. 내가 태어난 지 1년 정도 지났을 때는 할아버지께서 주축이 되어 어른들이 족보를 새로 만든다고 친척 어른들이 수도 없이 우리 집에 오가셨다. 이런 상황이니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참 많이도 받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동네 TK, 그 TK 안에서도 고대 신라시대 씨족사회에 가까운 안동 사람들 사이에서 엄하게 양육되었지만, 자존감이 평균 이상인 데는 이런 과거가 뒷받침되어 있었다.
엄마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토요일이 휴일이 되기 전엔 토요일에도 출근하고 수업을 했기 때문에,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엄마가 집에 없는 시간이 길었다. 보육 기관에 다니기 전엔 주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생활하시는 방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혼자 놀았고, 보육 기관에 다닐 때는 하원 후 할아버지 방에서 장난감도 가지고 놀고 엄마 아빠와 함께 생활하는 방에서 혼자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동화책으로 시작된 독서는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장르로 확대되었고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분야는 역사책이었다. 당신이 지역 명문가의 후손인 게 자랑스러우셨던 할아버지의 영향도 없지 않았을 거다. 할아버지 방에는 내가 돌이 되던 해에 새로 펴낸 우리 집안 족보뿐 아니라 안동지(安東誌) 같이 지역의 설화 같은 것들을 엮어둔 책들도 있었고, 그런 책들을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읽어달라고 졸라댔었으니까.
유달리 나를 예뻐해 주시던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들의 책 선물과 추천도 한몫했다. 2학년 담임 선생님께선 내가 책 읽는 걸 기특하게 생각하셔서 다섯 권짜리 역사 만화 세트를 선물해 주셨다. 5학년과 6학년 담임 선생님도 독서광이셨기에 아이들에게 책들을 많이 추천해 주곤 하셨다. 아마 당시 선생님께서 2년간 추천해 주신 책들을 거의 다 읽었던 학생은 류인하가 유일했을 거다. 중학생이 되자 학교 바로 옆에는 경북도립도서관이 있었다. 토요일이면 오전 근무만 하고 2시에 퇴근하는 엄마가 도서관 앞으로 데리러 올 때까지 도립 도서관 열람실에서 책을 읽는 건 지루함이 아니라 즐거움이자 축복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인 입시를 준비하기 전까진 책벌레라는 별명이 적합했을 듯하다. 교과 공부는 재미가 없었고 옛날이야기는 재미있었다. 언어영역 공부를 하더라도 비문학보다는 문학을 더 재미있어했고, 이과라서 열심히 해야 하는 물리나 화학 같은 공부보다는 학교에서는 시키지도 않는 국사와 세계사 공부에 힘을 쏟았다. (지금도 시험문제를 풀기 위한 공부는 싫다. 하, 어학성적 만들어야 하는데 잘할 수 있을까...)
돌이켜보니 다른 것보다 ‘이야기’에 매료되었던 것임을 인제야 깨닫고 만다. 그래서 지난 10년간 음악가의 삶과 음악의 내용에 천착하며 살았구나. 그리고 그것에서 안주하지 않고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삶을 살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