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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hyuk kim Dec 07. 2019

남을 해치는 게 우리이듯 남을 구하는 것도 우리

과학 르포르타주 <감정은 어떻게 전염되는가>를 읽고

‘사회전염 현상을 파헤치는 과학적 르포르타주.’ 이 책의 부제다. 사회전염이라는 단어가 생소하지만 낯선 만큼 흥미로웠다.


이 책은 2010년 실리콘밸리 팔로알토에서 다섯 명의 고등학생들이 짧은 기간 동안 연이어 선로에 뛰어든 사건을 추적해나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사회전염’이라는 렌즈를 통해 사건을 바라본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그리고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책을 관통하는 저자의 질문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여유롭고 자신만만한 지적 모험이라기보다는 절박하고 다급한 호소에 가까웠던 셈이다.


저자는 ‘인간의 감정과 사고와 행동이 어떻게 다른 개체, 또는 공동체로부터 전염되는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여기서 유념할 것은 저자가 언급하듯 사회전염에서의 전염은 보다 중립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다. 슬픔과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만 전염되는 것이 아니라 행복감, 열정, 직업윤리 같은 개인과 공동체에 기여한다고 여겨지는 감정·사고도 전염된다. 사회전염은 우리가 마냥 배척해야 할 위협이라기보다는 함께 공존해야 하는 일종의 현상에 가깝다.


저자가 만난 연구자와 교육자, 활동가들은 사회전염과 관련해 제각기 다른 이론을 제시한다. 문화의 영향, 열정, 히스테리, 노시보 효과, 야심과 탐욕, 목표의 전염, 높은 진입장벽, 스트레스와 우울증, 순응과 억압. 각 이론은 궤를 같이 하기도 하고 서로 상충되기도 한다. 비극적인 상황을 막기 위한 해답 또한 저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공동체에 정서적 각성을 촉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어떤 이는 구성원들을 감정적 단속단으로 교육시켜 서로의 위험 징후를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인지 작용에서 착안한 점화단서를 이용, 미디어를 통해 긍정적인 감정을 내재화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정서 교육을 정착시켜야 한다는 조언도 등장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최상위권의 성적을 자랑하는 고등학교에서 겉으로 보기에 별 탈이 없고 오히려 학교에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였던 학생들이 차례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면 저자가 묘사한 당시 언론의 지적대로 성과와 경쟁 위주의 교육 과정 전반을 먼저 손보는 게 맞지 않았을까. 이 같은 질문을 저자 또한 스스로에게 여러 번 던져보지만 하나의 해결책이 부진하다고 해서 다른 쪽에서 손을 놓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게 저자의 결심이다.


누군가의 소중한 친구이고 가족이었던 사람들이 왜 차례로 스스로를 저버리는 걸까. 자신 또한 팔로알토에서 자녀를 양육해야 했던 한 부모로서, 저자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일념 하에 ‘사회전염’에 대한 지식을 섭렵하고 이를 하나의 가닥으로 엮어낸다. 이 책이 그 결과물이다. 모든 설명이 매끄러운 것도 아니고 결국 책 안에 명확한 결론을 담아내는 데는 실패했지만 질문을 던지는 일련의 과정 자체가 독자에게 안겨주는 묵직함이 있다.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고 나자 참 복잡한 심경이 들었다. 저자의 물음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그리고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저자가 책 속에 몇 가지 단서를 남겨두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비극적 행동의 전염을 막기 위해서는 집단의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슬픔에 공감하면 무력해지기 쉽고 분노에 귀 기울이면 시야가 좁아지기 쉽다. 저자는 결국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주체는 우리 자신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일깨워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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